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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을 높여라!

추와 함께 춤을

by 해나

매일 비슷한 시간 비슷한 경로의 출근길.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아침,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치치치익 치이익 치치치치치칙~~~"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어떤 것에도 무심해야 할 출근시간이므로.


"칙칙 치치 칙 칙칙칙~ 치이이이 이~ 치 칙칙칙"


돌아볼 때까지 더 크게 내지를 작정인가 보다. 묵직한 추의 소리는 재촉이라도 하듯 더 빨라지고 거세진다.


마침 바뀌는 보행 신호.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 출근길과 반대 방향으로 길을 건넜다.



시장 입구,

뽀얀 입김을 한껏 내뿜으며 추가 돌고 있다. 영하의 날씨를 배경 삼아 더 신나게 몸을 흔들며 뿜뿜거리는 중이다.


한참을 들여다본다.

뭐가 들었을까? 시장 상인들의 아침밥을 짓는 걸까? 붕어빵 가게인걸 보니 설마 팥을 삶고 계신 건가?

솥만 혼자 속을 끓고 있을 뿐 지키는 이도 없고 어디 물을 데도 없다.


어릴 때였다.

집집마다 전기밥통의 밥이 누릿해질 때쯤 압력 밥솥이 집집마다 찾아들었다.

저녁밥때 쯤에는 이 집 저 집에서 추가 돌아가는 소리가 신나는 합창이 되곤 했다.

적절한 불 조절로 누룽지의 색깔도 날마다 달랐고, 밥 짓는 일을 넘어 옥수수도 찌고 팥도 찌며 압력솥 안에서는 뭐든지 무르게 푹이나 퍽처럼 잘 익혀져 나왔다.



칙칙~ 돌아가는 추를 보고 있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그 속내를 냄새로 가늠해 보며 지켜보는 일이란 매일 반복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오분 있다가 불을 줄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때부터 나는 시계 한번 추 한번, 시계 한번 추 한번.... 시간을 넘길세라 그 앞을 열심히도 지켰다.


불을 줄이고 점점 느려지면서 사그라드는 추의 놀림은 마치 자진모리장단에서 휘모리장단까지 한바탕 몰아치고 난 후 숨찬 호흡을 추~추 ~추 추~ 추 호흡으로 가다듬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호흡을 빼는 순간, 추는 마지막 인사를 하듯 깊게 허리를 숙이고 '치이 이이익~~~~ ' 남은 숨을 말끔하게 다 뱉어낸다. 뚜껑을 열어도 되는 시간이다. 압력 밥솥의 뚜껑을 여는 엄마의 눈은 늘 두근거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잘 됐다!"


엄마도 나도 그제야 웃었다.


압력은 익힌다.

그동안 그 많은 시간을, 그 많은 사연을 익혀왔다.

때론 정신없이 추춤을 추기도 했고, 때론 느릿 느릿 잔잔 뱅이로 겨우 돌아가기도 했지만

그렇게 돌고 돌며 하루를 익히고 한 달을 익히고 일 년을 익히며 지금까지 왔다.


어디 불만 세다고 될까! 빠르게만 돈다고 될까! 그랬다간 추가 튕겨 날아가버릴지도 모를 일.

적당하게 걷고 뛰고 쉬며 강 약 중강 약을 반복하다 보니 몸이 익고 마음이 익어 자연스레 매일의 일상을 익혀 온 것이 아닐까!


아차! 출근길이었지!

그렇다면 오늘은 살짝 압력을 높여볼까!

좀 더 태워서 한층 구수해진 누룽지가 되어도 좋은 듯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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