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진미 Oct 02. 2022

정지용의 비 vs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현대문학-with 클래식 ] 빗방울 떨어지는 날, 정지용과 쇼팽은?

현대문학과 클래식!

현대시와 함께 하는 문학수업에 클래식이 빠질 수는 없습니다. 배경음악으로도 좋고 흥미 유발을 위한 소재로도 잘 어울립니다. 이번에는 빗방울 떨어지는 날, 시인과 음악가는 주변의 자연환경을 각각 어떻게 표현하였을까요?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야

꼬리 치달리여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돋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 정지용, ‘비’  

   

이 시는 비 내리는 자연 현상을 비유적인 묘사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비 내리는 모습을 단지 섬세하게 묘사만 하고 있을 뿐, 그 어떤 정서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빗방울, 빗방울, 빗방울

시인은 어느 날, 옥천 고향집 대청에 앉아 있었겠지. 차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비구름이 몰려와 주변이 그늘진 모습이다. 금방 비가 올 듯한 분위기다. 이어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떨어지고 있다. 어느새 작은 여울을 이루어 흘러간다. 잠시 비가 멎는가 싶더니 곧바로 나뭇잎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다시 또 비가 내리고 있다.      


이렇게 정지용 특유의 비유와 묘사가 돋보이는 시 한 편이 완성되었다. 특히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기막힌 시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시인이 음악가라면 통통 튀는 빗방울을 피아노 음으로 작곡하지 않았을까. 

     

아닌 게 아니라 100년쯤 전 비 내리는 날, 스페인 마요르카 섬 어느 별장에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이 작곡을 하나 했으니, 그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이다.    

 

쇼팽은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인 조르주 상드와 연인 관계에 있었다. 상드는 남장을 하고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정도로 행동거지가 남성적이었다. 당시 문화예술계의 유명 셀럽들은 대부분 그의 연인이거나 친구였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와 카르멘의 원작자인 메리메를 비롯하여 빅토르 위고, 귀스타브 플로베르, 오노레 드 발자크, 외젠 들라크루아, 카를 마르크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등이 있었으니 가히 상드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드와 함께했던 쇼팽은 분명 불편했으리라. 왜냐하면 그들의 사랑은 결국 불행하게 끝났으니까.     


반복적인 음표의 빗방울 전주곡,,,빗방울, 빗방울, 빗방울, 빗방울

쇼팽은 어느 날, 결핵 치료차 상드와 함께 지중해 마요르카 섬으로 갔다. 따뜻한 곳을 물색 중이었는데 그곳은 생각보다 환경이 좋지 못했다. 상드가 외출하고 쇼팽이 혼자 집에 있는 날, 마침 비가 내렸다. 연인을 기다리며 창가에서 빗방울 소리를 듣던 쇼팽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규칙적인 빗방울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감수성 갑인 쇼팽이 통통 피아노 건반을 쳤다. 똑, 똑, 똑, 똑, 그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음악가들에겐 그들의 로망이요 올림픽 격인 세계 3대 콩쿠르 대회가 있다. 쇼팽, 차이콥스키, 그리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그것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개최되는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 부문만 경연한다.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그 대회에서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조성진이가 우승했다. 당시 나이 만 21세, 대한민국의 음악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쾌거였다.   

   

폴란드 국민들은 그들의 자랑인 쇼팽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수도 바르샤바 공항을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으로 변경했다. 헝가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피아노의 신사, 피아노의 신이라는 프란츠 리스트를 공항명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름하여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국제공항’이다. 정치가 모든 걸 빨아들이는 우리나라 실정으로서는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문화예술인의 이름으로 공항 명칭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바람을 해본다.


<사진출처=케티이미지뱅크>

이전 06화 고려가요 동동 vs 차이콥스키의 사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