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작품 구성면에서 유사한 고려가요와 클래식 음악을 알아보겠습니다. 고려가요 ‘동동’과 차이콥스키의 ‘사계’입니다.
덕(德)은 뒤의 신령님께 바치옵고, 복(福)은 앞의 임에게 바치오니
덕이며 복이라 하는 것을 진상하러 오십시오.
아으 동동다리
정월 냇물은 아아, 얼려 녹으려 하는데,
세상 가운데에 태어난 이 몸이여, 홀로 살아가는구나.
아으 동동다리
2월 보름에 아아, 높이 켜 놓은
등불 같구나. 만인을 비추실 모습이시도다.
아으 동동다리
3월 되며 핀 아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태어나셨구나.
아으 동동다리
4월을 잊지 않고 아아, 오는구나 꾀꼬리 새여.
무엇 때문에 녹사님은 옛 나를 잊고 계시는가.
아으 동동다리
5월 5일(단오)에 아아, 단옷날 아침 약은
천 년을 사실 약이기에 바치옵니다.
아으 동동다리
6월 보름(유두일)에 아아, 벼랑에 버린 빗 같구나.
돌아보실 임을 잠시나마 따르겠습니다.
아으 동동다리
7월 보름(백중)에 아아, 여러 가지 제물을 차려 두고
임과 함께 살고자 소원을 비옵니다.
아으 동동다리
8월 보름(한가위)은 아아, 한가윗날이지마는,
임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뜻있는 한가윗날입니다.
아으 동동다리
9월 9일(중양절)에 아아, 약이라고 먹는
노란 국화꽃이 집 안에 피니 초가집이 고요하구나.
아으 동동다리
10월에 아아, 잘게 자른 보리수 나무 같구나.
꺾어 버리신 후에 지니실 한 분이 없으시도다.
아으 동동다리
11월에 봉당 자리에 아아, 한삼을 덮고 누워
슬퍼할 일이로구나. 고운 임을 여의고 제각기 홀로 살아가는구나.
아으 동동다리
12월에 분디나무로 깎은 아아, 차려 올리는 소반 위의 젓가락 같구나.
임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놓으니 손님이 가져다가 뭅니다.
아으 동동다리
- 작자 미상, 고려가요 ‘동동’ 현대어 번역
문학에서 월령체 시가라는 것이 있는데, 작품의 형식이 1년 열두 달의 순서에 따라 구성된 시가를 일컫는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장르와 주제면에서 볼 때 ‘동동’은 상사(想思)의 정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서정민요 계통이며, 농가월령가는 권농(勸農)이나 농촌의 풍속과 삶의 현장을 담은 교술가사 계통이다. 또 작자의 측면에서 보면 ‘동동’은 공동작의 성향이 강하나, ‘농가월령가’는 개인 창작 시가로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달거리 형식이라고도 하는 이 동동은, 정월부터 섣달까지 일 년 열두 달에 맞추어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정서를 노래한 고려가요이다. 그래서 당시 풍속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생활 모습이 작품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정월은 자신의 고독과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홀로 지내는 고독한 여인의 심정에서는 서로 엉키며 흘러가는 얼음덩이에조차 질투의 대상으로 느껴지나 보다.
이렇게 1월부터 12월까지 세시 풍속과 관련지어 열두 달의 모습이 월령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비발디의 「사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만 노래한데 비해,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이름을 붙여 노래하고 있다.
1875년, 차이콥스키는 음악잡지 발행인으로부터 이색적이고 매력적인 제안을 받는다. 즉, 1월부터 12월까지 그 달에 어울리는 시를 미리 제공할 테니 그것을 소재로 해서 매달 자유로운 형식의 피아노 소품 한 곡씩을 작곡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울러 이 연작들은 권말부록식으로 잡지에 싣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작품 구성면에서 보면, 동동처럼 월령체 형식이라 할 만하다. 작품 전문은 이러하다.
1월: 화롯가에서(At the Fireside)
‘더없이 행복한 시간 한편에서 밤은 여명으로 옷을 갈아입네. 작은 불씨 벽난로에서 타들어가고, 양초는 모두 타버렸네.’라는 푸시킨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북구의 겨울 풍경의 일단을 엿보게 하는 다소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곡으로 우아한 기품도 갖추고 있다.
2월: 사육제(The Carnival)
곧 있을 사육제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을 노래한 비야젬스키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3부 형식으로 러시아의 춤곡 리듬이 들뜬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3월: 종달새의 노래(Song of the Lark)
‘꽃들이 흐드러진 들판. 하늘에는 별들이 소용돌이치고, 종달새 노랫소리 푸른 심연을 채우네.’라는 내용의 마이코프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마냥 즐거운 느낌이 아닌 풍부한 시정을 느끼게 해주는 낭만적인 곡이다.
4월: 아네모네(Snowdrop)
푸르고 순결한 봄의 전령사 아네모네 꽃을 통해 느끼게 되는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 마이코프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봄에 대한 동경을 유려한 선율로 그려내고 있다.
5월: 백야(White Nights)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백야의 황홀함을 노래한 페트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감미로운 아르페지오의 악상이 야상곡의 느낌을 주다가 이어 4분 2박자의 발랄한 진행이 상쾌함을 전해준다. 그러다가 다시 부드러운 선율로 마무리되는 곡이다.
6월: 뱃노래(Barcarolle)
여름날 저녁 뱃놀이하는 풍경을 그린 프레시체예프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안단테 칸타빌레풍의 서정적인 곡으로 전곡 중 ‘11월’과 더불어 독립적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명곡이다.
7월: 수확의 노래(Song of the Reaper)
러시아의 농촌풍경을 묘사한 콜초프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민속적인 선율이 나타나며, 리드미컬한 전개가 수확의 기쁨을 전해주는 듯하다.
8월: 추수(The Harvest)
7월과 이어지는 콜초프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활기가 넘치는 전개는 기쁜 마음으로 수확하는 농부들을 묘사하며, 이어지는 서정적인 선율은 농부들의 소박한 심경을 대변한다.
9월: 사냥(The Hunt)
푸시킨의 시를 소재로 한 곡으로, 러시아에서 가을이면 연례행사처럼 펼쳐지는 사냥하는 광경이 재기 넘치게 전개된다.
10월: 가을 노래(Autumn Song)
‘가을, 가련한 난초 위로 내려앉고, 낙엽은 바람에 흩날린다’라는 톨스토이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시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서정적인 선율의 곡으로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수가 잘 드러나는 곡이다.
11월: 트로이카(Troika)
전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이다. 겨울철 러시아 풍물의 하나인 트로이카(삼두마차)를 배경으로 삶의 덧없음을 노래한 네크라소프의 시를 소재로 했다. 러시아 민요풍의 주제가 흐르는데, 초반에는 쓸쓸한 정서를 느끼게 하지만 점차 러시아 대륙을 달리는 트로이카의 모습을 그려내는 듯 활기에 차 있다.
12월: 크리스마스(Christmas)
크리스마스 밤에 소녀들이 들뜬 기분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린 주코프스키의 시를 소재로 한 곡이다. 우아하면서도 유쾌한 왈츠로 묘사해 즐거운 기분에 사로잡히게 해준다.
특히, 1월은 푸시킨의 시 '몽상가'에 영향을 받아 ‘난롯가에서’라는 곡을 붙여 난로의 불꽃과 겨울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동동 1월령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처럼 보인다. ‘난롯가에서’의 곡 전반에 걸쳐 들려오는 한 여인의 외로운 한탄 소리는 곧 동동 정월령의 고독한 화자의 서러움 그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라구 난?~~ 어쩌라구 난?~~”
하긴 고독과 우수라면 차이콥스키도 그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지 않을 사람이지.
동동 6월령은 또 어떠한가?
벼랑에 버려진 빗처럼 임에게 버림받은 화자의 슬픔을 나타내고 있듯이, 「사계」의 유월(June)은 ‘뱃노래’는 이름이 붙어 말이 뱃노래이지 동동의 6월령 화자 모습 그대로이다. 곳곳에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래서인지 난 이 두 개의 곡이 참 좋다. 정우성&전지현 주연의 영화 '데이지'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 특히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우리네 정서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느낌적인 느낌인가? 아, 유리갬성의 소유자 차이콥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