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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Sep 22. 2022

김종길의 성탄제 vs 슈베르트의 마왕

[현대문학-with 클래식]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현대문학과 클래식!

이번에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본능적인 사랑을 노래한 성탄제와 마왕을 서로 엮어 보았습니다.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김종길, ‘성탄제’     


이 시의 화자는 성탄제 무렵, 각박한 도시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다. 어른이 된 지금, 어린 시절 ‘붉은 산수유 열매’에서 느꼈던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데.    

 

서러운 서른 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나이일까?

어린 시절 화자는 열병이 들어 누워있다. 목숨이 애처롭게 잦아들고 있을 때, 젊은 아버지는 해열에 좋다는 산수유 열매를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오랜 시간 눈 오는 산속을 헤쳐 그것을 따 온다. 그리고, 열에 들떠 병으로 누워있는 아들을 위하여 열매를 먹인다. 아들은 그것을 받아먹으며 아버지의 옷자락에 볼을 비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하여 따 온 산수유 열매, 그것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화자는 깨닫는다. 눈이 뒷문을 치고 있었던 그날 밤이 화자에게는 성탄제의 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 서러운 서른 살, 아버지만큼 나이가 든 지금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산수유 붉은 알알이 자신의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동의보감》에 따르면, 산수유 열매는 두통·이명(耳鳴)·해수병, 해열·월경과다 등에 약재로 쓰이며 식은땀·야뇨증 등의 민간요법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수유 [山茱萸]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다행히 성탄제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랑하는 자식을 죽음에서 구하지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도 있다. 슈베르트의 ‘마왕’에 나오는 아버지 이야기이다.     


어둠 속 바람을 가로질러 이렇게 빨리 달리는 자가 누군가?

그것은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아버지

아이를 그의 팔에 안고 있네,

아이를 따뜻하게 팔에 꼭 안고 있네.     


"아가, 무엇이 무서워 얼굴을 가리니?"     


"아버지, 아버지는 마왕이 보이지 않아요?

관을 쓰고 긴 옷을 입은 마왕이?"    

 

"얘야, 그건 그냥 안개 모양일 뿐이야."   

  

'귀여운 아가, 이리 오너라, 나와 가자!

나와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꾸나

갖가지 색깔의 꽃을 볼 수 있을 거야.

내 어머니는 금으로 된 옷이 많단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내 귀에 달콤하게 속삭이는 것을?"     


"조용히, 가만히 있거라, 오 내 아들아

마른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란다."   

  

'착한 아가, 나와 같이 가자꾸나?

내 딸들이 널 정중히 기다리고 있단다.

내 딸들이 밤마다 축제를 열 거야.

널 위해 노래 부르고 춤출 거야.'  

   

"아버지, 아버지 보이지 않으세요,

저 어두운 곳에 마왕의 딸들이?"   

  

"아들아, 아들아 잘 보인단다.

그것은 잿빛의 오래된 버드나무란다."   

  

'난 너를 사랑해, 네 멋진 모습에 반했어

그래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강제로 끌고 가겠어.'  

   

"아버지, 아버지 그가 내 팔을 잡았어요!

마왕이 절 다치게 했어요!"

    

아버지는 두려워 급히 말을 달린다

팔에는 떨면서 신음하는 아이를 안고서

땀에 젖고 지쳐서 집 마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의 팔에서 아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

- 슈베르트, ‘마왕’     


괴테의 시 ‘마왕’을 읽으며 슈베르트는 엄청난 희열을 느꼈으리라. 시와 음악의 위대한 만남으로 슈베르트는 이 명곡을 작곡하는데 채 1시간도 안 걸렸다고 한다. 놀랍게도 당시 나이 17세.     


마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내레이터, 마왕, 아버지, 그리고 아이 모두 4명이다. 이들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내레이터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하고, 아버지는 말을 타고 아픈 아들을 안아서 데려가는 역할이다. 또한 마왕은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고, 아들은 공포에 떨면서 말하는 역할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 독일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작가 (인물세계사, 박중서) /나무위키     


자식 잃은 아버지의 슬픔은 비할 데가 없다

곡 처음부터 셋잇단 음표가 연속해서 나오는데 이건 말발굽 소리를 나타낸다. 템포도 빠르고 반주부의 둥둥둥 둥 소리가 인상적이다. 노래의 마지막에 말발굽 소리가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이 순간이 바로 마왕이 아이를 죽음으로 데려가 버린 것을 상징한다.    

  

결국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 싸늘한 주검을 안고 아버지는 통곡했으리라. 몇 날 며칠을 애통하게 울었으리라. 그 아버지는 결국 시력을 잃고 말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하가 아들을 잃고 실명했다는 실화가 있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상명지통(喪明之痛)이다.   

   

‘천붕(天崩)’이란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컸으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했을까.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을 ‘참척(慘慽)’이라고 말한다. 이건 엄청난 고통으로 통한다. 앞서 자하가 실명한 것 역시 고통 때문이었다.  자식의 죽음을 달리 이르는 말은 그래서 의미가 없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기에  세상 어떤 언어도 무의미하다. 오직 가슴속 깊이 묻는 수밖에......    


<사진 출처=자연과 살아가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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