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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Sep 20. 2022

맹사성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vs 비발디 사계(四季)

[고전문학-with 클래식] 시와 음악으로 만들어낸 사계절의 풍경

고전문학과 클래식!

고전문학을 들여다보노라면 화자 주변의 자연환경이 클래식 음악의 그것과 일치함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산 온양과 베네치아의 사계절을 강호사시가와 사계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춘사(春詞)>

초장

강호에 봄이 찾아드니 참을 수 없는 흥겨움이 솟구친다.

중장

탁주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 제격이구나.

종장

다 늙은 이 몸이 이렇듯 한가롭게 지냄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하사(夏詞)>

초장

강호에 여름이 닥치니 초당에 있는 늙은 몸은 할 일이 별로 없다.

중장

신의 있는 강 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강바람이다.

종장

이 몸이 이렇듯 서늘하게 보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다.     


<추사(秋詞)>

초장

강호에 가을이 찾아드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랐다.

중장

작은 배에 그물을 싣고서. 물결 따라 흘러가게 배를 띄워 버려두니.

종장

다 늙은 이 몸이 이렇듯 고기잡이로 세월을 보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동사(冬詞)>

초장

강호에 겨울이 닥치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가 넘는다.

중장

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입어 덧옷을 삼으니.

종장

늙은 이 몸이 이렇듯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 맹사성, ‘강호사시가’ 현대어 풀이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온양의 사계절을 노래함

이 작품은 맹사성(1360~1438)이 만년에 고향인 아산 온양에 은거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사계절의 변화를 노래한 전 4수의 연시조이다. 봄노래에는 강호에서 느끼는 봄의 흥취가, 여름 노래에는 초당에서 한가로이 보내는 생활이, 가을 노래에는 고기잡이하며 소일하는 여유로움이, 마지막 겨울 노래에는 눈 쌓인 가운데 안분지족하는 생활이 각각 유교적 충의와 함께 잘 드러나 있다.  

    

맹사성은 황희 정승에 비견될 만큼 청렴결백한 관리이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집에는 비가 새 물동이를 방 가운데 들여놓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지방으로 시찰을 나갈 때나 고향을 오갈 때는 농부 차림으로 소를 타고 다녔다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주막에서 한 젊은이에게 말을 걸었다. “심심하니 우리 장기나 한판 두지 않을공? 당신은 끝에 ‘당’ 자로 운을 달게” 젊은이가 “좋습니당.” 둘은 장기를 두기 시작했다.

    

맹사성이 묻는다. “어디 가시는 길인공?” “한양에 가는 길이당.” “뭐하러 가는공?” “과거 보러 간당.” “내가 잘 아는 시험관이 있는데 셤 문제를 알아다 줄공?” 그러자 젊은이는 냅다 장기판을 뒤엎고는, “뭐 이런 늙은이가 있당?” 하고 주막을 나가 버렸다.      


그 후, 한양으로 올라간 젊은이는 과거에 급제하여 마지막 관문인 면접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시험관 앞에 가자마자 젊은이는 깜놀해버렸다. 주막에서 함께 장기를 두던 노인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뜨릴공?” “아이구, 살려 줍시당.”     


맹사성은 장기판을 뒤엎었을 때 이미 그가 인재임을 알아보았다. 당근 그 젊은이는 합격하여 훌륭한 관리가 되었다는 이야기.


사계(四季), 베네치아의 사계절을 노래함

사계는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가 1725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음의 풍경화라고 부르는 이 작품에는 우리의 시조와 비슷한 소네트라는 형식이 첨부되어 있는데, 사계절의 정경을 시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알다시피 사계는 클래식 선호도 조사를 할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애하는 클래식의 하나로 매번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위키백과를 참고하여 이 악보에 나타난 소네트의 구성을 살펴보자.


<봄>

제1악장

따뜻한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고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와 번개가 소란을 피운다. 어느덧 구름은 걷히고 다시 아늑한 봄의 분위기 속에 노래가 시작된다.  

제2악장

파란 목장에는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목동들이 졸고 있다. 한가하고 나른한 풍경이다.     

제3악장

아름다운 물의 요정이 나타나 양치기가 부르는 피리소리에 맞춰 해맑은 봄 하늘 아래에서 즐겁게 춤춘다.    

 

<여름>

제1악장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면 타는 듯 뜨거운 태양 아래 사람도 양도 모두 지쳐버린다. 느닷없이 북풍이 휘몰아치고 둘레는 불안에 휩싸인다.

제2악장

요란한 더위에 겁을 먹은 양치기들은 어쩔 줄 모르며 시원한 옷을 입으면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제3악장

하늘을 두 쪽으로 가르는 무서운 번갯불. 그 뒤를 우레 소리가 따르면 우박이 쏟아진다. 잘 익어가는 곡식이 회초리를 맞은 듯 쓰러진다.     


<가을>

제1악장

농부들이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술과 춤 잔치를 벌인다.

제2악장

노래와 춤이 끝난 뒤 시원한 가을밤이 찾아들어 마을 사람은 느긋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제3악장

이윽고 동이 트면 사냥꾼들이 엽총과 뿔피리를 들고 개를 거느린 채 사냥을 떠나 짐승을 뒤쫓는다.   

  

<겨울>

제1악장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겨울. 산과 들은 눈으로 뒤덮이고 바람은 나뭇가지를 잡아 흔든다. 이빨이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위가 극심하며 따뜻한 옷을 입으면서 시원한 음식을 먹는다.

제2악장

그러나 집안의 난롯가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밖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제3악장

꽁꽁 얼어붙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간다. 미끄러지면 다시 일어나 걸어간다. 바람이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겨울이다. 그렇지만 겨울은 기쁨을 실어다 준다.     


시의 풍경화 VS 음의 풍경화

어떤가?

‘강호사시가’와 비교했을 때, 작품 구성면에서 완벽하게 일치하지 아니한가?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고 있는 내용면에서도 마찬가지인 게, 온양 마을처럼 베네치아 시골 마을의 사계절이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 풍경과 함께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맹사성의 고향 마을과 비슷하지 않은가. 예술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지구촌의 동서와 고금은 그냥 그렇게 서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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