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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Aug 24. 2022

백제 가요 정읍사 vs 드보르자크 루살카

[고전문학-with 클래식 ②] 기원의 대상,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

고전문학을 들여다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백제 가요 ‘정읍사’와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에 나타나 있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의 감정을 음악과 함께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데를 드디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데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백제 가요, '정읍사(井邑詞)'   

  

이 ‘정읍사’는 현전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다. 고구려나 신라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숫자이지만, 국문으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이기도 하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여음이라고 해서, 어긔야, 어강디리, 아으, 다롱디리 등을 제외하면 이게 3장 6구의 시조 형식의 근원이 되기도 해서 나름 국문학사상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달’은 화자가 소망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천지신명이나 광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꿈과 상상 속에 존재하던 ‘달’의 이미지는 이제 그 신비로움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소원을 비는 대상으로 남아있다. 정월 보름과 팔월 보름날에는 아직도 우리는 대보름달을 바라보며 손을 모으고 있다.     

기원의 대상을 의미하는 ‘달’은 우리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향가 ‘원왕생가’에서도 ‘달’은 화자의 간절한 염원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나타나 있으니 말이다.    

  

간절한 소망의 대상정읍사의 달님!

사랑하는 남편이 행상을 나갔다. 저녁밥을 지어놓고 기다리지만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속이 타 들어가 동네 어귀까지 마중을 나왔다. 마침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간절한 소망을 기원한다.      

광명의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아서 멀리 남편 있는 곳까지 비춰 주소서. 아직도 시장 바닥에서 행상을 하고 계신 가요? 위험한 곳을 디딜까 봐 두려워요. 제발 그런 곳을 디디지 않도록 밝게 비춰 주소서. 어느 곳이든 행상을 놓고 좀 쉬세요. 정말이지 임의 귀갓길이 저물까 두려워요.   

   

때마침 ‘정읍사’에는 이런 설화가 전해온다는데,     

「백제 정읍현에 사는 사람이 행상을 떠난 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아내가 산에 올라가 멀리 남편이 간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밤에 다니다가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진흙에 빠짐에 비유하여 노래하였다. 세상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내가 서 있던 고개 위에 망부석(望夫石)이 있다.」      


간절한 기원의 대상루살카의 달님!

이번에는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에 나오는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song to the moon)를 한번 보자.     

깊고 높은 하늘에서 빛나는 달님이시여,

당신의 빛은 멀리멀리 비추시네요.

당신은 이 넓은 세상 비추면서 

사람들의 삶을 내려다보죠.

달님이시여, 잠시만 멈추시어

사랑하는 내 임이 어디 있는지 말해주소서.

하늘의 은빛 달님이시여

부디 그이에게 말해주소서.

내 두 팔이 꼭 감싸고 있다고

잠시라도 내 꿈을 꾸게 해 달라고. 

사랑하는 달님이시여

저 멀리 그이가 있는 곳을 비춰 주소서.

누군가가 그를 기다린다고 전해 주소서.     

-드보르자크,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


사람의 마음은 똑같다. 동서양이 어쩜 이다지도 서로 통할까? 이건 뭐 과장해서 싱크로율 100%다. 

오페라 ‘루살카’ 역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으니,     


루살카는 물의 요정이다. 아마 정령 또는 님프라고도 하지. 어느 날, 호숫가를 지나던 왕자한테 그만 꽂혀버렸다. 어머, 잘 생겼다. 그래서 달님에게 하소연한다. 그게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정읍사’에서처럼 여기서도 ‘달’은 광명의 대상이고 간절한 소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루살카는 왕자가 너무 그리워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주는 대가로 인간이 되어 왕자한테 간다. 그러면서 왕자가 배신을 때리면 죽음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왕자는 잠시 루살카에게 빠져 사랑을 하지만, 루살카보다 한 수 위의 미모에다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지닌 다른 여인에게 가버린다. 결국 둘은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   

  

아니 그러고 보니, 이건 완전히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이네. 드보르작은 슬라브족 신화의 루살카를 토대로 오페라 ‘루살카’를 작곡하였는데 그때가 1901년이다. 안타깝게도 ‘인어공주’보다 60여 년 후이다. 예술이든 과학이든 앞서야 대접받는 세상이다.

아울러 문학이든 음악이든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이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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