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이야기하다 만화방의 추억을, 그리고 이현세, 신일숙, 황미나...
지난 회에서 서점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고등학교이야기로 마무리를 했다. 그 서점이야기가 이번에는 뭐로 끝날지는 모르지만 다시 시작해 보자. 부산에는 대형서점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남포동에 있는 '남포문고'와 서면의 '영광도서'이다. 그리고 헌책방으로 시작하여 부산의 명물이 된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다. 또 하나 부산에서 유일하게 지도를 전문으로 취급했던 작은 서점이 기억에 있는데 서점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부산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이면서 거대한 해양 관련 사업들이 발달한 곳이다. 그래서 많은 선박들이 드나드는 부산항이 남포동과 부산역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유일한 "해양대학교"가 존재하는 곳이고, 지금은 존재가 확실하지 않은 '해양고등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항해사들이 해도를 구입하기 위해 들러는 서점이 있었다. 서점이름은 기억에 없지만 남포동 버스정거장 근처의 2층에 위치했다는 기억이 있다(00당 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데,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서점이 각종 해도를 구입할 수 있던 유일한 서점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지도는 일반 서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지만 해도는 대한민국의 남쪽지방에서는 유일하게 구입할 수 있었던 곳으로, 그곳이 아마도 2010년도쯤(?)에 폐점을 했다고 알고 있다.
남포서점은 서부산 쪽의 번화가인 남포동에서의 대형서점을 대표하는 곳이었다. 광복동이 시작하는 사거리에서 남포파출소를 좌측에 두고 올라가면 대각사가 있고, 대각사를 지나 대청동 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쇼핑센터를 지나 대형서점이 있었다. 아마도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긴 걸로 알고 있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남포서점 근처에 민병철영어학원이 있어 중학교 입학 전에 영어를 배우러 다녔다. 그곳에서 영어 필기체를 열심히 썼던 기억으로, 지금도 가끔 내 영어글씨가 예쁘다는 이야길 들을 때마다 그때 열심히 배웠던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한다. 그냥 일상생활 하고 병원에서 근무할 정도(?). ㅋ
그리고 중부산을 대표하는 변화가인 서면의 영광도서는 전공서적 구입을 위해 자주 들렀던 곳이다. 물론 다른 서적들도 구입하기도 했지만 주로 전공 관련서적을 많이 구입했다. 당시 토성동의 부산대학교병원 근처에도 의료 관련 전공서적판매점이 있기는 했지만 결혼 후 거주지가 범냇골이다 보니 주로 서면의 서점을 많이 이용했다. 큰아들의 아동도서 구입도 그곳 영광도서에서 많이 했다. 그러니 결혼 전은 주로 남포문고를 이용했고, 결혼 후는 영광도서를 이용한 셈이다.
보수동의 책방골목은 고등불교연합회 시절 경전이나 불교해설집을 구하기 위해 자주 방문했었고, 대학 때는 동아리선배의 희곡집을 구입하기 위해 같이 동행했었다. 헌책방이 대부분이었던 보수동 책방골목은 책을 팔러 가기도 했다. 전공서적문제집을 구입하기도 하고, 전공서적을 팔아보기도 했으며, 특히 원서로 구입했던 성인간호학전공서적 같은 경우에는 학기가 끝나면 팔아서 다음학기의 서적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용하던 보수동 책방골목에서의 기억 하나는 희곡집을 구하기 위해 선배가 갔던 그곳에서 진짜 옛날 고서적을 발견하고는 타학교 동기하나가 그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한문으로 된 책으로 표지를 넘기면 원고지형식의 속지에 세로로 씌여진 글자가 나타났다. 그 동기는 그 책을 소중히 간직하였다. 나는 무슨 책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좋아하니 '좋은 책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보수동 책방에는 만화책도 참 많았다. 만화책을 싸게 구입하여 다 보고 나면 다시 그곳에서 팔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그 골목에선 책을 사고, 책을 팔게 되면 단골 책방도 생기게 된다. 나는 가끔 친구나 선배랑 몇 번 다녔던 것이 전부라 단골 책방은 생기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책방이 어떤 서적들을 주로 다루는지 아름아름 소문이 난 책방도 많았다. 특히 의료전공서적을 취급하는 헌책방인 경우는 친구들끼리 서로 알려주기도 했다.
서점의 책 이야길 하다 보니 만화방에 대한 추억도 새록새록하다. 만화방은 거의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비디오대여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만화방이 비디오대여점도 겸하는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시절에는 우리 집 근처에 친구아버지가 경영하는 만화방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네 만화방을 자주 이용했다. 만화방 앞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게에 딸린 방과 부엌이 있는 뒷문을 이용하여 방을 거쳐 만화를 골라, 방으로 들어가 만화를 보고는 했다. 만화책은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소녀감성의 만화도 재미있었지만 정보를 제공해 주는 만화시리즈를 많이 봤다. 소공녀, 소공자, 톰소여의 모험 같은 명작들을 만화로 그린 만화책도 재미있었고, 고바우영감이 여러 나라를 소개하는 시리즈도 재미있게 보았다. 만화는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는 시절쯤에 인상에 남는 만화책으로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라는 만화였는데 그 예언서를 만화로 풀어놓은 것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내용으로는 2000년이 되면 유럽이 하나가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와, 그럼 세상 지도에는 미국, 소련, 중국, 유럽, 이렇게 큰 나라가 4개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다음 장에 소련이 힘을 잃게 되고, 중동에서 전쟁이 나고, 유럽이 하나가 되는 순서라고 했다. 그 내용이 기억의 한편에 각인되었다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내가 '걸프전'이 한창인 중동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고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 '이것이 노스트라다무스가 이야기한 그 중동에서의 전쟁?'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났다. '그러면 다음은 유럽이 하나의 나라로 되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유럽연합이 결성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라는 만화책에서 봤던 그림이 떠올랐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인물이 지구는 불로 망한다고 했는데 어쩌면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난 만화책을 좋아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 '황미나작가의 굿바이미스터블랙'과 '신일숙작가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이라는 장편만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그때 많은 남자애들은 농구만화의 대표작인 '슬램덩크'를 안 본 아이들이 없을 정도였고, 여자아이들도 꽤나 많이 슬램덩크를 봤다. 그리고 까치가 주인공인 이현세작가님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남녀노소가 봤던 히트작이었다.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휴일이면 만화책을 빌려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1990년대의 만화방은 깨끗하고 시설이 잘되어 소파도 참 푹신했던 기억이 있다. 이현세작가님의 공포의 외인구단 다음으로 인상 깊게 읽었던 만화는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였다. 훗날 공포의 외인구단과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시절의 만화책을 보는 것은 요즘의 웹툰을 보는 것과 같은 의미이지만 다른 분위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당시의 만화방은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지금도 만화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 만화카페가 있기는 하구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일 수도 있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당시 만화방의 분위기를, 만화에 푹 빠져서 혼자 키득거리는 사람, 심각하게 책장을 넘기며 짜증 내는 사람,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다른 사람이 보고 있으면 그 사람 맞은편에 앉아 그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 아주 옛날에는 날씨가 추워지면 굴뚝이 밖으로 나와있는 연탄난로를 피웠다. 그 연탄을 갈 때 되면 살짝 깔리는 연탄가스 이산화탄소 냄새,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 그 찬바람에 실려오는 엄마가 나 찾는 소리, 해지는 줄 모르고 만화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꼬마야, 집에 가라'하며 보던 만화책을 살짝 손으로 치거나, 만화책을 다 보고 반납할 때 '이제 집에 가야지'라며 내쫓았던 만화방 아저씨, 이런 것들이 어린 시절의 만화방에서의 분위기와 추억이다.
만화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 창작만화들의 붐이 지나고 나서는 일본만화 번역본이 많이 출시되었다. '슬램덩크'도 일본만화의 번역판이다. 그 번역만화 중에 '드래곤볼'은 빼놓을 수 없다. 드래곤볼을 만화로 다 보고 만화영화로도 텔레비전에서 방영하였다. 그 후 내 아이들과 같이 '드래곤볼' 만화영화를 보면서 양쪽손은 아래위로 모아 돌리면서 "에네르기~~파"를 외치며 앞으로 뻗기도 했다.
만화책을 좋아하던 나는 만화방에 대한 추억과 만화에 대한 추억이 많다. 오륙 년 전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부천의 만화박물관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많이 떠올렸다. 한국의 창작만화가 웹툰으로 옮겨가면서도 잃지 않는 스토리가 가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은 서사가 있는 민족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풍부한 상상력을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서 바로 전달하는 만화를 책으로 인정하는 "만화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상상력이 참 좋다. 그렇게 나의 상상력도 늘어나는 것 같아서 만화책을 생각하면 나는 미소 짓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