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마켓 1
당시 수입은 일정하진 않았지만 평균 1,000불 정도 되었더랬다.
박사장이 준 돈은 500불 그것을 가지고는 부족하여 파트타임 잡을 알아봐야 했다.
가든그로브 아리랑 마켓 입구에는 구인 구직에 달세방, 룸메이트,
집에서 담근 된장 고추장을 판다는 등등의 알림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있더랬다.
그중에서 매직펜으로 굵게 쓰인 마켓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을 찾으니 사십 초반쯤 된 사내가 피곤에 절어 후줄근한 작업복
차림으로 나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켓 주인의 큰사위였다.
주인은 일찌감치 엘에이에서 자리를 잡아 한국 마켓이 없던 시절 한인들을 상대로
두부며 콩나물 된장 쌀 떡 등속을 팔다가 차츰차츰 확장해 그야말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 듯하였단다.
처음엔 돈통에 넣던 돈을 주체 못 해 커다란 검정 쓰레기봉투에 나중에는
마대자루에 담아 집에 가서 세다가 잠이 들면 놔두고
다음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하니 짐작인들 하겠는가?
쌍벽을 이루던 후발주자 가주 마켓이 옆에 있었지만 워낙 이민 초창기에 있었던 터라
오래된 단골들은 꾸준하게 아리랑 마켓으로 밀려왔다.
주인에게는 딸 둘이 있었는데 큰사위가 사장을 둘째 사위는 메니져를 맡고 있었다.
바깥주인은 잘 나오지 않고 모든 일은 사장의 장모 되는 주인이 진두지휘하였다.
키도 늠름하고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해서 딱 보더라도 여장부의 풍모가 곳곳에서 배어났다.
큰사위 사장은 지 씨 성으로 보통 키에 마르고 언뜻 보기엔 농사꾼 같은 모습이었다.
고향이 어디냐?
나이는 몇 살이냐?
가족은 어떻게 되냐? 등등 신원을 조회하였고
있는 그대로 이실직고하였다.
못마땅한지 쩝쩝 입맛을 다시던 사장은 군대는 갔다 왔냐고 물어
해군에서 제대를 하였다 하니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면서 몇 기냐고 묻는다.
216기라고 하니 한참 후배를 만났다고 입이 벌어지게 반가워하더라.
무슨 함을 탔느냐? 어디에서 근무했느냐? 연달아 물어와
진해 통제부 사령부 예하 원호대에 있는 충무동산에서 근무했다 하니
공창 옆에 있는 피엑스 그곳이냐며 손바닥을 치면서 좋아했다.
자신은 목포에 있는 3 해역사에서 근무했다며
해군 후배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이것저것 물어왔다.
충무 동산은 종합 매점을 중간에 두고 위쪽으로 영화관 및 실내행사를 하는 청해관
영외거주자에게 밥을 팔고 저녁엔 술을 파는 식파관 위층엔 상사 회관이 자리하고
식파관 위쪽으로는 사진관 명찰 등속을 만드는 수선소와 자전거 수리소 옆에는
사병들이 이용하는 이발소와 장교와 부사관들이 이용하는 이발관이 있었고,
맨 위쪽에는 수병의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종합 매점 아래쪽은 군장점 및 세탁소가 옆으로는 원호대 사무실이 그리고
종합 매점 뒤쪽은 영내 거주자 공간인 내무실 그 옆으로 영관급 이상만 이용하는 목욕탕과
도서관 및 술 창고 테니스장 등이 둘러싸고 있었다.
거기에서 자전거로 3분 남짓 함대사령부 쪽으로 가다 보면
숲에 싸인 당포관이 있는데 대령급이상 별들이 식사하는 곳으로
사회에서 웨이터 경험 있는 수병들이 시중을 들었고.
경력 있는 주방장이 그리고 역시나 주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방위병들이 보조역할을 하였다.
당포관 안에는 별들만 이용하는 이발관이 있었는데
이발사가 이발을 끝내면 면도해 주는 아가씨가 문을 잠그고 출입을 금했다.
그 시간이 되면 누구도 그 근처엔 얼씬도 못했고
아가씨가 나와야 비로소 통행이 가능했더라지.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린 알 수없었다. 흠
다시 입대라도 하였는지 후배를 만난 그 기분을 즐기는지 사장은 환해진 모습으로
소셜 넘버는 있느냐 드라이브 라이선스는 있느냐를 묻더니
있다고 하니 당장 일을 시작하란다.
마켓 로고가 그려진 조끼를 입고 처음 배치된 곳이 채소를 파는 곳이었고
무 배추 시금치 파 상추 양배추 감자 얌 토란 등속을 팔았다.
난 볼티모어 눈웃음치는 채소가게 사장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