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박사장과는 형제처럼 웃었다 토라졌다 무던한 생활이 이어졌는데
고단함은 참을 수 있어도 보고품과 그리움은 견디기 힘들더라.
짹짹거리던 쌍둥이 놈들이 아른아른거리더니 기어이 눈 어딘가를 찔렀나 보다
5번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비가 내리더라.
자식이던 마누라던 옆에 있어 물고 빨고 어루만져야지
멀리 떨어져서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는 갈증에 소금물을 들이켜는 일이라
갈증은 점점 더 참기 힘들더라.
더군다나 펄펄 끓는 삼십 대 초반의 사내가 견디기엔 밤은
불에 달군 인두로 가슴팍을 지져 대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더라.
유난히 아내를 탐하던 나에겐 형벌도 그런 형벌이 없는데 아마도 그때를 생각하면
뼈 마디마디에 박힌 사리가 한 말쯤은 될 게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무얼 먹기에 종아리가 저리 가느다랄까? 의아했고
무릎을 살짝 덮는 짙은 남색 스커트에
잘록한 허리 위로 흰색 블라우스, 절반을 내려온 긴 생머리에
계란에 그림을 그렸는가 보일 듯 말듯한 쌍꺼풀에 숨어있는
사슴 같은 눈망울 오뚝 솟은 콧날 새초롬한 입술
보는 순간 나는 옆을 보고 뒤를 돌아보았더랬다.
나 말고 다른 누가 볼까 봐 겁이 더럭 나더라.
얼른 감춰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본인도 모르게 나의 우물에 첨벙 빠져버렸다.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는듯한 일 년을 보냈다.
언제 만날지 모를 캄캄하고 아득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박 사장 집에 가니 저녁 먹고 가란다.
얼씨구나 하고 꿈틀대는 목젖 다독이고 식탁에 앉았다.
임금님 저녁 만드는 수라간에서나 만들었을 법한 진수와 성찬이
식탁 다리를 휘청하게 만들더라.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소갈비찜 그림에서나 봄직한 윤기 나는 갈비 위에 황색 백색 지단을 얹고 위에
실고추를 고명으로 올려 멋을 내었다.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아득한 연포탕에
백일 된 남자아기 다리만 한 굴비가 접시에 다 놓이지 못하고
머리와 꼬리는 밖으로 밀려나 있고 그 옆에 김과 통깨를 뒤집어쓴 청포묵이 놓였다.
꿈에서나 맛을 볼까 고춧가루로 빨갛게 화장한 꽃게무침
그리고 귀퉁이로 밀려난 계란찜에 오징어젓갈하며 참기름 발라 구었는지
반질반질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네모 반듯하게 잘린 김이 놓여있더라.
후식으로 누룽지까지 구첩반상을 받고 보니 고단했던 시간들이
밀려온 파도에 씻겨나가 개운하고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없더라.
처음엔 눈치 보며 살금살금 먹다가 입에서 빨리 들이라고 아우성 아우성
허겁지겁 설거지도 필요 없을 만큼 그릇들을 싹싹 비워나갔다.
식사를 마친 후 담배 한 대를 피운 박사장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 뵌 지가 십 년이라며
한국을 가야 하는데 한 달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어렵겠지만 한 달 동안 이 돈으로 견디다가 오면 같이 일하자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따스함을 알려준 박사장 부부였는데
난 또다시 모래바람 부는 사막에 덩그러니 서있어야 하는 운명에 놓인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