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에 갔다.
꽃게 3 킬로그램 한 박스가 26,000원 정도 했다.
“가을엔 꽃게지~!”
“꽃게찜 좋지.”
남편과 느낌이 통했는지 우리는 카트에 꽃게박스를 담았다.
꽃게는 박스에 톱밥과 함께 살아있는데 몇 년 전 이 박스를 사다가 싱크대에서 톱밥을 씻어서 요리했다가 비싼 꽃게를 맛보게 됐다.
톱밥은 싱크대 거름망을 뚫고 내려가 하수구를 막히게 해 버렸다.
물은 막혀서 내려가지 않고 점점 차올라 하수구 뚫어주시는 기사분을 부르고서야 내가 톱밥을 흘려내려 보내서 막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3만 원 주고 산 꽃게는 15만 원을 주고 먹게 된 꼴이 되고 나서야 인생을 하나하나 알 때는 돈이 든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
(인생에 대한 배움은 유료…)
“오빠 알지? 싱크대 거름망에 일회용 거름망 하나 더 끼고 절대로 톱밥 한 톨도 하수구로 내려보내지 말자!”
“당근 그래야지. 꽃게를 톱밥에서 건져내면 내가 바로 쓰레기봉투에 넣어 갖다 버릴게.”
우리는 각자 맡은 일에 충실히 움직여 아르바이트 끝나고 오는 딸에게 꽃게를 먹이기 위해 분주했다.
“엄마 나왔어요.”
경쾌하게 닫히는 현관문 소리와 함께 큰 딸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냄비에서 갓 쩌진 꽃게를 꺼내 뜨거움을 무릅쓰고 가위로 탁탁 잘라내 먹기 좋은 크기로 예쁘게 접시에 담았다.
가을엔 숫케를 구매해야 살이 차 있다는데 모두 암케였다.
그래서 가끔 뻥게라고 하는 살이 없는 게도 있고, 암케였지만 알도 없었다.
그래도 묵진한 녀석들 몇마리는 살이 가득 차있어 달고 담백한 맛을 냈다.
“딸 맛있어? 자취방 가면 이런 거 못 먹으니 많이 먹어. 너 좋아하잖아 꽃게.”
“정말 맛있어요. 이렇게 살 통통하게 나온 것 좀 봐요.”
딸은 운 좋게 가득 찬 꽃게살을 발라내더니 손으로 흔들며 기분 좋은지 신나서 보여준다.
“딸, 이거 아빠가 발라낸 거야, 먹어봐.”
아빠가 딸을 예쁘게 쳐다보며 발라낸 살을 건네준다.
“나 오늘 막내딸체험 하는 것 같다. 동생들 다 학원가고나니 완전 나한테만 주네.”
우리 큰 딸은 어릴 적부터 보행기 타고 다니는 동생을 불러 꽃게살을 발라먹였다.
엄마, 아빠가 알아서 먹인다고 해도 본인이 발라낸 살을 꼭 동생에게 주고 싶다며 동생을 불러댔다.
그러면 또 어린 동생은 누가 부르던지 꽃게살을 입에 넣어주는 걸 알고는 달려왔다.
오늘 실컷 막내 해라 그럼.! 하하
우리는 꽃게 삶은 육수에 냉장고에 남아 있었던 건도삭면을 넣고 끓였다.
김가루도 뿌리고 약간의 간으로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집에있는 불닭소스를 넣었다.
딸아이가 맵다고 할까 봐 조금 넣었더니 심하게 맵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꽃게 8마리를 없애고서야 배를 두들기며 식사를 마쳤다.
이젠 이 비린내 나는 모든 그릇과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톱밥부터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하고,
꽃게 껍질 쓰레기,
그리고 식기들을 모조리 씻어 냄새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도와주기로 한 남편은 꼭 이 시간에 화장실로 가서 나오지 않는다.
항상 그렇기에 빨리 나올거라 기대하지 않고 바로바로 나 혼자 다 치워버린다.
먹는 건 제일 열심히 먹어놓고 이럴 때만 자리에 없다.
다 치우고 냄새까지 환기가 끝나고서야 화장실에서 나오는 신랑은 지능이 높은 걸까.
다음엔 언제 어디서든 추억을 떠올릴 때면 내 기억 속에 남편은 화장실 가 있던 스토리를 남겨봐야겠다.
오늘은 아까 팔딱팔딱 움직이던 꽃게를 뜨거운 냄비에 넣었을 때의 나의 죄책감에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묵념….
미안...꽃게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