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달래무침
“네가 이번 해에 57이 된 건가? 벌써 60이 다 됐어?”
“네? 60이요?”
설 명절에 시댁에 들렀다.
센스 있으신 어머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이십 년 만에 차례, 제사를 모두 성당에서 미사 지내는 걸로 하고 모든 음식 준비를 없애셨다. 그래서 명절엔 잠깐 들러서 용돈도 드리고 도란도란 앉아 이야기 나누는 걸로 마무리한다.
“뭐라도 먹어야지”
“어머님, 소화가 잘 안 되어요. 안 먹을래요.”
나는 매번 소화가 안된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차리지 않게 한다.
그 차리는 것 또한 며느리 몫, 다 치우는 것도 며느리다.
이 집 며느리는 나 하나고, 아주버님과 남편은 그저 앉아 먹고 TV나 본다.
그래서 어머님이 사과라도 쟁반에 갖고 오시면 “절대 안 먹어요 하하하“ 이렇게 웃으며 과일 하나 안 깎는 나는 이상한 며느리다.
작년엔 어머님이 굴을 싱싱해서 사 오셨다며 먹고 가라고 하도 성화셔서 내가 굴 양념을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굴무침 양념간장 3스푼
참치액 1스푼
참기름 2스푼
마늘 반 스푼
고춧가루 1스푼
설탕 반 스푼
식초 1스푼
생강가루 반티스푼
달래 한 단
양파 잘게 다져 1개
청양고추 3개 송송
깨 반 스푼
같이 간 딸아이에게 수저에 굴을 올리고 양념을 톡톡 올려 입에 쏙쏙 넣어줬다.
아들은 안 먹겠다고 입을 꾹 닫고 있어서 그 맛있지만 무시무시한 굴을 못 먹였다.
정말 맛있었다.
어머님과 아주버님도 그리고 나의 남편도 양념을 참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셔서 더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던 굴…이었는데..
그다음 날 저녁 고등학생딸과 나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토사곽란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토를 하고 설사를 하고 배가 아프고 어지럽다.
딸과 나는 응급실로 가서 처치를 받고서야 안정이 되었고, 그게 노로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번 다시 굴을 못 먹게 된다는 노로바이러스다.
남편과 아주버님 그리고 어머님도 드셨는데 나와 내 딸이 제일 많이 먹어서일까. 둘만 걸렸다.
우리가 굴을 먹고 집으로 간 뒤 다녀간 시누이 식구들도 내가 만든 양념에 굴을 아주 잘 드시고 가셨다고 한다.
그 시누이 집엔 시누이와 아들만이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응급실에 갔다고 한다.
그리고 난 후 명절엔 아무것도 차리지 마세요 그냥 소화가 안돼서 그래요 하고는 앉아서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어머님, 나, 남편, 아주버님. 이렇게 네 명이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정말 귀여움을 듬뿍 받는다.
손을 잡아주시고 등을 쓸어내 주시고 내 이야기에 웃어주시는 어머님.
그러다 내 나이가 궁금하셨던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네가 이번 해에 57이 된 건가? 60이 다 됐어?”
“네? 60이요?”
어머님의 말에 놀란 내가 웃으며 더 놀란 척을 하자 옆에 있던 남편이 말을 거든다.
“엄마, 엄마 아들도 아직 60살이 안 됐어. 와우 쟤가 아직 50도 안 됐는데 60이라니.”
“아.. 맞지.”
인정을 하시며 웃으시는 어머님이시다.
순식간에 환갑잔치를 할 뻔한 나는 모든 내용이 왜 그런 줄 알아서 웃고 말았다.
어머님은 이번 해에 88살이 되셨다.
막내아들이 51살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상황이다.
80이 넘고 나서는 한 해 한 해 나이 드시는 걸 부담스러워하시고 미안해하신다.
“어머님 나이 한 살 한 살 더 드신 거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제가 과감히 열 살 빼드릴게요.”
어머님은 어머님 나이 끝자리와 같은 가족들을 나열하신다.
내 여동생 78살
내 남동생 68살
이혼하고 나가 안타까운 며느리 48살
그보다 한 살 어린 막내며느리 나 47살
이렇게 매 해 기억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해엔 더하기 빼기의 약간의 실수가 있으셨다.
난 그렇게 이해했다.
88살이심에도 건강하셔서 김치며, 밥을 모두 손수 해 드신다.
그리고 결혼하고 23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88살의 어머님을 시어머님보다는 나의 할머니 느낌이 든다.
우리 엄마보다도 15살이 많으시기도 하고 어릴 적 나의 할머니가 나를 예뻐하던 그 눈빛 그대로를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항상 우리 가족 다섯 명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감사한 분.
우리 아이들 잘 되는 하나하나를 축하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
항상 따뜻하게 나의 손을 잡아주시는 분
무뚝뚝한 며느리라 절대 못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매번 해주시는 분
같이 요리하다가 김치통을 엎어도 웃어주시는 분
어딜 나가시든 며느리 자랑해 주시는 분
나열하면 정말 많지만, 이 정도로 요약해 본다.
설 명절이 되면 맘카페에 올라오는 시댁과의 갈등의 글들이 무수히 올라오는 걸 보게 된다.
조금 양보하면 될 것을..이라는 생각보다는.. 그 처한 상황이 얼마나 힘들지를 나도 안다.
나도 결혼 초엔 그런 갈등들이 있었고 힘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 손 내밀어주신 분은 시어머님이셨다.
그랬기에 20년이 넘은 이 시점이 평화롭고 단단하다는 것도 잘 안다.
시어머님과 며느리의 관계를 잘 이끌어주신 88살 시어머님이 고맙고 47살의 며느리로 앞으로도 끈끈한 인연 잘 이어가길 노력하려고 한다.
굴을 생으로 먹을 수 있다고 적혀있는 것만 사다가 생으로 먹으면 노로바이러스에서 안전하다.
그런 내용이 적혀있지 않은 굴은 모두 끓여서 익혀 먹도록 해야한다.
(응급실 비용만 20만원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