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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로루디 Jun 21. 2022

나의 우울증 일기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무서워서 쓰는 일기 


나의 우울증은 유전적 기질일까, 아니면 그냥 자연스레 생겨난 것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인정받는 것에 집착했다. 1등을 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 항상 계획을 세워 정확하게 수행했고 열심히 공부했다. 가끔은 과외 선생님과 나의 성향이 맞지 않아 숙제를 계속 미루고 미루다 그만둘 때도 있었고, 공부가 너무 싫어 울기도 했지만 그래도 태권도 다니며 나름 잘 지냈었다. 아, 왕따 당한 것 빼고. 나는 왕따를 두 번 당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둘 다 왕따 주동자가 반에서 만만한 사람들을 골라 돌아가면서 괴롭히는 방식이었다. 10년을 훌쩍 넘긴 일이지만,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나를 괴롭힌 애들 머리채를 잡고 뺨을 여러 차례 때리고 발로 걷어찰 것이다. 


어쨌든. 언젠가 큰 마트에서 숨을 못 쉬고 주저앉아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디멘터가 영혼을 쏙 빨아들이는 것처럼, 온 몸의 모든 운동 에너지를 누군가 한 순간에 빼낸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혀오면서 가슴팍이 불편해지고 순식간에 익사할 것처럼 숨이 안 쉬어진다. 쇼핑 카트를 붙잡고 주저앉은 나를, 엄마는 끼니를 걸러 그런 줄 알고 푸드 코트에 데려가 밥을 사 주었다. 15년쯤 된 기억이니, 이 때 공황장애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음' 에 가까웠다. 배고픈 게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밥을 먹었고, 엄마는 좀더 일찍 몰라본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 그게 내가 열두 살 때였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엄청난 짐을 짊어진 것 같았다. 어깨에 아주 무거운 짐이 있는 것 같았고,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눌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 선생님이 나누어 주는 고민 상담지에 '사는 게 힘들어요' 라고 적었다. 시험을 앞두고 있었기에 선생님은 그다지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같은 반의 몇 명에게 왜인지 모를 왕따를 당하며 속에 독기를 가득 품었다. 항상 도서관에서 어려운 책을 빌려 혼자 읽었다. 쉬는 시간에 말 섞을 친구가 없는 불쌍한 애보다, 책 읽기 좋아하는 문학소녀 이미지가 훨씬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죽어라 공부해서 등수를 미친 듯이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3학년이 되었다. 내가 학교를 빠른년생으로 일 년 일찍 들어갔으니, 열다섯 살 때였다. 


사실 많은 기억들이 통째로 누군가 들어낸 것처럼 사라졌다. 내가 지금 유일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손 하나 까딱 못 하는 상태였으니 일어나서 세수하고 교복을 입을 수 있을 리가. 엄마, 나 학교 못 가겠어. 엄마는 걱정스러워하면서 결석을 허락했다. 이상하게 식욕이 없어서 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 주일. 결석이 늘어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찾아오셔서 무슨 일이냐며 울었다. 나는 나를 향해 쏟아지는 관심들이 싫었다.


그렇게 다음 해 4월까지, 거의 10개월 가량을 집에서 칩거하며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상담 치료를 시작했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일 주일에 한 번, 상담 받으러 가는 것 외에는 집에 틀어박혀 텔레비전만 보고 음악만 들었다. 일 년 뒤, 같은 중학교 3학년으로 복학했다. 일 년을 무사히 잘 지내고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3개월 다니고 자퇴를 선택했다. 중압감을 이겨낼 수 없어 상담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죽어도 못 일어날 것만 같은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년 가량을 집에서 보냈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왔으니 상실감이 컸다. 그 때보다 더 지옥같은 상태로 집에만 있을 때, 집에서는 또 큰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실려가 거동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아빠의 술버릇은 더욱 심해져 물건을 부수고 엄마와 나를 때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알코올 중독 판정을 받았다. 지옥과 암흑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다가 나의 어떤 친구들은 대학에 새내기로 입학하고, 어떤 친구들은 고3이 되었을 때 문득 검정고시와 수능을 준비하기로 했다. 일 년 동안 공부하느라 힘들었지만 사실 그간 시달려온 감정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능을 치르고 와서 쌓여 있는 문제집들을 보며 울었다. 이제 저거 안 풀어도 돼. 수능은 결과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 곳으로 꼽아 두었던 대학에는 들어갔다. 이제 끝. 이었으면 좋겠는데,


대학에 다니며 완벽주의와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가 다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둘러싸인 사람들 속에서 사회화되는 과정도 어려웠다. 과 특성상 새벽 세네 시까지 모여 있다가 집에 들어오면 밤을 새서라도 과제를 하고 시험 준비를 했다. 샷 세 개가 들어간 아메리카노 두 개, 핫식스 한 캔, 캔커피 한 캔.. 어떨 때는 그 유명한 스누피 커피우유 두 개를 가지고 들어가 그것만 마시며 밤을 샜다. 남들이 들으면 놀랄 정도로 카페인 함유 음료별 함유량을 외우고 다녔으니. 그렇게 해서 따낸 수석과 차석, 그리고 장학금은 자랑스러웠지만 그 이후 찾아오는 우울증과 무기력증, 그리고 카페인 과다섭취와 피로누적으로 인한 만성 후두염과 성대결절은 참 괴로웠다. 학교 상담 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약물 치료를 권하여 약 처방을 받기 위한 병원도 따로 다녔다. 


휴학 2년을 다 사용했다. 1년은 돈을 벌며 아픈 강아지를 간호하고, 아빠의 최악이었던 술주정을 겪으면서 떨어져 살기 시작했고, 엄마가 이석증과 어지럼증으로 일어나지 못했던 시기였다. 1년은 해외에서 인턴 일을 했는데 상반기는 그런대로 버텼지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지독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로 귀국. 졸업을 위한 일 년을 어찌저찌 보내고, 졸업했다. 졸업 무렵 해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너무나 힘들었다. 취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죽어 있는 내 모습이 어딜 가나 비쳤다. 나는 방 문고리에 목을 매어 죽어 있기도 했고 길거리의 공사 중이던 간판에 짓눌려 죽어 있기도 했다. 거대한 창이 나를 관통해서 차라리 죽기를 바랬는데, 또 죽을 수 없었다. 그동안의 자살 시도와 자해 빅데이터로 살펴 보았을 때 죽는 것은 굉장한 고통과 운이 따르는 일이고, 나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아주 예전에 그림을 그려 선물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책을 쓸 테니 그림을 좀 그려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백수에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진화했다. 그 무렵 알게 된 NFT 에도 뛰어들며 활동을 시작했다. 여전히 힘들었고 여전히 우울했지만 그래도 직장에 다니지 않으니 마음껏 우울해하며 누워 있을 시간이라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죽을 것 같으면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새벽에라도 일어나서 간신히 일하고 보내면 되니까.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더 나빠질 것 같지는 않았는데 불쑥 과수면증 증상이 추가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졸려서 잠을 자는 증상이었다.


"신생아 때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 주 상담에서 선생님이 해 주신 말이었다. 자다 일어나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안 먹고 싶을 때 안 먹고, 또 졸리면 자다가, 다시 일어나고.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삶. 생각해보니 갓난아이와 똑같았다. 그러면 나는 왜 갓난아이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걸까. 물어볼 시간이 없어 그대로 약 받고 돌아왔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궁금했다. 


이것이 나의 27년 인생 이야기. 인생의 15년을 우울증으로 보낸 사람의 이야기이다.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가고, 외동딸인 나는 나대로 살아나가며 미래의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능력을 갖춰나가야 할 때인데 지금 나는 방구석에서 벽 모서리나 쳐다보면서 멍하니 누워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들어온 일은 방치한 채로. 그래서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글로 토해낸다. 나의 우울증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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