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항상 불행했으면 좋겠어
나는 초등학교 4학년에 왕따를 당했다. 5학년 때는 '찐따' 로, 6학년 때는 '왕따였던 애'로 살았지만 그 해 사귀었던 친구들이 많아 그럭저럭 잘 지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갔던 중학교 1학년의 첫 등교. 4학년 때 왕따를 주동했던 애와 같은 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고 싶어졌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애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애는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 다음 해, 중학교 2학년. 또 왕따를 당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애한테 당했다. 그 해, 나는 각자 꾸려진 무리들로부터 겉돌던 아이들과 지냈다.
어쩌면 외향적이었을지도 모르는 나의 성격이 조개 껍질 다물리듯 확 닫혔다. 그 때부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만나면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니 무슨 이야기로 말문을 트는지 몰랐다.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오죽하면 언젠가 처음 만난 사람 눈도 못 마주치고 있어서, 상대방이 사람 많고 넓은, 밝은 장소로 데려가 '여기 지금 사람 많고, 밖에 나가면 버스나 택시도 바로 잡을 수 있어. 여기 안전한 장소니까 안심해.' 라고 말을 했을까. 성별과 성향을 불문하고 낯선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 이유는 호의인지, 조롱하기 위한 빌드업인지 구분도 할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 눈물겨운 사투를 하며 사회화를 몸으로 배우기를 몇 년. 지금은 그나마 인간이라고 할 만한 꼴을 갖추었다. 물론 지금도 사람 싫어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십 년이 훨씬 넘은 이야기를 지금 와서 트라우마라고 들이미는 거야? 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사람의 인격은 생각보다 아주 어렸을 때 결정되고 그 상태로 쭉 성인까지 지속된답니다. 나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생이 결정된다는 책이 출판되고 난리였는데, 4학년과 인생 전체는 연관지을 수 있으면서 4학년과 현재의 트라우마는 연관짓지 말라는 법 있나. 사실 걔들이 날 어떻게 괴롭혔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오래되었기 때문인가? 라고 하면 글쎄, 나는 네 살 때 벌어진 일도 기억하는데. 나는 내가 억울한 일이면 '몇 시 몇 분 몇 초에 일어난 일' 이라는 것까지 기억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 지속된 우울증은 몇 달, 혹은 일 년을 통채로 없던 시간처럼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불쾌했던 시간들 중에서도 유독 잊을 수 없는 몇몇 장면들과 폭언들을 제외하고는 기억해낼 수가 없다.
사실 나는 그애들의 근황이나 소식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생각해내기도 싫었다. 모종의 이유로 학교를 나가지 않고 급기야 자퇴까지 했던 나는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그 괴로운 시간 동안 복수를 상상했다. 팔과 다리 그리고 도끼가 날아다니는 공포 영화를 즐겨보던 때도 그 즈음부터였다. 나를 괴롭힌 애들을 전부 불러다 얼굴에 '저는 학교폭력 가해자입니다' 라는 문신을 새기고 혀를 뽑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 즈음에 던져놓고 싶었다. 누군가를 정말 증오하게 되면 그 사람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고통스럽게 오래오래 살려두고 싶을 뿐.
다행히도 인간 된 도리가 있고 상식이 있는지라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 오랜 시간을 지나가는 동안, 가해자 두 명 중 한 명은 사과를 했다. 오랫동안 확인하지 않았던 페이스북 계정에 메세지가 와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대충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괴롭혔던 것 같은데 정말 미안하다는 메세지였다. 그 때는 그 이름을 생각하기도 싫어서 '괜찮다' 라고 답장을 보낸 다음 기억에서 지우려 애썼지만, 지금 다시 보니 가해자의 심리로 똘똘 뭉쳐도 이렇게 뭉칠 수가 없는 메세지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너를 많이 괴롭혔던 것 같은데'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개노답 삼총사 여기 나오셨습니다. 전형적인 내 심리 편하자고 사과하는 케이스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뻔뻔하고 웃길 수가 없다. 더 웃긴 이유. 얘 법학과 들어갔다. 나를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을 학교폭력 피해자로 만들었던 가해자가 법학과 대학생이라니.
이사를 해도 같은 동네에서 해온지라 가해자들과 나의 초중고 동창생들은 대체로 많이 겹쳤다. 때문에 페이스북에는 내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그애들의 게시물이 번번이 보이곤 했는데, 각자 다른 시기에 나를 왕따시켰던 이 둘 모두 알고 보니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한 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법학과에 다니고 있는 아이러니를 몸소 실천했고, 나머지 한 명은 대학 홍보대사를 하고 있었다. 기가 찼다. 나뿐만 아니라 만만한 애들은 돌아가면서 왕따시키던 애가 세상 착한 척 하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학교 홍보를 하고 있다니. 나는 저 학교에 찾아가 대자보라도 붙일까, 어디에 메일을 보내볼까, 정말 별별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증거라고 할 것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당시 사용하던 핸드폰은 캡쳐가 뭐야. 벨소리가 64화음인지 128화음인지 하면 최상급 스펙이었던 아주 오래된 폴더폰들이었고 카카오톡 같은 전국민 필수 메신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24시간 녹음기를 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 폭언과 폭행을 전부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증거라고 주장이나 해볼 수 있는 게시글이 남아 있는 학급 홈페이지는 이미 오래 전 서비스 정지가 되어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나는 그애들보다 대학을 일 년 늦게 갔다. 도서관이나 방 책상 앞에 그들의 얼굴 사진을 붙여놓고 지치거나 힘들 때 그걸 바라보며 공부했다. 그 상판들을 일 년간 견디고 수능을 본 뒤, 점수를 들고 입시 박람회에 갔다. 아무 정보 없이 혼자 공부한 입시생이라, 입시 박람회 정도는 가야 내가 어떤 대학을 갈 수 있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버스 환승을 몇 번 하고 힘들게 먼 길을 가야 하는 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둘 중 하나는 대학교 홍보대사였다. 그 말은, 그애들의 학교에서 주최하는 온갖 대외적인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입시 박람회에서 가장 보기 싫은 그 두 얼굴 중 하나를 마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엑스에 도착해 행사장까지 가는 동안 나는 각오를 다졌다. 가장 큰 입시박람회니까 걔가 여기 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겠지.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돼. 내 볼일만 보고 가면 돼... 그렇게 입장한 입시 박람회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입시 컨설턴트뿐만 아니라 각 대학에 입학한 언니오빠들이 과 잠바를 입고 반갑게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눈을 맞추면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각오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나는 최대한 '그 학교' 쪽은 피하려 애썼다.
하지만 내가 지망하는 대학교들 중 하나에는 '그 학교' 가 있었다. 하필 또 진학하고 싶은 학과가 명확히 정해진 상태였기에, 학교마다 각자 다른 복지와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던 학과였기에 도저히 그 학교의 부스를 건너뛸 수 없었다. 여섯 개의 학교 부스를 돌고 나서도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내 수능 성적을 탓하며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자꾸 '그 학교'의 부스에서 상담을 받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가해자 나고 학교 났나. 학교 나고 가해자 났지. 겁먹은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중요한 건 내 미래고, 그 가해자 애는 여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니 굳이 겁먹을 것도 없다는 사실을 계속 되뇌며 '그 학교'의 부스로 향했다.
패기있게 그 쪽으로 향한 나는, 그럼에도 그 애가 혹시 여기에 있을까 두려워하며 모자를 더 푹 눌러쓰고 목도리를 코 위까지 칭칭 감았다. 부스 가까이에서 옷매무새를 정리할 때 내 옆을 누군가 슥 지나갔다...그 애였다. 그 애는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날 보지 못했지만, 단번에 알아본 나는 그 순간까지도 섬뜩함을 느꼈다. 그런데, 섬뜩함이 가슴 깊이 파고들기 전 재미있는 사실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그 애는 내 생각보다 정말 작았다. 정말, 정말 작았다. 언어 필터 거르지 않고 말하자면 정말 개 x밥이었다. 내가 뺨을 한 대 때리면 행사장 저 편까지 날아갈 것처럼 작고 보잘것없었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 내가 저 x만한 년을 왜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당장에라도 시간을 돌려 과거로 날아가 날 괴롭히던 그애의 머리채를 확 잡아 뒤로 젖혀 넘어뜨리고 싶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 애는 땅에 붙을 것처럼 작고 보잘것없는데다 어린애답지 않게 천박한 말투와 행동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애가 반에서 제일 큰 애의 시선을 맞추려고 눈을 올려다보며 애써 센 척을 하며 나이답지 않은 천박한 말을 내뱉을 때, 이미 그 애를 제압할 피지컬과 힘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뺨 한 번 날리는 게 왜 그렇게 못할 짓으로 느껴졌을까. 왜 저 화려한 단복을 입고도 눈에도 안 띄는 평범한 애를 무서워했을까. 그냥 선생님한테 좀 혼날 거 각오하고 발이라도 걸어 넘어뜨릴걸. 제때 반격하지 못한 것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진짜 쟤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성인이 되면 보통 좀 달라지던데. 어쩜 그렇게 심술보 가득한 가증스러운 눈매를 똑같이 가지고 커서는 품위도 멋도 볼품도 없을까. 비로소 나는 무언가 탁,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누구보다 신나서 집에 갔던 것 같다. 문을 열자마자 엄마한테 소리지르듯 말했다. '엄마, 나 걔 봤어. 걔, ㅇㅇㅇ. 거기 있었는데 진짜 난쟁이똥자루같아. 진짜 아무것도 아니더라. 개 x밥이야. 내가 왜 그런 애를 무서워했지? 왜?' 그리고 미친년처럼 웃었다. 시원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내가 나를 괴롭힌 애들을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x밥으로 볼 수 있었던 이야기. 다행스럽게도 난
'그 대학' 이 아닌 다른 곳에 진학했고 어디에나 있는 학사비리와 조금 짰던 장학금 제도를 제외하고는 내 학교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뚜로루디 님은 지금 아무런 감정도 없으신가요? 아니요, 그 년들 생각만 하면 아직도 과거의 제가 한없이 불쌍해지는데 무슨. 무뎌지는 것과 용서, 그리고 이미 상처를 입은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애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지만, 마찬가지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애들이 저지른 학교 폭력은 지울 수 없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나는 아직도 그애들이 가장 행복할 때 추락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소식만큼은 나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매일 물 떠다놓고 죽으라고 비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내 삶을 살다가 가끔 떠오르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초라한 존재들이니 뭐 어때. 일 년에 한두 번씩 그 시절 생각이 나면 생각이 난 김에 그냥 3대가 싹 다 망해버리라고 속으로 외친다.
이러니까 제가 이 모양이라고요? 이제는 놓아줘야 한다구요? 나는 내가 성인군자의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깨달았다. 그러니 마음껏 미워할 거다. 뭐 어때. 지가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