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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로루디 Nov 06. 2022

과소비와 불안증상

정말 불필요한 소비, 이태원 참사가 정신병 콜렉터에게 가져다준 PTSD



0.

요즘은 괜찮다. 제법 괜찮다. 크게 우울하거나 크게 무기력하지도 않다. 다만 잠이 좀 늘었다. 하루에 두 번에서 세 번은 낮잠을 잔다. 하루의 3/4를 잠으로 보냈던 몇 달 전 어느 날 느꼈던 절망스러운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수치적으로 보면 약을 조정했음에도 자는 시간이 늘었으니 다음 약 처방 때 꼭 이야기하려고 한다. 


1.

돈을 많이 쓴다. 크게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있어 예상은 했지만 정작 받아든 카드 고지서는 상상 이상이었다. 왜지? 항목별로 살펴보니 이유가 납득이 된다. 10월은 굳이 안 사도 되는 것들을 그렇게 많이 샀다. 과소비는 언제나 걱정거리였지만 적어도 핸들이 가능할 정도의 소액이었는데, 이젠 도무지 소액이라고 부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허용 범위 안에 있는지 선생님들은 별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루디 씨가 지금 뭔가 공허한 것 같은데, 시간이 되면 쇼핑 페이지를 보지 말고 내가 왜 이렇게 물건들을 사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세요.' 라는 말을 해 주셨다. 


예전에는, 택배가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살아 있자는 다짐으로 오천 원 이하의 잡동사니들을 사모았다. 그러다 암흑의 시기였던 9월에는 돈을 쓰는 것조차도 부모님에게 남길 코딱지만한 유산을 깎아먹는 것 같아 사지 않았다. 그러다 10월부터 돌연 폭발해버린 것이다. 필요도 없지만 또 그렇다고 아예 쓰지도 않는 물건들도 아닌 것들.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제하는 순간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내면의 내 모습과 현실의 내 모습이 많이 다른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모든 것들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비라고 생각하는 걸까. 좋아하는 것들을 걱정 없이 사고 싶은 욕심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한 달에 한 번 지인을 만나러 나가는 것도 뜸해진 나는 굳이 나가지도 않으면서 오래된 화장품들을 버리고 새 것들을 사서 채웠다. 굳이 유통 기한 꼬박 지켜가며 사용할 필요도 없는 것들을 골라내 버리고, 채우고. 버리고, 또 채우고. 조금 남은 것들은 미리 쟁여 놓을까 하며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인형 옷들은 왜 이렇게 많이 샀는지. 레진 아트는 배우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몰드를 샀으며, 당장 입지도 못할 가죽 트렌치 코트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왜 샀을까. 바르고 다니지도 못할 검은색 립스틱은 왜 샀어? 정말로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살 때조차 나는 허전함을 느꼈다. 그래서 합배송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있는지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스크롤을 내렸다. 잠깐의 행복을 쥐어줄 수 있는 물건을 찾아서, 정작 포장 뜯고 3분이면 흥미를 잃을 텐데도. 레드벨벳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새것만 좋아해요, 반짝거리죠.'


어쩌면 나는 답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처럼 멋있게 꾸미고 다니지 못하니까 인형에게 옷을 사 입히는 것이고, 혼자 집에 있을 때 잠깐의 시간을 들여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하기 위해 평소에 입지 않을 옷도, 사용하지 않을 화장품들도 사는 것이다.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니 몰드나 재료를 사는 것일테고 - 늘 결과는 마음처럼 안 나오지만 - 그리고 남은 나머지는, 나머지는 그냥, 남을 위한 선물에 헤퍼지는 내가 자꾸 사 주고 퍼 주는 것들. 이제부터는 안 사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직 백수로서 소비는 치명적이다.



2.

밖에 나가지 않았다. 심각할 정도로 밖에 나가지 않았다. 가서 확인해보아야 하는 자리가 있는데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다. 내 그림이 어디에 전시되었다고 해도, 갈 수가 없다. 하루 내내 밤을 새어 포장과 납품을 마친 뒤 이틀을 내리 자야 했던 굿즈도 판매 중인데 그 장소에 못 가고 있다. 


추석 연휴에 나는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울었다.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심적으로 몰린 듯한 상황에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힘들어서 그냥 편히 앉아 가는 것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이나 대형 마트 정도만 힘들 줄 알았는데 자가용까지 이 모양이라니. 그날 이후 내 생활 반경은 아주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차 타고 5분밖에 걸리지 않는 마트, 그리고 꼭 가야만 하는 병원. 그 이후 일 관련 미팅을 위해 한 번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으로 향한 적이 없었다. 그 미팅 역시도 공황과 우울로 점철되어 또 다른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지만. 


최근 이태원에서 벌어진 마음 아픈 참사는 내게 더한 공포로 다가왔다. 사고가 뉴스보다 빠르게 인터넷에 퍼질 때 나는 집에 있었고 다들 무사하냐는 지인의 말에 관련 소식을 찾아보니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비극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공황 장애와 압사는 매우 다르다. 비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아예 다르다. 공황 장애는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 것이며, 심리적 상태가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압사는.. 압사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나의 공황 발작은 10분 정도이고 그 후에는 안정을 취하면 나아지지만, 압사는 공황 발작보다 수백 배는 더한 고통이 있고, 정말 안타깝지만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현장 상황이 담긴 사진을 봐버린 나는 숨이 쉬어지지 않고, 온 몸의 힘이 쭈욱 빠지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날들이 떠올랐다.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영상이 첨부된 관련 뉴스는 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숫자로 집계된 사상자들의 수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통탄할 뿐이었다. 


최근 개인적으로 있었던 일들과 이태원 참사는 나의 트라우마를 다시 심한 정도로 끌어올렸다.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던 나는 이제 극도로 거부감을 느꼈다. 약속은 전부 취소하고 내가 참여했기 때문에 꼭 들러봐야 하는 전시나 굿즈 스토어는 방문일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가만 듣더니, 불안의 증상이라고했다. 불안장애의 증상. 그냥 단순히 나가기 꺼려지는 것으로만 생각했지 선생님 입에서 '불안.. 증상이잖아요.' 라는 말을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선생님은 그래도 나가야 할 때는 나가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하니, 외출 전 공황 장애 약을 먹고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처방까지 다 받고 나와서 갑자기 번개처럼 든 생각. 난 그 약에서 효과를 본 적이 없는데. 아이고....



3.

꼭 간다던 약속까지 사정을 설명하며 못 가게 되었다고 알리니 지인은 나를 달래본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라고 말해 주었다. 그냥, 가기 전부터 가는 과정, 도착한 후까지 전혀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다. 공포에 떨며 외출 한 시간 적 약을 먹고 꼭 나가야만 하는 걸까, 라는 마음과 망설임이 아직 내게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람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4.

큰 이야기는 아니지만 온 동네 마당 강아지들과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사랑을 내가 키웠던 강아지로부터 배웠다. 뭐든 다 내어주어도 괜찮은 사랑. 흔히들 가족 간의 사랑이라 하는데, 가족 간에도 유대감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그걸 강아지와 15년 동안 함께 살며 배운 것이다. 그들은 솔직하고, 잘 삐지는데, 그래도 귀엽다. 그래도 얼마든지 좋을 만큼 사랑스럽다. 주변에 논밭이 많은 우리 동네는 지금까지 파악된 마당개만 세 마리인데 다들 성격이 참 다르다. 한 마리는 저 멀리서부터 날 알아보고 온 난리가 나고, 한 마리는 조용하고 겁이 많았다가 손을 뻗어 쓰다듬어주니 얼굴을 손에 부비고 몸을 가져다 대어 주었다. 겁이 많아 저 멀리서 얼굴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떨어져 있던 옛날을 생각하면 대단한 발전이다. 한 마리는 요란하고 활달한 친구인데 처음 마주쳤을 땐 죽어라 짖더니 이젠 얼굴 알아보면 웃으며 철창에 몸을 댄다. 쓰다듬어 달라는 뜻이다. 각자 다른 이 친구들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산책을 자주 하고 있다. 인간은 다 필요없고 오로지 동물만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내게 강아지를 만나러 나가는 시간들은 유일하게 순수한 행복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내가 크게 공감한 고양이 애호가 심윤수 작가님의 명언을 돌아보며 마무리하도록 하자. 


"인간 열에 아홉은 죽어도 되고, 남은 하나가 죽은 아홉을 통조림으로 만들어서 그 통조림을 고양이에게 바쳐야 한다"


근데 작가님, 인간은 먹이로 주기에 성분이 그닥 안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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