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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로루디 Mar 31. 2024

The World is a Vampire

sent to drain (      )

다시 돌아온 브런치. 꼭꼭 숨겨둔 공간으로 찾아 들어올 때가 되면 죽을 때를 앞둔 동물처럼 굴게 된다. 우울인지 불안인지 공황인지 꾀병인지 알 수 없는 사유로 호흡이 얕아지고 가팔라져 힘들다. 이런저런 사유로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를 겪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으나 또다시 내 정신은 아직 어렸을 적 그대로에 머물러 있을 뿐 한 걸음도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더 나아지지도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미 호되게 겪은 자기파괴적인 방법들을 억지로 옭아매다 보니 이상한 곳으로 욕구가 튀었다. 나는 요 며칠 동안 미친 사람처럼 나 자신을 팔았다. 무언가 대가를 받은 것은 없으니 팔아넘긴 것은 아닌 걸까.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와 상품이 다를 것 없다고 느꼈다. 아무나 누구나 와서 취하도록 두었다. 처음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이미 나에게 중요치 않은 개념이 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분풀이하듯 내어줄 줄은 몰랐다. 이름도 진짜 감정도 생각도 모르는 사람들이 두 명, 그렇게 스치는 동안 나는 그 와중에도 예의를 차렸고 그들에게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에 안도를 느꼈다. 치밀어 오르는 구역감을 삼킨 채. 결국 모든 것은 나를 이렇게 소비하도록 결정한 내 탓이었다. 누구도 탓할 순 없었다. 나의 잘못이니까. 나의 책임이고, 그것을 각오한 것이었으니까.


가끔, 아니 자주 상담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상담 선생님은 아직까지 나를 모르고, 약을 처방해 주는 외래 진료 선생님은 나를 너무 잘 안다. 아직까지 어리광 부릴 구석이 있는 사람과 어리광 따위 통하지 않는 사람을 동시에 만났을 때 오는 충돌은 크다. 무의식 속에서 애써 부정한 생각들이 사실이었음을 남의 입을 빌려 증명되는 상황이란. 나의 현재 상태를 논한 그 말들은 잔인하게 느껴질 구석 하나 없이 모두 사실이었기에 애써 빠짐없이 기억해두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나의 무의식에서 언제든지 꺼내면 되는 말들이었기에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늘도 조용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악에 받치거나 우울에 잠긴 채 느끼는 충동보다는 돌을 던져도 흔들리지 않는 수면처럼 무심히 드는 생각이다. 아주 옛날부터 너의 자리는 여기였다고, 너의 미래는 예정되어 있었다고. 사실은 너도 알고 있었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거지? 언젠간 죽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의 끝. 가슴에서는 무섭도록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표정은 잠깐 공허해질 뿐 그대로인 채 생각하는 죽음. 다양한 각도의 죽음, 다양한 방법의 죽음. 아직 2년 전에 썼던 유서를 수정하지 못했는데 - 라는 생각이 잠깐 앞을 막아선 채 조용히 나와 눈을 마주한다. 해야 할 일들을 적은 종이는 여전히 팔랑거리며 책상 위 펼쳐져 있다. 죽음을 앞두어도 해야 할 건 해야 하니까. 그렇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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