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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Feb 16. 2023

오늘 밤 편히 잠들기를...

한평생을 누군가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하면, 나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라고 속으론 대꾸하듯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어중간하면 십 분도 되지 않아 꿈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요즘엔 심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많지 않아서 중간에 가끔 깨어나지만, 일이라도 좀 한 날은 여지없이 그 흔한 꿈 한번 꾸지 않고 아침까지 사경을 헤매듯 잔다. 이렇게 달게 숙면하는 것도 복이라는데, 나는 정작 이런 복 받은 행동을 전혀 엉뚱한 데서 얻게 되었다.


군대에 가서 비로소 대학생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학을 다닌다는 이유로 운 좋게 사단 행정병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처음 내무반에 배치받았던 이등병시절 며칠은 부처가 좌선하듯 하루 종일 내무반에 정승처럼 박혀 있었다. 그런 부동자세가 못마땅한지 선임들은 하나같이 내게 다가와 어제 몇 시간을 잤냐고 물어봤다. 이등병의 신상도 아니고 고작 몇 시간 잔 게 뭐가 궁금한지 나도 궁금했다. 신참이라 아무것도 못하는 이에게 뭘 시킬 수 있겠냐마는, 그래서 그런지 그때는 하루에 8시간을 꼬박 재웠다. 그들은 하루 여덟 시간을 잤다고 하면 마냥 부러운 얼굴로 “좋~겠~다”하고 한탄하듯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그 궁금증은 얼마 되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아무리 군대 행정직이라도 야근이 많았고, 일과가 끝나면 최고 고참들이 책을 보네, 공부를 하네, 장기를 두네 하며 놀다, 점호를 받기 싫어 밤 열 시가 넘어서 내무반에 내려갔다. 그러면, 중간 고참들은 그 후 두 시간을 하염없이 자신들이 왕 인양 사무실에서 뻐기다 내려갔다. 막내인 신참들은 그제야 청소를 하고 밤 12시가 넘어서 내무반에 잠에 취해 내려갔다. 잠시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야간근무 두 시간을 선임과 함께 나갔다. 고참은 자신의 지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잠을 청했고, 신참인 나는 꼬박 서서 고참의 단 밤잠을 보초 섰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하루에 2시간을 자기도 모자랐다. 근무를 나가 인간이 서서 자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 걸어간다는 것도 배웠다. 둥근달을 보며 신세를 한탄하다, 그 거대한 물체가 졸음에 순식간에 눈앞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마술과도 같은 경험도 했다. 그렇게 잠에 시달리니,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자동으로 자게 되는 신선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전방의 체감온도는 언제나 시베리아보다 추웠고, 그 어느 겨울밤, 사무실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군대 계급의 자리는 언제나 난로 거리와 비례해서 배치되었기에, 그 밤 얼은 손을 호호 불며 타자를 열심히 치고 있던 날이었다. 불현듯 고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하고 달려가 보니, 고참은 석탄 난로 옆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 악몽을 꾸었나 싶어 다시 뒤돌아서 자리로 돌아갔다. 얼마 되지 않아 또 절규가 들렸다. 왜 그러시냐고 깨워도 잠에 깊이 빠져든 고참은 일어나질 않았다. 인간이 잠에 취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고참은 다리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 의무대에서 나왔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날 자신의 다리를 잠결에 몇 번이고 난로에 갖다 대었고, 다리에 화상자국이 크게 났다. 내가 들었던 비명이 여러 번이었으니, 고문 같은 아픔이 잠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과거의 뉴스의 영상을 가지고 당시의 문화를 알아보는 예능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우연치 않게도 1980년대에 사람들이 열대야에 지쳐 노상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다리밑에서, 돗자리를 요로 삼고, 신문지 한 장을 이불 삼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잠을 자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연출이 없는 확실한 뉴스임에도 그 화면에는 카메라의 대낮 같은 환한 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잠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쳤고, 그 화면에서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이 장면을 함께 보던 아내는 툭 한 마디를 던졌다. “그때는 사는 게 정말 힘들었을 거야”.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에어컨도 없고 전기도 귀했던 때니, 삼복더위가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는가. 그러니 밖으로 나가 주변의 소음과 불빛을 뒤로한 채 잠을 청하던 그들의 행동이 타당해 보였다.


그에 반해 현대인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사당오락이라는 신조어가 생겨 잠을 줄여야 출세할 수 있다고 떠들었고, 근래에 들어선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새벽 네 시 반의 기상을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곳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 마치 죄악이라는 듯 떠들어대니 현대인에게 잠은 쓸데없는 휴식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다. 거기에 직장의 업무가 컴퓨터가 알아서 해준다고 해도, 인간의 창의성을 회사가 강조하다 보니, 몸은 편해도 머리는 온통 일에만 미쳐 있을 것이다. 그런 걱정을 하루종일 하다 보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니고, 자도 자는 것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은 몸은 편해도 마음은 불편한 사람들이고, 문명의 이기가 주는 혜택을 엉뚱하게도 잠을 빼앗는 꼴이 되어 버렸다. 


요즘은 밤 열시만 되면 나 스스로 이부자리로 향한다. 젊을 때는 꽤나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초저녁 잠을 견뎌도 늦은 잠을 견디지는 못한다. 나는 꿈을 만나기 위해 자리에 눕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내일을 잘 만나기 위해 잠을 청한다. 그러니 잠 못 드는 그대들이여, 내일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밤 편히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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