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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Nov 05. 2022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에겐 슬픔이다

중년 백수의 생 바라보기 5

장면 1

요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핼러윈이 다가오던 일요일 아침, 인터넷과 뉴스는 온통 그 전날 밤에 있었던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인한 비통함을 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서울에 조카들이 있고, 그 조카들이 20대와 10대이기에 급한 마음에 연락을 했다. 동생은 조카들은 집에서 단잠을 자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장면 2

비극이 있었던 날, 나는 또 다른 비극을 겪었다. 평소 아끼던 후배의 아버님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장례식장이 결정이 되어, 제주에 사는 나는 급하게 비행기표를 알아보았다. 그날 모든 좌석이 매진이었다. 제주도는 지금 단풍이 제철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 모양이다. 그들은 행복하였겠 지만, 아끼는 후배에게 위로의 말을 전달하려던 나에겐 비극이었다. 난 결국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슬퍼하지 못함에 미안함을 전했다. 그래도 그 안타까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처럼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의 슬픔으로 바뀌는 시간이 있다.


이러한 일들은 주위에 비일비재하다.



직장에선 어떠한 가? 승진한 이는 기쁘겠지만, 한편으로 승진을 하지 못한 이는 슬플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합격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그 반대편의 누군가는 불합격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심지어 나의 부는 어떠한 가? 내가 돈을 벌었다는 이유는 누군가는 돈을 잃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기에 이러한 기쁨은 누군가에겐 슬픔이 될 수 있다. 우린 기쁨 뒤에 숨겨진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즐기는 기쁨이 온전히 운이라 믿어야 한다. 혹자는 이런 기쁨도 모두 자신의 실력이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것은 그의 실력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운이라면 믿겠는가


지방의 탄탄한 대기업을 다니는 이와 서울에 중소기업을 다니는 회사원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직장의 안정도와 월급 측면에선 지방의 대기업에 다니는 이가 유리해 보이지만, 정작 10년이나 20년 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파트에 따라 서울 자본의 성장 속도가 지방보다는 클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실력으로 내 부가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닐 것이다. 실력이 있어도 부는 운에 따라 축적되기 쉽다.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그 번잡한 곳에 왜 갔냐며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마약을 하러 간 것이 아니냐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불행이 언제든 자신에게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저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태도로 남을 비난하지만, 결국 그들은 운이 남들보다 조금 좋았을 뿐이다. 그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자왈 "견현사제언, 불현이내자성야."


공자가 말하길 "어진 사람을 보면 같아질 것을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속으로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이처럼 어질지 못하고 겸손을 배우지 못한 이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지혜이다.


우리의 기쁨이 남에겐 슬픔이 될 수 있다는 보편적 진실을 항상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런 겸손이 쌓여 우리는 비로소 한 단계 성숙한 사회를 스스로 만들 것이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빌어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희생되신 모든 분들에게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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