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나로 살아가는 즐거움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저는 이 말이 참 좋았습니다. 이미 정해진 결말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무한히 달라질 수 있는 열린 결말 같았거든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잊고 새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원씽> <10배의 법칙> 같은 자기계발서들은 이런 저의 등을 힘껏 밀어주었고요. 책을 읽었을 뿐인데 드림보드 속 미래의 저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배우고 싶은 것도, 잘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면서 가입한 온라인 모임은 끝없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마주하는 순간이 생겼습니다. 바로 '자기소개 시간'인데요. 비슷한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도전하는 멋진 엄마'는 제 명함이 되어주었지만, 회의실에서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 앞에서 저의 명함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00전자 HR팀의 000입니다."
이런 군더더기 없는 소개가 참 부러웠어요. 반면 제 소개는 "00을 위해 도전하고 있는 000입니다."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문장뿐이었으니까요. 괜히 지난 커리어를 끄집어내며 '나도 사회생활 해볼만큼 해본 사람이거든?!' 하고 위안 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소개가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는, 사실 제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엔 정반대로 생각했어요. 나는 내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데, 세상만 그걸 몰라봐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괜스레 타인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위로를 삼기도 했습니다. 그럼 조금은 위로가 되었던 것도 같고요. 이제 와 돌아보니 부끄럽게도 전형적 피해자 마인드였네요. 사실은 제 자신이 미치도록 못마땅해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겁니다. '갓생'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요.
한없이 이불속으로 숨어버리고 싶던 마음은 단순히 번아웃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열심히 달려가다가도 한순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던 날들의 이유를요. 제 갓생은 성실한 열심이 아닌 도피에 가까운 달음박질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빨리 달리게 도와주는 러닝화가 아닌, 땅을 온전히 느끼며 굳건히 설 수 있는 맨발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렇게 신발을 벗고 맨발을 마주하며 침잠한 시간은 낯설고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제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서툴고 적막한 시간이 이어진 끝에, 제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바로 '깊이'였어요.
늘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니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도전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세상은 넓어졌지만 제 안은 공허했고, 넓은 세상 속에서 저는 오히려 작아져 갔습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는 것만 봐도 그렇죠. 하지만 이제는 '넓어지는 갓생'이 아니라 '깊어지는 갓생'을 살고 있습니다. 붕 떠 있는 듯하던 일상은 한결 고요해지고 묵직해졌습니다. 새로운 도전은 화려해 보이지만, 깊이 없는 확장은 결국 도파민 중독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진짜 어려운 건 도전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하는 일이더라고요.
저에게 갓생은 글쓰기와도 같습니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보이지 않는 뿌리를 단단히 하는 일. 요즘 제 갓생은 그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저 자리에 앉아 묵묵히 글을 쓰듯, 삶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갓생을 사는 요즘, 이제야 저의 무기력은 저 혼자 이불속에서 긴 잠을 자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