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용하면 약이 되는 '괜찮아'
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를 오르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숨이 차는 겁니다. 마흔을 넘기면 해마다 몸이 달라진다더니 정말 그런 걸까요? 그런데 아직 계단 절반도 못 올랐는데, 이건 좀 심하잖아요.... 당혹스러움과 한심스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 집으로 돌아와, 비장하게 chatGPT를 찾았습니다.
"저질체력을 키우는 법을 알려줘."
고강도와 중강도를 병행한 훌륭한 코스를 알려주었고, 저는 그날부터 땀으로 온몸이 젖도록 운동기구 위를 달렸습니다. 땀과 함께 영혼까지 털려나가는 듯했지만, 그럴수록 자기반성은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 보통 얼굴에 광이 나는 거 아니던가요. 하루가 멀다 하고 턱과 목 주변으로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생긴 것이 아물기도 전에 또 하나가 올라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턱과 목 주변은 붉은 그늘이 드리워졌습니다. 더 이상한 건 저질체력이나마 있던 체력이 아예 방전된 듯 떨어졌다는 겁니다. 그제야 알았죠. 내 몸에 문제가 생겼구나 하고요.
인터넷을 헤집다 '갑상선 저하증'이라 셀프 진단을 내리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대기실에서 앉아있는 것마저 힘겨워 고개를 푹 떨군 채 순번을 기다렸습니다. 제 이름이 불리고, 문제를 풀고 답안을 확인하듯 진료와 검사를 마친 뒤 하루가 지나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검사결과 빈혈소견 확인되어 조속히 내원 및 상담 바랍니다.'
제 답은 완전히 오답이었습니다. 정상 수치보다 한참 못 미치는 결과라고, 상급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요.
그렇게 진료소견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지더라고요. 인근 상급병원 예약은 한 달 반 뒤에야 가능했지만, 그것도 괜찮았습니다. 그동안 게으름이라 믿고 스스로 낙제점을 주던 날들이 그제야 억울함을 벗는 기분이었거든요.
저는 그동안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담은 공감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위로가 나를 그대로 주저앉혀버릴 것 같아 두려웠던 것도 같아요. 그래서 차라리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자기계발서가 제 취향에 가까웠어요. 나약한 생각이 쏙 들어갈 만큼 논리적으로 혼이 나더라도 말이죠.
여전히 말랑말랑한 위로가 담긴 글을 자주 읽지는 않지만, 대신 그와 비슷한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곤 합니다. 처음으로 나에게 위로를 건네던 날을 기억합니다. 낯설고도 깊숙이 파고드는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거든요. 때로는 일기 형식으로, 때로는 명상 형식으로 나를 달래고 잔잔한 응원을 보내곤 합니다. 가끔은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붙잡고 뒹굴거려도 너그러이 받아줍니다.
게으름과 쉼. 이 둘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땐 가만히 앉아, 게으름과 쉼의 경계에서 더 깊게 나를 들여다봅니다. 생각보다 게으름보다는 쉼이 필요할 때가 많았습니다. 불시에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 때문일 때도 있었고, 번아웃 때문일 때도 있었으니까요.
갓생답게 살겠다고 애쓰다 보니, 깨달은 게 있어요. 사람은 기계처럼 한결같은 에너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요. 당연한 말 같지만,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이 모든 게 게으름처럼 느껴졌거든요.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은 대부분 엄격한 루틴을 지켜왔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요.
하지만 조금 덜 성공하면 어떤가요.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인데, 힘들면 속도를 늦추고 잠시 서서 물도 마시고 숨을 고르다 다시 출발하면 되는걸요. 오히려 조금씩 멈춰가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게으름이 아니라 숨 고르기. 그 시간을 인정할 때 오히려 더 멀리 걸어갈 힘이 생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