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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결국, 실패한 전 세계 팀플이 될까

눈부신 생산성에 가려진 AI에 대한 오만과 편견

by 그웬

Artificical Inteligence. 한국어로는 인공 지능. 간단히 줄여서 AI.


요즘은 이 AI를 모르고는 살 수가 없다. 어딜 가나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가 지겹도록 AI를 말하니까. 새로운 기술이 이렇게 순식간에, 광범위하게 퍼진 적이 또 있었을까. 최근 1년 사이 AI 분야는 놀랍도록 무섭게 발전했다. 개발자 회의실부터 디자이너의 무드보드, 마케터의 프레젠테이션, 대학생의 리포트와 중학생의 수행평가까지, AI는 가장 먼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그렇게 업무 생산성 향상을 키워드로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한 AI는 서서히,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빠르게 우리의 삶 전반에 스며들어 이젠 적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는 물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AI에게 털어놓는가 하면, 요샌 하다 하다 챗GPT랑 연애하는 게 유행처럼 번질 정도다. 유례없는 기술의 등장에 넋이 나가 있는 사이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 AI가 끼어들지 않는 순간이 없게 되어버렸다. 정말인지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AI를 떠들어대는 바람에 요즘은 AI 두 글자만 봐도 벌써 진부함이 느껴질 정도다.

“AI 특이점이 머지않았대.”
“5년 안에 인간보다 똑똑해질 거래."
“인류는 곧 AI에 대체될 거야.”

이토록 많은 이들이 매일같이 AI를 말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AI의 본질과 실체를 딱 잘라 말하지 못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지금보다 얼마나 더 가속화될지, 그 확장 가능성은 어디까지인지, 그에 따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윤리적인 위험이 정확히 무엇인지, 내로라하는 각 분야 석학들까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 사회적 여파가 대체 무엇인지, 우리 중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잘 모르지만 똑똑한 무언가’를 맹신하며 일상의 혁신을 꿈꾼다. 내 미래를 담보로, 인생을 통으로 맡기면서도 과연 그것이 우리의 바람대로 인류를 위한 개혁이 될지, 아니면 멸종의 시작점으로 기록될지 모른 채.




AI는 도구가 아니다. 에이전트다.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저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단언한다.

AI는 도구가 아니라 에이전트이다.
AI is an agent, not a tool.


그렇다. AI는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컴퓨터 기술 내지 소프트웨어 툴로 간단히 정리할 수 없다. AI는 그 이름의 의미대로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며, 문제 해결을 위해 알아서 배우고 진화할 뿐 아니라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전에 없던 전략까지 만들어낸다. 바꿔 말해, 인간처럼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기에 예측할 수 없으며, 인간이 만들어 냈지만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존재, 그게 바로 AI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AI의 극히 단편적인 부분, 생산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한다. ‘업무 자동화를 위한 AI 활용법', ‘AI 시대 개발자가 살아남는 법', '디자이너를 위한 AI 바이블', '마케터를 위한 업무 최적화 전략'처럼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판단하는 AI의 존재를 ‘말 잘 듣는 도구’로 착각하는 편이 훨씬 안심되기 때문이다. 복잡한 철학적 담론에 휘말리지도, 발전에 방해만 될 뿐 골치 아픈 윤리적 책임도 묻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정말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 말할 수 있을까? 어차피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이니, 일단 덮어놓고 AI 특이점, 즉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그 정점을 선점하기 위해 달려가는 게 맞을까?



협력 없는 팀플은 필패한다.


이건 전 세계가 함께하는 일종의 그룹 과제다. 과제의 이름은 ‘AI 특이점 대비를 위한 인류 상호 신뢰 쌓기 프로젝트’. 미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지만 과제의 목표도, 범위도, 룰은 고사하고 이미 팀 빌딩 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어떤 나라들은 기술로 앞서 나가고 있고, 어떤 나라들은 뒤처진 채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기술을 만든 이들과 사용하는 이들 사이에도 이해의 간극이 있다. 협업은커녕, 아직 누가 리더이고 팀원인지조차 합의되지 않은 총체적 난국. 이런 상황에서 협력조차 팀플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런 비슷한 팀 과제를 해봤다. 그리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과제 명: 기후 변화 임계점을 막기 위한 지구 살리기 챌린지
팀 구성원: 전 세계 각국
리더: 선진국
팀원: 개발 도상국

평가자: 지구
중간 평가 점수: F
마감 기한: 2030년
총점: 미정 (Fail 확률 80% 이상)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후 변화는 인류 최대의 위기라며 온갖 경고가 쏟아졌다. ‘기후 변화’ 혹은 더 이전엔 ‘지구 온난화’라고 불리던 이 전 지구적 과제의 마감 기한은 2030년. AI 특이점과 마찬가지로 이제 겨우 5년도 채 남지 않았다. 기후 변화 역시 모두가 협력해야만 완수할 수 있는 과제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꺼이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았다. 각국은 책임을 미뤘고, 서로를 의심했으며, 적극적으로 감축 노력을 실천한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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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기술을 사랑하는 크리에이터. 지식보단 지혜를 전하기 위해, 오늘의 통찰을 공유하며 내일을 위한 깨달음을 글로 씁니다. 본업은 외국계 IT 교육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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