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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한 행복의 공식

왜 삶은 고통의 연속일까

by 그웬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반복되는 물음표들이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이건 삶이 무엇인가를 끝없이 고민하는 아주 오래된 인간의 숙제이기도 하다. 질문은 매번 같지만 답은 결코 같을 수 없는, 마감일은 없지만 빨리 제출할수록 삶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인생의 과제.

"요즘은 참 살기 좋아졌어."

실로 예전보다 살기 편한 좋은 세상이다. 적어도 삶의 껍데기는 몰라보게 윤택해졌고,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들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정작 내 행복은 이상하게도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속은 원인 모를 감정에 휩싸여 자꾸 곯아간다. 분명 어릴 때는 사소한 일에도 행복했는데, 어딘가 계속 삐걱거린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묘하게 조금씩 어긋나는 내 삶의 궤도,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그 질문들의 중압감에 짓눌려 혼자서 감당하기엔 버거운 불안과 어쩔 수 없이 공생한다.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 수 있을까 묻고 또 물으면서. 끝나지 않는 고난과 역경 앞에서 몇 번이고 되뇐다.

사는 건 원래 이렇게 힘든 걸까?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을까?


삶은 왜 고통스러울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온전히 받아줄 존재를 찾아 헤맨다. 그건 아마도, 대부분 어린 시절 세상에서 두 번 다시없을지도 모를 '가장 완벽한 내리사랑'의 행복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떤 존재보다 연약하고 불완전했으나 사랑만 받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던 시절을.


문제는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서도 너무도 당연하게 일반적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조건 없는 인정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세상에서 처음 배운 삶에 대한 감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는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은, 끝없는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도 같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의 품 속에서 느낀 그 절대적인 인정의 안정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살아가며 만나는 이들에게서 무의식적으로 ‘무조건적인 인정’을 항상 기대한다.


하지만 세상은 부모-자식 간의 관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제나 나를 향한 조건이나 기대 위에 세워지기 마련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순 없는 건가요?”

그러다 계산적인 삶에 질려 상대에게 항의해 보지만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길 바라는 욕구, ‘무조건적인 절대적 사랑’에 대한 욕망은, 현실에서 완전히 충족될 수 없는 이상향처럼 남는다—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인간의 관계에서만 가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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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기술을 사랑하는 크리에이터. 지식보단 지혜를 전하기 위해, 오늘의 통찰을 공유하며 내일을 위한 깨달음을 글로 씁니다. 본업은 외국계 IT 교육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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