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여행 1
이번 목적지는 남해다.
우리 아빠는 경남 토박이다. 경상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아빠는 주저 없이 남해라고 했다. 운전하며 아름다운 바다와 섬들을 지나간 적은 있었지만, 남해를 목적지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천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남해가 나온다. 일정을 일요일로 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자연휴양림 숙소는 언제나 토요일이면 예약이 꽉 차 예약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째,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결석을 감수하고 자연으로의 소풍을 떠났다.
1박 2일 일정은 다음과 같다.
일요일 오후 - 남해편백자연휴양림 도착, 고기 구워 먹기
- 산책, 별 보기, 숲책 읽기
월요일 오전 - 자연휴양림 산책, 피톤치드 듬뿍 받기
- 간단한 아침식사 (고구마빵과 우유)
- '남해의 숲'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
- 양마라뜨 농장에서 양 먹이기 체험
이번 여행도 이모 찬스를 썼다. 여동생이 함께해 주었다. 물론 여동생은 재택근무 중이라 월요일에는 카페에서 계속 일해야 했지만, 그저 같이 차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네 아이의 엄마인 나는 감동이었다.
여행을 하면 외식이나 고기 구워 먹는 것이 주요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네 아이의 엄마인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특히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쌍둥이가 있는 엄마라면, 무엇보다 간단하고 편리한 여행을 선호하게 된다. 식당에 들어가 아이를 먹이는 것 자체가 노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간편한 음식들을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싸 넣는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도시락, 고구마 카스테라, 우유, 삶은 계란, 아기 이유식, 분유와 데운 물까지 준비한다. 15개월이 된 지금은 정수기 물도 마실 수 있어서, 바리바리 끓인 물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그리고 치트키. 접이식 침대는 꼭 챙겨야 한다.
“자, 떠나자 아이들아\~”
차 안에서는 오디오북을 틀어준다. 우리 아이들은 운전 중 오디오북을 듣는 걸 좋아한다. 페파피그나 매직 스쿨버스 중 하나를 수십 번씩 듣지만, 여전히 좋아한다. 이미 들은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게 좋은 그들이 신기하다. 나는 한 번 들은 이야기는 두 번 듣지 않으니까.
남해까지는 1시간 30분쯤 걸릴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가는 길 자체가 힐링이었다. 아름다운 섬과 바다, 산, 그리고 길게 뻗은 다리들. 이래서 사람들이 드라이브를 즐기는구나 싶었다.
남해편백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새로 조성된 자연휴양림은 보통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많은데, 아쉽게도 이곳에는 그런 시설이 없었다. 대신 편백숲의 피톤치드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우리는 2시에 도착했다. 남동생 부부를 만나 숲 속을 아기들과 함께 거닐었다.
마법 같은 편백숲은 꽃이 없는데도 꽃향기가 난다.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평상에 누워 숲 내음에 취하고 싶지만, 쌍둥이 엄마에게는 그런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셋째 딸은 차분하고 조용한 순둥이다. 혼자 나뭇가지와 돌멩이를 주워놓고 이리저리 옮기며 한자리에 잘 앉아 있는다.
반면, 넷째 아들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났는데도 완전히 다르다. 개구쟁이도 이런 개구쟁이가 없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어디가 가장 위험한지를 알아내려는 듯 끊임없이 넘어진다. 그래서 나는 셋째를 이모와 숙모, 외삼촌에게 맡기고, 이 너구리 같은 막내를 따라다녔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편백숲에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피톤치드가 내 몸 구석구석의 독소를 씻어주겠지.’
토끼, 다람쥐, 사슴 조형물과 편백나무 사이를 뛰놀다 보니 어느새 3시가 되었다. 체크인 시간이다.
오두막 숙소들이 운치 있고 숲 속 느낌이 물씬 나지만, 우리는 휴양관을 선택했다. 오두막은 계단이 많아 유모차를 끌고 오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오두막도 이용해보고 싶다. 높은 계단 위에 있는 오두막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아직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우리는 숙소에서 먼저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나는 원래 냉동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하려 했지만, 남동생이 근처 농협에서 고기, 야채, 전기불판까지 챙겨와 직접 고기를 구워주었다. 손이 큰 올케는 야채와 샐러드를 깨끗이 씻어오고, 삼겹살, 항정살, 목살, 버섯, 소시지까지 남동생은 고기 부위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요즘 숙소 대부분은 실내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없다. 베란다가 조금 넓길 바랐지만, 한 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크기였다. 그 작은 공간에서 남동생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구워냈고,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고기를 냠냠 먹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남동생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고, 아기들은 잠이 들었고, 큰아이들은 영화 한 편을 봤다. 쌍둥이가 깊이 잠든 밤, 나는 큰아이들과 함께 야간 산책을 나섰다. 편백숲의 밤 공기를 맡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기기피제를 꼼꼼히 뿌리고 손전등을 들고 매점 쪽으로 향했지만, 8시라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대신 숲속 산책로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냇물도 구경하고, 빈 캠핑 사이트에 누워 별도 보고 돌아왔다.
우리 숙소는 원룸형이었다. 아기들이 자고 있어 실내에서 불을 켤 수 없었기에, 우리는 주차장 옆 가로등 아래에 돗자리를 깔았다. 모기향을 피우고, 준비해 간 책을 읽었다. 밤공기와 숲내음이 어우러진 조용한 숲책 시간은 정말 낭만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