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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리의 시작점 황금계란볶음밥

by 수평선너머

계란볶음밥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계란, 햇반, 맛소금 3개 만으로 구성된 단순한 조합의 황금계란볶음밥을 도전해 보길 바란다. 영양 불균형의 식단으로 연명했던... 혼자 사는 20대 자취남 시절, 난 그 계란볶음밥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20살 자취를 시작하던 시절, 집이 꽤 어려워졌다. 과외로 생활비를 채웠던 것 같다. 과외비는 제법 두둑했기에 생활에 어려움을 없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을 때 나만 과외를 하러 가는 길은 좀 서글펐던 것 같다. 추운 겨울 당구장에서 나와 추운 손을 호호 불며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가끔은 과외집에서 저녁을 얻어먹는 일도 있었고, 집에 와서 조금 늦은 저녁을 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처럼 배달 어플이나 간편식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밖에 나가서 밥 먹을 장소를 찾고,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밥을 먹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간단히 먹기에는 라면이 최고였는데, 간혹 다른 음식을 먹고플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먹었던 것이 계란볶음밥이었다.


혼자 자취를 하는 20대 남성의 냉장고에는 식재료는커녕 그 흔한 계란조차 없었다. 집 앞 슈퍼에 가면 계란 한 개를 150원에 팔았다. 100원 동전 한 개와 오십 원 동전 한 개 혹은 십원 동전 다섯 개를 들고나가 계란 1개를 사 왔다. 그게 요리 재료의 전부였다. 더 넣을 것을 찾을 수도 있었는데 무엇을 해 먹는다는 게 용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내가 자주 해 먹었던 건 황금계란볶음밥이란 거창한 이름이 붙지만 사실 계란을 미리 밥알에 코팅하는 과정이 하나 더 들어갈 뿐인 단순한 조리법의 볶음밥이었다. 그릇 하나를 꺼냈고 계란을 풀어 맛소금을 넣고 휘휘 저었다. 그 위로 30초 정도 렌지에 돌려 살짝 풀린 햇반을 넣고 더 휘저었다. 밥알 전체가 계란으로 코팅될 때까지 휘저었다. 계란 두 개가 더 나은 선택이었을 텐데 왜 그땐 계란 한 개만 썼는지 모르겠다.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불을 켜곤 그 위로 계란 코팅된 밥알을 올렸다. 약불이나 중불로 조절한다는 개념은 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냥 강불 위에 올라간 프라이팬에 계란 밥알을 모두 던져놓고는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2-3분쯤 젓가락으로 휘젓고 있노라면 계란의 끈적거림이 사라지고 밥알이 볶음밥의 형태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불을 끄고, 체다 치즈 하나를 올리고 프라이팬 채로 책상 위에 올려놓고 김치를 꺼냈다.


뜨거워서 아직도 김이 나는 계란볶음밥을 한 숟가락 입안에 넣으면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계란이 코팅되어 고소함이 묻어나는 밥알은 짭조름한 단맛이 났다. 첫맛은 맛소금의 감칠맛이 섞인 짠맛이 혀를 때렸고, 씹을수록 밥의 고소함이 밀려 올라왔다. 중간중간 고소한 계란이 섞여 씹히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순한 맛이었다. 체다 치즈가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3-4 숟가락 먹다 보면 다소 물리는 맛소금의 짠맛에 체다 치즈의 맛은 변주를 주었다. 치즈의 짭조름함이 과한 상태로 계란볶음밥과 씹다 보면 찾아오는 아쉬움은 김치를 한 점 먹으면 사라졌다.


가격이나 맛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시간이었다. 조리에서 밥을 먹고 설거지를 완료하기까지 10분의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4학년 때 공부를 위해 과외를 줄여야 했고, 뒤늦게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시기에 점심을 짧게 때우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에도 적합해서 라면과 더불어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계란볶음밥의 형태는 변화해 갔다. 코팅팬에 쇠젓가락이 아닌 나무젓가락을 사용해야 프라이팬을 오래 쓸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맛소금만으로 간하지 않고 다른 양념을 추가하게 되었다. 계란 두 개에 밥을 코팅할 때만 맛소금을 썼고, 요리를 할 때는 간장 반 숟가락과 굴소스 한 숟가락을 추가하게 되었다. 물리던 짠맛에서 간장으로 풍미가 생겼고, 굴소스가 더해졌다. 차이는 단순하지만 강했다. 단맛과 짠맛, 고소함, 감칠맛이 층층이 레이어를 쌓아 입체적이며 복합적인 맛을 만들면 4-5 숟가락이면 물리던 계란볶음밥이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맛있음을 유지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이 길어지며 냉장고에 재료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볶음밥에는 계란 외에 냉동 새우와 게맛살 그리고 다진 양파와 당근이 추가되었고, 파를 손질해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식용유가 아닌 파기름을 내어서 볶음밥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내 요리의 시작은 이 계란볶음밥이었다. 계란볶음밥을 시작으로 찌개를 끓이게 되었고, 마파두부덮밥, 비빔밥, 떡볶이 등 다양한 요리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식단 제한으로 계란 노른자를 먹지 못하다 보니 문득 먹고 싶어 져서 이렇게 기억을 끄집어내 본다. 오늘 하루 계란볶음밥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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