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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부대찌개, 취향도 변하더라.

by 수평선너머

나는 군 생활을 송탄에서 했다. 무려 3년이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고,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점심을 동기들과 함께 사 먹었다.


그 수많은 점심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었냐는 이견이 있겠지만 가장 유명한 음식이 무엇이었냐에는 모두들 인정하는 답이 있다. 송탄이란 지명을 달고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음식은 부대찌개다.


그렇다. 나는 부대찌개를 싫어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주도하는 우리 집 밥상에 햄을 사용한 음식이 올라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요리에 있어 묘한 고집과 취향을 지닌 어머니는 햄을 가족의 건강을 해치는 중대한 적으로 간주하셨던 것 같다. 운동회나 소풍 같은 행사일에 싸주던 김밥에도 햄은 없었다. 그 자리는 늘 게맛살이나 오뎅 볶음이 대신했다.


아직 도시락을 싸 오던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의 반찬통은 분홍소시지를 계란물에 묻혀 구운 것이나 비엔나소시지 볶음 같은 것이 가득했다. 내 도시락의 반찬통은 계란말이나 두부 구이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에 대한 불만은 0도 없었다.


한 번 자리 잡은 입맛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도 햄과 소시지를 멀리 했다. 김밥천국에 가서 김밥을 먹을 때면 햄을 빼달라 했고, 핫도그는 속이 햄이 아닌 치즈로 채워진 것만 먹었다. 이런 상황에서, 햄이 가득한 부대찌개를 사 먹어본 기억은 당연히 없었다.


대학교 앞에는 동기 몇 명이 유난히 좋아하던 송탄부대찌개집이 있었다. 매번 질리지도 않고 부대찌개만 먹는 그들이 궁금해 한 번은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급식으로 나온 부대찌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그들의 설득도 한 몫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계절이었다. 동기들은 단골 티를 내며 아주머니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바닥이 뜨끈뜨끈한 작은 방으로 향했다. 온기에 몸을 녹이고 있으니 밑반찬과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간 부대찌개, 밥이 담겨있는 그릇이 차례로 상위에 놓였다.


부대찌개의 국물과 햄, 소시지는 모두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과하게 여러 맛이 진하게 다가왔던 느낌이랄까. 결국 라면 사리를 건져 국물 조금과 밥을 비벼먹었다. 밑반찬이 없었다면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럴 거면 라면을 먹지, 왜 돈을 더 내고 부대찌개를 먹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공간은 마음에 들었다. 문을 닫으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는 느낌을 주던 작은 방. 친구들은 밥을 다 먹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바닥에 누웠다. 그 뜨끈한 바닥에 누워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자니, 그곳이 천국 같았다. 통학에만 한 시간 넘는 시간을 쓰던 친구들은 그 휴식을 통해 다시 강의를 들을 기운을 얻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햄과 친해지기 위한 시도는 이어졌다. 하지만 친구 자취방에서 술안주로 먹었던 렌지에 돌린 스팸은 짜기만 했고, 누군가 아침으로 제공한 스팸 프라이팬 구이는 딱딱하고 짠 햄 맛만 기억에 남겼다. 감자가 박혀 ‘만득이’라고 불렸던 핫도그는 감자와 밀가루만 떼먹다가 욕을 먹기도 했다.


온갖 시련의 시기를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송탄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한 번의 실패 이후 피해왔던 부대찌개를 점심이나 저녁 메뉴로 먹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부대 사람들은 송탄에 오래 거주한 사람이 많았고, 부대찌개집 중에서도 송탄 내에 유명한 곳만 찾아서 방문했다.


‘김네집’과 ‘최네집’, 송탄부대찌개를 양분하는 대표 가게 두 군데를 주로 갔었다. 같은 주방에서 시작했던 집답게 기본 맛은 비슷했다. 좀 더 묵직한 맛을 원한다면 ‘김네집’ 대중적인 묵직함을 원한다면 ‘최네집’으로 선택이 나뉘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그 집이 그 집이었다. 맑은 육수의 깔끔한 맛이 유명한 의정부식 부대찌개집도 가보았지만 국물맛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부대찌개에 들어가 있는 햄 맛이 싫었고, 그 햄의 맛이 녹아있는 육수가 별로였던 것 같다.


결혼하고 매주 1회는 부대찌개를 끓여서 나에게 식겁했던 아내가 들으면 황당할 일이지만 그때는 아무리 유명하고 맛있다고 주변에서 극찬을 해도 나는 부대찌개가 싫었다. 어쩌다 나는 부대찌개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입 맛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였다. 굶주림. 그렇다 굶주림만이 입맛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그 외의 요소도 있지만 단언컨대, 굶주림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추운 날이었다. 추운 날의 나는 항상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저녁 시간을 넘긴다. 그렇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심도 먹지 못하고 쫄쫄 굶은 상태로 저녁을 맞이했던 어느 찬 바람이 폐부를 시원하게 찔러대던 날의 일이었다.


바깥은 어둑어둑해지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다. 결국 내가 찾아 들어간 곳은 ‘놀부부대찌개’였다. 그렇다. 프랜차이즈다. 추위와 배고픔에 무릎을 꿇은 나는 부대찌개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라면 사리 약간과 밥, 국물에 비벼먹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이 되기에 그렇게라도 허기를 면하고 싶었다.


메인 요리가 완성되기 전에 반찬을 모두 비워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밥과 김치만 먹어도 맛있었다. 사골 육수를 베이스로 하여 치즈가 들어가는 형태가 송탄식 부대찌개의 맛을 따르고 있었다. 이미 ‘김네집’과 ‘최네집’에서 종종 맛보던 맛이었다. 육수가 진하고 걸쭉했다. 그 뜨끈한 국물이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녹여주고 있었다. 라면 사리와 밥, 국물을 비벼서 한 공기를 다 비워냈지만 그것으로는 허기가 차지 않았다. 결국 밥 1 공기를 추가로 주문했다. 반찬들과 라면 사리는 모두 비워져 있었다. 추가로 달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했다. 추가한 밥과 함께 먹을 것이라곤 부대찌개의 육수밖에 없었다. 결국 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스팸 계열의 햄이었다. 단독으로 먹을 땐 짜기만 했던 그 맛이, 찌개에 녹아들어 가자 다른 재료들과 섞이며 이상하게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 위에 부대찌개의 스팸을 올렸다. 숟가락을 입안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짠맛 속으로 고소함이 퍼졌다가 밥의 깊은 단맛이 찾아왔다. ‘왜 이 맛을 이전에는 몰랐지.’ 후회가 절로 들었다.


치즈가 녹아 걸쭉해진 육수를 한 숟가락 먹었다. 짜고 매운맛이 혀끝을 타고 올라왔다. 뒤를 이어 사골육수의 묵직한 감칠맛이 찾아오며, 스팸의 기름이 녹은 고소함과 치즈의 맛이 어우러져 풍미를 남겼다. 복잡하고 무겁기만 했던 맛이 다채롭고 진한 맛으로 변화되어 전달되었다. 추가한 밥 한 공기도 부족했다. 한 번 더 추가한 밥과 부대찌개를 바닥까지 비워내고 나서야 만족할 수 있었다. (그땐 밥을 3-4 공기도 먹었는데... 지금은 2 공기 먹으면 속이 부대낀다.)


그 기억이 좋아서였을까. 그 뒤로 종종 부대찌개집을 자발적으로 갔다. 아니 스팸 계열의 햄을 쓰는 부대찌개집만 찾아서 갔다. 여전히 부대찌개의 소시지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비해 밀가루 함량보다 고기 함량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은 맛있는 소시지도 시중에 많이 판매되지만 소시지는 구워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 찌개에 들어가는 소시지는 그저 그렇다. 하지만 스팸은 월등히 맛있다. 스팸의 짠맛이 국물에 녹아들어 가 적절하게 변하고, 사골육수의 감칠맛, 치즈의 걸쭉함이 어우러져 진한 국물을 선사한다. 예전에는 무겁기만 했던 이 맛이, 이제는 흰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게 만드는 맛이 되었다.


싫어하는 음식이 참으로 많았다.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의 굶주림과 한 숟가락의 진함이, 오랜 고집과 생각을 무너뜨렸다. 부대찌개가 삶에 들어오자 다른 햄과 소시지도 일부가 되었다. 핫도그에 소시지가 필수인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더 이상 김밥을 주문할 때 햄을 빼달라고 하지 않게 되었다. 먹을 것의 폭이 넓어졌고,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좀 덜 까탈스러워졌다. 싫어했던 음식을 받아들이는 사소한 경험들이 내 삶을 조금은 더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오늘 저녁은 집에서 끓인 부대찌개다. 집에서 만들면 스팸만 넣을 수 있다. 부대찌개의 소시지는 설득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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