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다이어트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0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여자 동기가 있었다. 건강보다 외모를 주로 따지는 당시대한민국의 풍토에서 어린 시절 주변 여자 동기들은 종종 다이어트를 하곤 했다. 보기에 살짝 통통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건강한 표준 몸무게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마른 몸매를 원했다.
그들은 주로 무식하게 굶는 방식의 다이어트를 많이 했고, 간혹 원푸드 다이어트니 레몬물 다이어트니 색다른 방식의 다이어트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 중 한 명은 몇 달을 점심을 굶었고, 그 돈으로 가방도 샀다며, 살도 빼고 사고 싶은 물건도 샀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안주발과 술발 모두를 자랑하며 살도 찌고 건강도 망해가던 나에게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하는 일은 많았다. 화장을 열심히 배우기도 했고, 스타일리시한 옷을 사기도 했다. 걔 중 누군가는 쌍꺼풀 수술을 하기도 했는데, 그 모든 것이 이해가 갈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먹을 것을 참는다는 것만큼은 아무리 애써도 이해하기 어려운 종류의 일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운동을 빡세게 하면 안되나가 20대의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의 최선이었다. 당시에는 식단 조절 없이 운동만으로 살을 빼려면 밥 먹는 시간 빼고 운동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이어트는 식단이 8 운동이 2라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먹을 것에 환장했던 나는 살을 빼야 된다는 생각을 종종 가졌지만, 운동도 싫어하고 음식도 좋아했던 나에게 다이어트란 불필요한 영역이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함에 따라 점점 몸무게가 늘어나고 있다. 아마 조만간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지 않을까 싶다.
올해 9월 중순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발견은 다행이었고, 전이는 불행이었다. 다행히도 갑상선과 전이된 림프절 조직까지 수술을 통해서 깔끔하게 제거가 되었다.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암세포들이었다.
갑상선은 요오드를 먹이로 갑상선 호르몬을 만든다. 작고 조용한 이 기관에서 만들어진 호르몬이 우리 몸의 ‘기본 속도’를 조절하는 스위치라고 볼 수 있다.
속도를 빠르게 하면 몸의 장기들이 과하게 움직여 쉽게 지치고, 속도를 느리게 만들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둔해져 몸은 금방 무거워진다. 평소 인식하지 못한 작은 호르몬으로 우리는 적정한 속도를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수술을 통해 암에 걸린 갑상선 조직을 모두 드러냈고, 평생을 갑상선 호르몬을 약이라는 형태로 섭취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갑상선 호르몬마저 먹지 않은 채 2주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답은 앞에서 이야기한 외과적 수술 이후 몸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미세 암세포들 때문이다. 갑상선에서 비롯된 이 암세포들은 요오드를 좋아한다. 평소에는 숨어있다가 갑상선 호르몬 약을 끊고, 요오드마저 제한하면 먹이를 달라고 뛰쳐나온다. 바로 그때, 요오드로 위장한 방사성 약이 몸속으로 들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암세포들은 그것을 평범한 먹이로 착각하고 빨아들인다. 그리고 천천히, 그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
덕분에 나는 요오드를 제한하는 요오드 다이어트 식단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듣기에 별 거 없어 보이는 이 요오드 제한 식단을 많은 갑상선암 환우들은 치를 떨고 싫어한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한국은 요오드 섭취 과다 국가로 그 원인은 바다에 있다. 바다는 천연 요오드가 넘치는 장소로 그곳에서 파생되는 모든 재료는 요오드가 많든 적든 묻어있다. 대표적으로 육수를 내는 다시마, 새우젓이 그렇고, 많이 먹는 미역, 김이 요오드 다량 함유 식품이다.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천일염 또한 요오드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자 다시 살펴보자, 천일염으로 만들어지는 김치, 젓갈, 된장, 간장, 고추장을 빼보자. 다시마와 멸치로 만들어지는 육수를 없애보자. 된장찌개, 김치찌개, 김치가 빠졌다. 그 외 바다에서 나는 오징어 등 온갖 생선도 적든 많든 요오드를 포함하고 있기에 제한다. 자 여기에 계란 노른자와 유제품도 빼야 한다. 소의 사료는 물론 착유 과정에서 요오드 소독제가 사용된다. 이제 남은 식단으로 행복하게 식단을 구성할 수 있다면 당신은 한국인이 아니다.
10년 전의 갑상선암 전이로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를 받아야 했던 모든 환자들은 위의 모든 음식이 빠진 상태에서 정제 소금만으로 간을 한 음식을 먹으며 저주스러운 2주를 보내야 했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 천일염이 아닌 요오드가 없는 정제소금으로 만든 고추장, 간장, 막장 그리고 김치를 인터넷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아예 저요오드 2주 삼시 세끼 식단을 냉동식품 내지는 밀키트로 받아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맛이었다.
천일염이 아닌 정제염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무언가 하나가 비어있었다. 감칠맛이라고도 불리는 입에 당기는 맛깔스러운 맛이 없었다. 뭐라 설명을 해야 하나 싶은데 맛이 있는데 맛이 없었다. 얕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그 얕음에 정제 소금을 더 치다 보면 결국 짠맛만 입에 남고 말았다.
출근을 하는 상태에서 매끼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그 도시락은 맛이 없다. 갑상선 호르몬을 끊어서 몸은 점점 둔화되고 지쳐가고 있다. 이젠 누가 부르면 고개를 돌리는 일마저 귀찮다. 무기력하고 우울해지기까지 한다는데 아직은 무기력에 머물러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요오드 식단 제한이 14일의 기간 중 11일이 지났다. 아니 3일이나 남았다. 갑상선 호르몬이 사라진 몸의 기관은 게을러져서 소화도 제대로 못 시키고, 수분 배출도 못하고 몸은 부어간다. 얕은 맛의 식사로 심심해진 입맛은 유일하게 허락된 당분을 찾고, 맛밤, 고구마 맛탕 등을 입에 달고 살게 되어 체중은 점점 불어 간다. 정신도 따라 게을러지는 상황에서 출근은 해야 하고, 도시락도 싸야 한다. 아내가 식사를 준비해 준 적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한 음식이 좀 더 맛있다. 3일이 남은 상태의 체력으로는 아직까지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가 승리해서 내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남은 날들은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무기력과 게을러짐과 싸우고 있는 느낌이다. 완전히 방전되어 빨간불이 간당간당한 휴대폰을 어서 빨리 충전기에 꽂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더 방전시켜야 된다고 의사는 말하고 있다.
이 지침도 익숙해져 간다. 허락된 몇 안 되는 음료 중 아메리카노가 있는 게 다행이다. 카페인을 보충해 주면 그나마 학교 생활이 가능해질 정도로 몸이 움직여준다. 기력이 떨어질 때쯤 한 잔 정도 더 마셔주는데 이 때문일까? 갑상선 호르몬이 떨어지면 졸음이 쏟아진다는데, 난 밤에 잠들기가 어렵다. 한참을 뒤척이며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는다. 9시에 잠들어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겨우 1-2시간이 흘러있다.
“잠이 들어야 내일이 올 텐데…” 노래를 중얼거리며 오늘도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