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밥은 왜 맛이 없을까.

by 수평선너머

이 글은 11월 28일 외식이 끊기고도 17일째 생존해 있는 어느 환자의 기록이다.


12월 5일 오랜만의 병원밥이다. 살면서 병원밥을 먹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이 세 번째 입원이다. 내 첫 병원밥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의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아 교내 온갖 곳을 쏘다니며, 하지 말라는 장난은 다 하고 다녔다. 말뚝박기 같은 고전적으로 위험한 놀이를 비롯하여 선도부 피해 담을 넘어 옆 고등학교 매점 다녀오기 등을 했고, 매일 같이 위험한 장난을 생각해 내며 놀았다. 당시에는 사춘기 호르몬이 지금은 갑상선 호르몬이 몸을 지배하는 현상을 겪고 있으니 이 또한 재미있는 일이다.


문제는 여름 방학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6-7월에 발생했다. 후관 건물 2층 밖에는 방범을 위해 유리창을 막은 철봉처럼 생긴 바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그 철봉에 매달려서 여느 때처럼 버티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철봉이 미끄러웠다. 어어하는 사이에 내 몸은 건물 2층 높이에서 시멘트로 이루어진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철퍼덕”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왼쪽 귀와 왼쪽 팔, 다리가 바닥에 정면으로 충격을 받았고 그대로 엎어져버렸다. 아픔을 느낀다기보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쪽팔려.’였다. 아이들은 몰려서 웅성거렸고, ‘00이 죽은 거 같아요. 꼼짝도 안 해요.’따위의 망발을 내뱉고 있었다. 이 소란스러움이 잦아들면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교복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려 했지만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 소동은 결국 학교로 119 앰뷸런스가 오면서 마무리되었다.


병원에서는 왼쪽 귀 내부 출혈, 왼쪽 팔 부러짐, 충격으로 인한 성장판 손상 등을 언급했고, 나는 골절보다는 귀 내부의 출혈, 충격으로 인한 머리 손상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5-6일 입원을 해야 했고, 내 키는 중학교 1학년 때의 키에서 0도 자라나지 못했다. 그때 먹었던 병원밥은 지독하게도 맛이 없고 쓰라렸다.


시간은 흘러 갑상선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며 다시 병원밥을 접하게 되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병원밥의 진보를 이끌어냈던 것일까. 무지방식이란 제한을 걸고도 병원밥은 맛있었다. 요즘은 병원밥도 예전과 다르게 맛있어졌더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 사실이었다.


아니었다. 그 생각은 3일째 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맛이 너무나 없었고 그 상태로 10일의 입원과 병원밥은 나로 하여금 브런치에 “아프다고 입맛이 사라지는 건 아냐”라는 브런치북 하나를 남겨주었다.


12월 12일 금요일에 입원을 했다. 사실 입원을 위해 지난 2주간 요오드를 제한하는 식단을 해왔다. 음식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귀찮음 외에 2주간 밥이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적은 없었다. 입원을 하고 첫 병원밥을 먹으며 도시락에서 벗어남이 오히려 좋았다. 똑같이 요오드를 제한했음에도 병원에서 제공한 밥은 빈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버섯 죽은 맛있었고, 두부 강정은 종종 해 먹고 싶을 정도의 맛을 자랑했다. 애써 준비해 간 저요오드 소고기 볶음 고추장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역시나 3일째 아침에 사라졌다.


12월 14일 일요일이었다. 방사성 약을 먹어 격리된 채로 1인실에 있은지도 3일째였다. 인생에 다시없을 병원 1인실 체험이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괴로움이다. 하루 3-4리터의 물을 시간당 300ml씩 나눠마셔야 하고, 침 분비를 위해 30분 간격으로 레모나 내지는 신 음식을 먹어야 했다. 2시간에 1번씩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치료를 끝내고 몸 안에 남은 방사능을 배출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모든 것이 힘들지만 역시 가장 힘든 것은 밥이었다.


아침 메뉴로 누룽지, 돈육볶음, 새송이볶음, 숙주나물, 피클, 귤, 두유가 나왔다. 누룽지의 냄새를 맡자마자 속이 울렁거린다. 돈육볶음을 한 점 집어 먹으니 돼지 냄새가 왜 이렇게 잘 올라오나 모르겠다. 새송이볶음과 숙주나물은 나쁘지 않았다. 적당한 탄력이 느껴지는 새송이와 숨은 죽었지만 아삭함이 느껴지는 숙주의 식감은 좋지만 도무지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입안에 넣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씹어대고 있다. 누룽지를 한 숟가락 떠먹는다. 구수한 국물의 맛과 적절한 간, 적당히 풀어헤쳐진 밥알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지만 거기까지다. 재미가 없는 맛이다. 심심하고 건조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 식욕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준비해 간 저요오드 소고기 볶음 고추장을 돈육볶음에 넣어 섞고 한 입 먹지만 미지근한 돼지고기에서 올라오는 돼지 냄새가 조금 괴롭다. 병원 급식실에서 지어져서 내 병실까지 오는 동안 적당히 식은 음식은 따뜻함은커녕 겨우 온기만 보존하고 있다. 이 식은 음식과 반찬들은 최초의 맛이 아무리 훌륭했어도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해 버린 지 오래다. 절반을 겨우 먹고는 화장실 음식물 분쇄기에 모두 털어버리고 갈아버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일까?



병원밥은 아무리 맛있어도 맛있기 어려운 것 같다. 병원이 주는 분위기와 냄새가 그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격리되어 있는 1인실의 건조하고 쓸쓸한 공기, 병원의 냄새, 온기만 겨우 느껴지는 음식 이 세 박자가 어우러져 맛없는 냄새를 풍긴다. 언젠가는 병원밥도 맛있어지는 날이 올까? 그래. 이 또한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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