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김치를 처리하기 위해 볶으려다가 두부김치를 만들었다.
아침에 딸이 출근하고 난 후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 썰어 놓은 것을 다 먹은 것 같기에 김치냉장고에서 한 포기만 꺼내 썰어두려고 김치냉장고 김치통을 열었는데, 김치통에는 이미 신김치가 되어 버린 김치 한 포기만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아예 김치를 썰어서 볶아 놓기로 하고 김치를 꺼냈다. 우선 김치를 볶기 위해서는 양념을 좀 씻어내는 것이 좋다. 김치를 집에서 안 담그고 사서 먹었었는데, 이번에 배달된 김치가 저번 김치에 비해 지나치게 양념투성인지라 아무래도 살짝 씻은 후에 볶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김치를 꺼내고 통은 깨끗이 씻어서 치웠다. 그리고 김치 대가리를 썰어낸 후에 정수기 물을 받아서 그 물에 김치를 이파리 하나하나 떼어서 씻은 다음 꽉 짜서 도마 위에 건져 놓았다. 이제 썰어서 웍에 넣고 볶은 후 참기름과 깨를 뿌려 골고루 섞기만 하면 끝이다.
그런데 김치를 볶으려다 보니 냉장고 구석에 있던 두부 생각이 났다. 평소 가끔 두부김치를 즐겨 만들어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곤 했는데, 사놓은 두부가 두 모 남은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김치 볶는 웍을 옆으로 치우고 냄비에 물을 받아서 두부를 넣고 팔팔 끓였다. 그사이 다 익은 김치는 불을 끈 상태로 웍 내부의 열기에 의해 푹 문드러지도록 덮개를 덮어두었다. 이제 두부가 데워지면 볶은 김치에 참기름과 깨를 넣기만 하면 된다.
팔팔 끓는 물을 따르고 두부를 건져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큰 접시 주위로 빙 두르고, 가운데에 볶은 김치를 떠서 올리니 아주 맛있어 보이는 두부김치가 되었다. 그리고 두부김치에 올리고 남은 볶은 김치는 식혀서 반찬통에 나누어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두부김치를 식탁으로 갖고 와서 보니 아무래도 밥까지 먹는다는 것은 아침부터 위장에 차마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식탁에 빠지지 않던 샐러드만 꺼내서 그것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샐러드는 최근에 와서 우리 식탁의 가장 핵심 반찬이다. 기름진 음식을 자제하기 위해 바꾼 식단이었는데, 의외로 우리 입맛에 맞기에 그때부터 계속 하루도 빠짐없이 먹어 오고 있었다. 샐러드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고 코스트코에서 파는 여러 채소 잎이 섞인 패키지를 사서 양상추 잎을 뚝뚝 뜯어 넣고, 딸이 좋아하는 자색 양파와 아내와 내가 즐기는 피망을 썰어 넣고 삶은 달걀을 썰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건 블루베리와 체리를 넣고 올리브유를 두른 후에 발사믹 식초나 애플 식초를 몇 방울 떨구고 골고루 섞으면 끝이다. 아침에 딸이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하루 먹을 샐러드를 준비해서 샐러드 볼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원래는 신김치를 처리하기 위해서 반찬으로 김치 볶음을 만든 것인데, 하다 보니 술안주 두부김치가 되어 버렸다. 결국 밥은 푸지도 않고 두부와 김치와 샐러드로만 배를 불렸다. 사실 이 정도 안주라면 당연히 술을 마셔야 하는데, 내가 아무리 주선이라도 한 가지 원칙만은 꼭 지키는지라, 꾹 참고 술의 유혹을 물리쳤다. 그 원칙은, 어떤 경우라도 오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후에는 간혹 낮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오전부터 술을 마시면 하루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오늘 아침에는 술안주를 만들어 놓고도 술은 입에 대지도 못했다. 나중에 볶은 김치를 다 먹기 전에 두부를 사서 다시 두부김치를 만들어 마셔도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술안주를 만들어 놓고도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