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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Nov 01. 2024

채만식 문학관을 다녀오다

채만식 문학관은 군산의 금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 뒤로 강가를 향해 자욱한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으며, 마당에는 잘 익어 가는 대봉감과 단감나무가 있었다. 

     

어제는 10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의 날이라서 모든 박물관과 관광지, 문학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어제가 아니더라도 무료입장 대상이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채만식 문학관은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층은 주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자료들이었고, 2층에는 영상자료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사실 이번 방문지로 채만식 문학관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주에 이효석 문학관에서 관람한 영상자료에 채만식이라는 이름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채만식은 이효석과 동반자적 작가로 함께 활동했던 적이 있었다. 

     

채만식이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사회에서 해방 이후까지이다. 채만식은 일제 강점기 당시의 비인간적 처사와 부당한 침해, 가혹한 검열이 도사리고 있던 사회적 현실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며 미학적 성과를 얻기 위해 풍부한 어휘, 풍자, 반어, 역설, 새로운 구성 방식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였으며, 이렇게 우리 민족의 사회적 현실을 작품에 다각적으로 반영하면서 현실 위기와 좌절을 극복하였다. 풍부한 어휘의 실례로 채만식 작품에는 고향인 군산시 임피면의 방언이 많이 등장한다. 문학작품 속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리얼리즘의 표현, 토속적 분위기 설정, 낯설게 하기 기법 등과 관련되며 작품 중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채만식은 1924년 단편 <세길로>가 춘원 이광수에 의해 추천되어 <조선문단>지에 발표되면서 문단에 등장했으며, 타계하기 직전인 1950년에 이르기까지 약 30여 년 동안 소설, 희곡, 평론, 수필, 잡문 등 1,000여 편의 작품을 저술한 다작형 작가이다. 

     

채만식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그의 친일 논란이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작가의 친일 문제가 지금에 와서 철저하리만치 파헤쳐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어느 작가는 변명으로 일관하기도 했지만, 채만식은 광복 후 고향 임피면으로 낙향하여 자신의 친일 작품 열 편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면서 1948년 10월부터 1949년 1월까지 <백민>을 통해 본인의 친일 작품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담은 중편소설 <민족의 죄인>을 기고했다. 이 소설을 통해 채반식은 광복 후 남아 있는 일제 문화 잔재를 비판하고, 친일행위에 대한 개념 규정과 당대 지식인의 고뇌 등을 다루면서 자기반성을 하였다. 이 <민족의 죄인>은 친일 작품을 남긴 작가 중 유일하게 자신의 과오와 반성을 남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채만식은 친일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한번 살에 묻은 대일협력의 불결한 진흙은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지였다.”  

   

채만식의 많은 작품에는 풍자적 요소가 담긴 것이 특징이다. 대표작 <레디메이드 인생>에서는 지식인 실업자의 생태와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그렸으며, 장편 <탁류>에서는 모함과 사기, 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그리고 있다. <탁류>와 함께 채만식의 2대 장편으로 불리는 <태평천하>에서는 당시 신흥 지주계급으로 부상한 상민 혹은 서민 출신의 부패 지주의 몰락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현실 속에서 성장한 계급의 필연적인 윤리적 타락을 그리는 과정에서 풍자적, 극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이나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붕괴하는 모습에 대한 비판은 채만식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고 있다.

   

채만식은 당시의 암울한 사회상과 지식인들의 무기력함, 하층민의 가난과 고통에 대한 비판을 풍자문학이라는 형식으로 그려낸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적 풍자작가였다. 사실 채만식을 교과서에서 접한 세대들은 기껏 <레디메이드 인생>이나 <탁류>의 저자로만 알고 있지만, 채만식은 그 소설들을 훨씬 뛰어넘는 많은 작품을 저술한 작가였다는 사실을 이번 방문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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