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심한 "바람의 신부"에게
그에게는 아직 사랑이 여전하고 그녀는 사랑의 끝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포기가 되지 않고 그녀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버림받을 것을 예감하고 그녀는 자유로울 것을 갈망합니다.
하여 그의 공기는 격렬하고 휘몰아치고 그녀의 공기는 매끄럽고 차분합니다.
며칠 전, 하루짜리 프로젝트 수행 차 갔던 곳에서 처음 뵙는 분(이하 인생선배)과 같이 일을 하는데 손발이 너무 잘 맞아서 오래간만에 즐겁게 일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일 마치고 저녁이라도 하고 헤어지자 의기투합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이런 일은 매우 드문 편입니다. 인생선배에게도 드문 일인지, 내내 신기해했습니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수다가 오가던 중, 인생선배가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각자의 의미와 느끼는 차이가 다르겠지만 외로움은 사람으로 인해 어느 정도 채워질 수 있지만 고독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50살이 넘고 보니, '고독'이 진짜 중요한 거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이런 깊은 질문으로 빠져들고 깊이 바라보는 게 '고독' 같아요. 그래서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 합니다."
"지영 Robin, 당신의 고독은 무엇일까요?"
요 근래의 내 고독은 '모든 것에 대한 부질없음으로 인한 공허함'이라 답했습니다. 무언가를 향해 열심히 노 저어 왔더니, 물길은 메말라 있고 배는 낡아있으며 노는 닳아 더 이상 헤쳐 나갈 수 없는 것 같노라는 저의 답에 인생선배는 '열심히 산 자에게 잠시 오는 쉼표'라 하시며 '잘하고 있다'라고 다독여주셨습니다.
대화는 깊고도 즐거웠습니다. 40대 중후반이 되고 보니,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욕망과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지, 토닥여줄 이 없어 두려움이 마음속에 곰팡이처럼 퍼져 가는 중이었을 때 선물처럼 그런 인생선배를 만났습니다.
짧고 굵은 저녁식사 시간의 압축된 대화에서 내 두려움은 잠시나마 같이 나누어졌습니다.
해답을 알려주는 대화는 가볍습니다. 그저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내가 핵심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으니까요. 내가 걸어갈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곳곳이 힌트이고 격려입니다.
그렇다면 코코슈카는 외로움으로 외롭지 않으려 하고 알마는 고독으로부터 솔직했던 것일까요?
내 안의 고독을 받아들이고 많은 질문을 하다 보면, 스치듯 이런 귀인이 자연스레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그러하니 당신!!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그 고독으로 당신을 충만하게 할 귀인을 만나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