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
"당신에게 1개월의 시간만 남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언젠가 생애 전환 관련 상담 워크숍에서 이 질문을 받고 워크시트에 작성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긴 고민 없이 평상시와 같은 일상을 살아야겠다 생각하며 담담하게 썼습니다. 좀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일상과 일상 사이에 그간 보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만나지 못했던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고 식사 한 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는 점이라 할까요? 만나지 못한다면 그저 편지 한 장이라도 써보겠다 정도의 간소한 노력이라도.
저 질문에서 무엇으로 인해 1개월이 남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상 못한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가 들이닥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생애 전환의 시기에 놓은 분들-회사의 사정으로 전직을 앞둔 40~50대- 과 상담을 하거나 워크숍을 할 때 위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50대 중반의 남성분(이하 A)이 보자마자 너무 깊은 한숨을 내쉬는데 같이 참여한 분들도 헛헛한 웃음으로 공감을 표합니다.
A는 자신보다도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 준비해놓을 것들과 자신이 없을 때 가족들이 좀 더 편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볼 시간도 부족하다고 하며 목이 메셨습니다. 같이 헛헛한 웃음을 지었던 사람들도 비슷하니, 점점 더 깊은 감정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날의 워크숍은 진행자였던 나도 여느 때와 달리 감정적으로 동요되었던 날로 지금도 선연합니다.
그 워크숍 이후에 A와 1:1 상담을 하는 날, A는 워크숍 전과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틀어막고 있던 감정이 새어 나온 후의 A는 한편 후련해 보이기도 합니다.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굳건하게 말하던 그는 5년 전 태어난 늦둥이 아들을 떠올리면 눈물이 고이고 목소리가 떨립니다.
어느 직장보다 안정적이라고 하던 직장이 갑자기 외국으로 이전한다고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될 줄 그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으니, 그 막막함과 당황스러움도 외면하고 무조건 일자리를 다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만 급했습니다. A는 그제야 자신의 감정과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A의 모습은 우리나라 가장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실은 두렵고 외로운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들.
한편, 50을 앞두고 있던 오빠가 20년을 넘게 일하던 회사를 나오기 전, 술에 취해 전화해 무섭고 두렵다고 꺼이꺼이 울었던 어느 밤늦은 시간의 통화를 떠올려봅니다.
집에 들어가자니 올케언니며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해,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서 울던 오빠는 앞으로 자신이 그 전처럼 가족들에게 해줄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대로 모든 게 무너질까 봐 두렵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울먹였습니다. 영감도 자신의 나이 때 얼마나 외로웠을지, 이제 알 것 같은데 나눌 대상이 없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동차와 운전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면 자신이 산 새 자동차를 운전하게 하면 얼마나 좋아하셨겠냐며 가슴 미어져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오빠의 스무 살 초입, 오십 대 언저리의 생애 전환 때마다의 오열을 목격했습니다. 오빠의 스무 살 초입의 방황과 오열에는 아버지의 편지가 오빠를 위로하고 격려했다면 오십 대 언저리의 오열에는 그저 들어주는 것으로 함께 했습니다.
오빠가 오열하던 그 나이가 비로소 되었을 때, 오빠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빠의 오열이 내겐 선행학습으로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생애 전환의 시기가 되면 누구나 두렵습니다. 모두가 처음입니다. 스무 살이 처음이고 서른 살이 처음이고 마흔이 처음이며 쉰도 처음이고 환갑도 처음이고 칠순도 처음입니다. 그때마다 모두에게 고비는 공평하게 와닿습니다.
그것을 이겨내는 열쇠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용기, 삶의 고비마다 어떻게 그것을 이겨왔는지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해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이순신 장군의 야음.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 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 김훈 작가 [칼의 노래] 중에서
그러하니 당신!!
'식은땀을 흘리는' 이순신처럼 자신의 나아갈 길을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떼어놓는 서사를 이어가듯, 그래서 더 고귀한 용기를 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