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의 서 Chapter 3 나누어 짊어지는 두려움
당신이 늘 거기 있어 무척 행복합니다.
낙산사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입구에 제 눈에 와서 박힌 글귀가 있습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서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서 바다를 만나고
새는 둥지를 버려서 하늘을 난다."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두려움이 발목을 옭아매던 때에 아침 첫 완행버스를 타고 낙산사로 향했습니다. 덜 깬 잠에 구비구비 오르락내리락하는 한계령은 아이러니하게 실체가 확인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이 버스가 덜컥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구나.' 그 두려움 한편으로 살고 싶다는 비릿한 열망이 비등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그때는 제가 강요된 변화와 도전을 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실체 없는 두려움에 질식할지도 모른다 지레 겁먹었을 겁니다. 등에 짊어진 짐은 30대에서 40대로 바뀌는 순간, 짊어졌던 무게가 서너 배쯤 무거워져 주저앉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생각해보니, 40대 중반 이후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만-
그런데, 저 글귀를 보는 순간, 꽉 죄던 숨통이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가진 두려움은 '지금 가진 것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였을지도. 가진 게 많지도 않으면서 움켜쥐려고 하니, 한 발 때려는 발걸음은 무겁고 내 등의 짐은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휘청이며 얻었습니다.
하나를 버리지 않으면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없음과 새로이 얻게 되는 다른 하나는 그전에 만났던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보고자 하는 자에게만 보이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에게만 허락하는 깨달음은 실체 없는 두려움을 벗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가 무거우니, 그나마라도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려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편안해졌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완행버스와 구비구비 한계령은 무섭기보다 성가시기만 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정면으로 언제나 똑바로 보는 것,
그리고 그 자체로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것.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것,
그리고 치우는 것."이라는 글이 그제야 내 것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불안이 목을 조이는 느낌이 들 때면, 위와 같은 순간을 떠올립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드는 때에 나보다 먼저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흔적을 읽다 보면 위안이 됩니다.
만난 적 없지만 늘 나와 가까이 있었던 사람처럼 내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마음에 틈을 벌리고 들어오는 사람들과 글은 그래서 중독적입니다. 한 때 낙산사의 주지였던 정념 스님의 편지글 마지막 문구처럼.
그러하니, 당신!!
"당신이 늘 거기 있어 무척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