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나고 기르면서 평생 해오던 가르마 방향을 마흔 중반을 넘어서 처음으로 바꾸어 봤습니다. 길 때도 짧을 때도 항상 오른쪽 방향으로 넘기던 머리를 왼쪽으로 바꿨습니다. 오른손잡이에 오른쪽으로 쓸어 넘기는 습관은 굳어버린 무의식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며칠째 생생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앞으로 쏟아질 때 고개를 오른쪽으로 좀 더 기울이던 것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제는 왼쪽 방향으로 넘기게 되니, 머리카락이 왼쪽 눈을 더 가리는 것도 머리를 쓸어 넘길 때는 왼손으로 해야 하는 것 등은 익숙해져야 하는 적응기간 초기입니다. 어색하고 낯선 데다 거울에서 보는 내 모습도 약간은 더 달라 보인다고 해야 하나요?
다른 사람들은 잘 눈치채기 쉽지 않지만 나에게는 큰 변화입니다.
이 별스럽지 않은 행위를 선택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 변화였습니다. 늘 의식하는 어떤 것이라면 변화를 주는 것에 크게 개이치 않았을 것인데 무의식에 가까운 것을 끄집어내어 변화를 준다는 게 의외로 큰 결심을 요구했습니다.
비교적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 보니,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을 가서 머리를 다듬는데, 내 머리를 만지는 미용사가 작년쯤 머리 가르마 방향을 바꾸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1년쯤 이맘때부터 머리카락이 좀 많이 빠지기 시작했던 원인도 한몫했을 테지요.
평생 머리숱 걱정은 안 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많이 빠져서 좀 걱정이 되던 차였습니다. 가르마 방향을 너무 한 방향으로 하고 있으면 가르마 주변으로 머리가 더 빠지기도 한다는 말에 덜컥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이번에 결국 바꾸었으니, 이 느린 결심과 착수는 무엇일까요?
변화를 주고 새로운 것을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생각지 못한 자기모순의 발견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제안을 잘 받아들여 내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칫 너무 받아들이면 줏대 없이 귀가 얇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제안이나 의견보다 내 원칙과 기준만 내세우면 고집 센 사람이 되기 십상이니까요.
컨설팅과 상담을 처음 시작할 때, 나의 사수였던 분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변화를 일으키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말로 항상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그 말은 너무 원대한 포부라는 것을 시시각각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과연 변하기는 할까?
좋은 변화란 무엇이지?
그런 의문을 늘 갖다가 어쩌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변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더 맞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건 강요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내게는 금은보화여도 다른 사람에게는 돌덩이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처럼.
한편, '너는 내가 아니다'의 명제를 다른 사람과 만날 때마다 혹은 의견이 엇갈릴 때마다 생각합니다. 똑같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라며 약간 언짢을 수 있는 기분을 달랩니다.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 올린 풍경에."
- from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의 가장 첫 장
다른 사람의 성향과 취향, 선택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내게는 그이의 우유부단함이 다른 이에게는 배려와 섬세함이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태도가 내 안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