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끌림의 서 20화

끌림의 서 Chapter 2 선택 앞에서의 나약함

To be or Not to be

by 지영Robin
1995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여중시절, 영어 선생님이 어느 날, 칠판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고 쓰고는 계속 읽게 했습니다. 딱히 모르는 단어는 없는 듯 하지만 그 의미는 와닿지 않아 갸우뚱하며 시키는 대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앞으로 "너희들의 삶에 매번 읊조리게 될 문장이 될 거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많아."라며 외워두길 권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세계문학전집에서 [햄릿]을 읽어보긴 했지만 워낙 그 깊은 의미를 헤아리기에 어렸고 그저 줄거리만 기억하던 내게는 기억에 없는 문장이었는데, 그날 이후 머리에 각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나이를 생각해보니 스물여섯 혹은 스물일곱 정도였을 테니, 아마도 그녀에게 찾아오는 죽느냐, 사느냐 만큼의 선택과 갈등이 많아 힘들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리고 그녀의 예언대로, 삶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했고 때때로 햄릿형 인간이 간혹 되어 저 문장을 읊조리게 되었습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 From Hamlet (Act 3, Scene 1), William Shakespeare.


"이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문제는 그것이야.

어떤 것이 더 고결할까?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받으면서 그냥 참고 견디는 것과

하고 많은 세상의 고통과 맞싸워 이겨 그것들을 끝장내 버리는 것?"

- from 햄릿(3막 1장), 윌리엄 셰익스피어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으로 진학해, <동서미술 비교론>이라는 수업에서 난생처음 [주역]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돌아가며 발표하는 대학원의 수업 방식에 따라, 가장 첫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순서는 아마도 처음 단원이 그나마 쉽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자발적으로 가장 먼저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만나게 된 첫 문장,

"一陰一陽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 : 한 번을 음이라고 하고 한 번을 양이라 하니, 이를 일러 도라 한다."

- from 주역 계사전 상편 제4절 중


공자가 재편했다는 그 주역에서 첫 문장의 해석은 간단했습니다. 그 외 다른 문장들도 해석을 하며 찾아본 다른 책에서의 내용을 참고 삼아 발표를 하던 중, 그 교수님은 다 듣고서 "일음일양지위도"에 대한 내 생각과 견해를 물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한 군데 쏠리지 않고 공평하며 "0"에 수렴하는 것과 모든 것은 다 음과 양이 있듯이 밝음 뒤에는 항상 깊은 어둠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답변을 했습니다. 교수님이 빙그레 웃으시더니, 앞으로 한 학기 동안 수업의 첫 시작은 나의 저 "일음일양지위도"에 대한 다른 해석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폭탄발언"이었고, 읽고 공부해야 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첫 학기에 성가신 과제였습니다. 괜히 첫 순서에 손을 든 나의 경박함을 탓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도 궁금하긴 했어서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역에 관한 책과 논문을 뒤져가며 파고들었습니다.


발표한 여러 것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과정은 기억이 납니다. 하나를 깊이 알기 위해 파고드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간들이었으니까요. 그때 그 교수님은 학기를 마칠 때, 자신의 시집을 주시면서 어느 누구보다 그 문장에 대해서는 자신을 가지라 해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또 내게 각인된 문장인 一陰一陽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싶을 때마다 이 일의 어둠 이면에 다른 밝음이 있을 것이라 다독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저 문장이 준 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누군가와 비교되어 자격지심이 생기려 할 때마다 누구나 결국은 "0" 값에 수렴하는 순간 혹은 얻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성가신 과정을 겪으며 터득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교수님은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매주 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5~10분 정도의 시간이 제게 주어진 것 또한 그때는 괴로웠으나 지금 그것은 큰 혜택이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살면서 매번 명쾌할 수만은 없고 오히려 대부분은 햄릿처럼 굴 때가 더 많았고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경우도 있었고 성급함 때문에 놓쳐버린 경우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쓸데없는 곳에 열과 성을 다했다 싶은 후회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비로소 그 노력이 결국에는 나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삶의 모든 순간에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될 테니 내일이 궁금합니다.



그러하니, 당신!!

그 의미를 알게 될 내일을 궁금해하며

당신의 "일양일음위지도"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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