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10년 전, 카페에서 책을 읽던 중, 낮잠을 자다 깨서 쓴 일기를 꺼내봅니다.
"잠시 졸겠다는 게 의외로 깊이 잔 모양이다. 그래서 약간 몽롱하고 멍한 상태. 책을 읽다 그랬는데,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마음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좀 더 지속됐으면 싶다.
한편, 어린아이가 낮잠을 자면서, 동그란 작은 이마며, 뒤통수가 땀에 젖을 정도로 열심히 자다가 불쑥 깨서는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찾아 휘휘 돌아보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 못내 억울하고 분한 듯이 당장 내 눈앞에 나타나라고 악을 쓰듯 울어대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지금 그 중간 어디쯤이다.
읽고 있던 단편소설의 주인공도 계속 잔다고, 호텔 조식을 먹고 내내 자다가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될 때, 일어나서 맥주를 마시고 또 취해서 잔다고.
어린 커플의 약간 저렴한 대화에 몽롱한 분위기는 깨지고 흡연실 찾는 사람들에 평온이 와그작 부서졌다."
달콤한 낮잠의 끝은 입맛이 썼던 모양입니다.
"어느 깊은 가을밤, 공자는 제자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자가 묻기를 왜 그리 슬피 울고 있느냐.
제자가 대답하기를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공자가 재차 묻기를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가 재차 대답하기를......, 그 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깊은 가을밤, 공자는 제자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자가 묻기를 왜 그리 슬피 울고 있느냐.
제자가 대답하기를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공자가 재차 묻기를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가 재차 대답하기를......, 그 꿈을 계속 꾸는 일은 몹시도 힘이 든다는 것을 아는데도 저는 그 꿈을 꾸어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From 영화 "달콤한 인생"의 내레이션
달콤한 꿈은 슬프게 하는가 봅니다. 달콤함은 쉬이 버리기 어렵기 때문일까요.
꿈을 꾸고 이룬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고 시니컬한 태도를 갖게 되면 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인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현명해지는 것일까요?
"선생님, 꿈이 없습니다. 꿈을 왜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학에서 상담을 하면서 꽤 많이 들어본 질문 중 하나입니다.
"꿈=장래 희망직업"이라 생각하니 없을 수도 있다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말하던 나는 지금보다 젊고 확신에 차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꿈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아 보자고 했던 것도 같고요, 작은 꿈을 자주 꾸자고도 했었는데, 꿈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라며 그런 말을 확신에 차서 말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네요.
아마도 그때는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곳에 내가 그리는 것들이 분명했으니, 학생들에게도 그 말을 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 속을 무던히 참고 견디며 지금에 와서 보니, 긴 꿈을 꾸다 깬 듯 멍합니다.
대체로 분명하고 선명한 것을 선호해 결정을 내리면 그것을 추진하거나 포기하는 것에 모호하게 굴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은 안개가 자욱한 허공에 놓은 평균대 위에서 겨우 균형을 잡고 한 발자국씩 겨우 내딛는 느낌입니다.
"중년의 위기"가 시작된 것인가 보다 싶은 것이 "정체성의 변환기"라 하니, 순하게 인정하고 싶습니다. 청년기의 방황은 자립과 독립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면 중년의 위기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점검하고 몸과 마음을 가꿔야 하는 시그널이겠구나 싶습니다.
특히 공허함이 나를 압도했습니다. 청년기의 활기참과 비례하는 방황에 비해, 중년의 위기 시작은 공허함이 지배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이래서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갑자기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하며 일탈에 빠져드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에 대해서 시들부들 해지고 이 열정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그런 기분을 이기지 못하다가 갑자기 '꿈을 왜 꿔야 하냐던' 학생들의 마음이 그제야 통렬하게 와닿았습니다.
나는 당분간 공허함 속에 몸을 낮춰 가만히 있기로 선택했습니다. 정체성이 변하는 시기라면 막무가내로 이겨내려 애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중년 이후의 방향을 생존의 불안함만으로 결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잘 다독거리고 더 이상 젊을 때의 생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흔들리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다가 다시 뒤로 한 걸음 물리는 것을 반복하는 중입니다. 잃을 게 없어서 다쳐도 한 걸음 내딛으며 빠르게 회복하던 때와 달리, 지금도 잃을 게 아주 많지도 않으면서 예상할 수 있는 아픔과 더딘 회복력이 다소 비겁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공자의 제자처럼 나는 울면서 '꿈을 계속 꾸는 것이 몹시 힘든 것임을 알면서도 꿈을 계속 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년의 위기로 정체성이 변하고는 있다고 해도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영영 안갯속을 헤매더라도, 아직은 공허 속에서 제자리걸음이더라도 꿈이 나를 걷게 할 것입니다. 꿈이 더 이상 나를 찬란하게 만들지도 않고, 이루기 힘들다는 것도 또 그 꿈의 끝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러하니, 당신!
우리 잠시만 같이 숨을 고르시길.
다시 달콤한 꿈을 꾸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