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끌림의 서 17화

끌림의 서 Chapter 2 선택 앞에서의 나약함

걱정하지 마. 괜찮아.

by 지영Robin
2017년 8월 31일 해 뜰 무렵 @경기도 양평



항간에 떠도는 <반야심경>의 현대어 번역글에

"미래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

무리해서 비추어 보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 보이는 그 자체를 즐기면 되잖아?

그게 "살고 있다"는 느낌의 녀석이지."

라는 구절에 마음을 뺏깁니다.


마음의 번다함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때맞춰 찾아온 불청객처럼, 나를 내가 복닥이는 즈음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내가 선택해서 가고 있으나 이 길에 정녕 뜻이 있는 것인가 하는 솟구치는 의심증이 그것입니다.

앞으로 나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가, 불안과 걱정 앞에 한없이 나약해집니다. 처서가 지나고 불어오는 바람결이 확연히 다름을 느끼고 나니, 더 그렇습니다. 더위에 늘어져 있던 걱정도 서늘한 바람 앞에 갑작스러운 긴장감을 북돋우는 것인지도요.



서른 살 증후군은 남들보다 유난히 처절하게 겪고 나서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30대를 보내고 나니, 마흔을 맞이할 때는 비교적 편안했습니다. 지난 30대를 산 것처럼, 40대를 살면 되지 않을까 싶은 살짝 느슨한 마음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내 서른의 방황을 철없음과 인생 편안하게 살아서 스스로 인생 고난을 자처하는 것이라고 훈수를 두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연락을 해와서, 그때 훈수 둔 것을 거둬들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때 나와 유사한 <마흔 살 증후군>이 찾아온 것 같다 말했습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라는 나이는 그들의 방황 앞에서는 무용지물의 말이었지요.


서른 살에 때늦은 방황을 하고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나를 보며 그들은 꽤나 걱정을 했더랍니다. 불러내서 술 한 잔, 고기 한 점, 커피 한 잔씩 사주며 위로하고 격려한다 했지만 사실 연민이었을 겁니다. 차비도 없을 정도의 궁핍함을 눈치챈 친구가 보내준 용돈은 매우 요긴했습니다.


그때 연민과 동정 속에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자격지심 없이,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20대에 했던 것들은 다 버려도 나름 잘 살았다는 증거는 그런 친구들을 둔 것 아니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을 갚을 때가 있을 것이라, 우물쭈물 대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없다 싶은 순간은 내 내였고 출구 없는 터널 속에서도 삶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는 것은 내가 겪어내야만 하는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그것 또한 내 선택이니, 후회할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있었겠습니다.



나에게 훈수를 두고 한동안 나의 술과 고기를 책임지던, 엘리트로 인정받고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도 받던 동기는 마흔 즈음에 공황장애를 얻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했습니다.

능력을 가장 인정받고 있는 때에, 취미로 하는 사진으로 공모전에서 상도 받고 그 사진들이 회사 달력에 쓰이기도 한다던 삶을 남들보다 두 세배 더 열심히 살던 그 친구의 고백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서른의 내가 했던 고민이 너무 쓰잘 데 없어서 화도 났다던 그였는데 돌이켜보니, 그건 질투였던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장 인정받는 때에 그 일을 떠나기로 선택했습니다. 마흔 넘어 기술을 배우고 예전 받던 월급의 일주일 치도 겨우 될까 말까 한 돈을 받으며 수습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며 행복해하는 그에게 얻어먹은 삼겹살과 소주를 되갚아 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는 몸 쓰며 기술을 쓰는 것이었는데, 맞지도 않는 숫자와 서류에 치이며 불편한 양복을 입고 청춘을 보냈다며 웃는 그에게서 '서른의 내가' 보였습니다.



한편, 마흔이 넘어서 커리어의 확장을 위해,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5년 정도만 하고 나와서 뭐가 됐든 내 것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알다시피, 회사 생활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치이고 휩쓸리는 것이 다반사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처음과 달리, 예상 가능한 것들이 더 많아지고 좀 더 맷집이 좋아졌을 따름이지요.


그러다 <팀장>이 되었습니다. 이전 팀장은 '권고사직'으로 이름 붙인 해고를 당했던 터라, 갑작스레 팀장이 되어 6개월 간 죽어라 한 일은 [뒷수습]이었습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와 '양해를 구한다'는 말은 가장 많이 했던 말들이기도 했습니다.

수습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그때 받은 월급은 그야말로 "욕 값"이었습니다. 눈을 뜨는 아침이면 오늘은 누구, 어디의 욕받이가 될 것인가 한숨부터 나오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죽을 듯 일을 하고 수습을 하면 마이너스에서 그저 "0"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원금은 갚아지지 않고 겨우 이자만 갚는 것 같던 좌절스러운 그때, 다른 일을 수습하는 그 순간에도 다른 것을 수습할 걱정을 하느라 출장을 가서도 잠을 못 이루던 8월 말 새벽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이나 하자 싶어 숙소에서 나오는데 먼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멀리서 떠오르는 해가 너무 성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앉아있으니, 알게 모르게 쌓였을 서러움과 억울함이 터져 나오는 기분에 한숨으로 풀어내며 릴케의 글을 떠올렸습니다.


"홀로 있는 성녀,

그리고 지붕, 문짝, 조심스러운 둥근 빛을 비추고 있는 방안의 램프,

저 쪽으로 잠자고 있는 시가, 강

그리고 달빛에 비치고 있는 아스라한 먼 풍경을 보았지요.

성녀는 잠든 시가지를 지키고, 나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한 장의 그림 안에서 뜻밖의 것들을 보았기에 흘린 눈물.

나는 성녀 앞에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지요."

- 라이나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중에서.



나와 약속한 5년의 시간을 채운 후, 번아웃으로 너덜너덜한 상태로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 계획은 6개월로 세운 후, 차근차근했으니, 책임을 다하고 미련도 없이 하려고 마지막 힘을 쥐어짰던 기억이 납니다.


퇴사 후 1년 정도는 온전한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하고는 있지만 '욕 값'이었던 월급을 받을 때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는 못해도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이라 괜찮은 등가교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인간은 변덕스러운 법. 그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때때로 찾아드는 불안함과 걱정에 흔들리는 중이며 경제적인 것 앞에서는 나약해지는 제 자신을 오랜만에 다시 발견하는 중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궁금증보다는 조급증이려니 합니다. 안 보이는 것을 즐기기엔 아직 수양도 덜 되었고 그게 '살아있다'는 느낌의 녀석이라고 통 넓게 굴기에는 속도 좁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걱정이 나를 덮치지 않도록 노력을 해보려 합니다. 명랑하게 살려고 노력해보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일테니까요.


그러하니, 당신!!

너무 많은 걱정이 덮치게 하지 마시길.

괜찮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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