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살게 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살게 했음을 깨닫는 날이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일상을 더하는 하루였는데, 그 아무렇지 않고도 무던했을 하루가 위기 같은 오늘을 붙잡아주는 촘촘한 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별스럽지 않은 습관이 우울해지고 의욕이 솟지 않는 날, 나를 위로해주기도 합니다. 그런 날들을 미리 생각해서 만들어진 습관은 아닐 텐데, 그 모든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인지하게 되면 조금 감동스럽습니다.
나의 그 별스럽지 않은 습관 중 하나는 여기저기 메모를 끄적여놓고 기록해두는 것입니다. 좋은 글귀야 당연히 그럴만하다 싶은 것이긴 한데, 때때로 이런 글들은 왜 적어놓았을까 싶도록 잡스러운 것들도 적어두는 습관이 그렇습니다.
E.H. 곰브리치가 그 유명한 <서양미술사>에서 쓴 것처럼 시의 내용을 보고 시가 참 잘 쓰였구나, 좋은 시시라고 하듯, 그 시를 쓴 글씨를 보고 잘 쓴 시라고 하지 않는데, 그 옮겨놓은 글들을 보면 때론 글씨 연습했나 싶은 글들도 있습니다.
그런 류의 글을 어제도 발견했습니다. 20년도 훨씬 전에 매일 신문을 보는 일과 중 "해외 토픽"이나 "황당 사건"이라며 조그마한 단신을 보는 잔재미를 즐기다 그런 것들 중 특이하다 싶은 것들은 옮겨 적은 모양입니다.
그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캐나다 한 젊은이가 술 사 마실 돈이 없자 휘발유랑 우유를 섞어 마심. 당연히 배탈이 났고 집안의 벽난로에다 대고 토함. 벽난로가 폭발하면서 집이 날라 가고 본인은 물론 집안에 있던 누이까지 죽임.
2. 27세의 프랑스 여인이 운전 중 나무를 들이받고 사망함. 이유는 키우던 다마고치의 밥을 주기 위해 운전을 소홀히 하다가 그랬다고 함. 다마고치 살리려다 본인이 죽음.
3. 22세의 미국 청년이 번지점프를 하다 사망. 수십 개의 문어다리를 테이프로 엮어서 고가 철로에 매고 뛰어내렸는데 경찰에 의하면 줄의 길이가 철로 높이보다 길었다고 함.
4. 텍사스의 중형 창고업체에서 가스가 누출됨. 회사 측은 즉시 발화 원인이 될만한 모든 요인을 차단하고 직원을 대피시킴. 가스회사에서 두 명이 파견됨. 점검을 위해 창고로 들어온 직원 중 하나가 전등이 안 켜지자, 가스라이터를 킴. 창고가 완전히 폭발하고 두 명의 시신은 흔적도 없었다고 함.
5. 한 청년이 콜로라도 주의 어느 구멍가게에서 강도짓을 함. 점원이 돈을 담는 사이 진열대의 술을 본 청년은 그 술도 봉투에 넣으라고 요구. 점원이 '너 21세 넘었어?'라고 따지자 이 청년은 신분증을 보여줌. 21세 이상임을 확인한 점원은 술을 줌. 두 시간 후 경찰이 청년을 체포함.
6.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에서 어떤 남자가 은행을 털려고 함. '나에겐 총이 있다, 이 가방에 돈을 넣어라'라고 은행 용지에 써서 창구 줄에 서서 기다림. 그러다 누가 그렇게 쓰는 걸 봤을까 걱정이 되어 길 건너 다른 은행으로 감. 창구직원에서 종이를 보였을 때, 이 여직원, 강도가 멍청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건 AA은행 용지라서 우린 돈을 줄 수가 없다. 우리 용지에 다시 쓰던가 도로 AA은행으로 가라'라고 함. 강도 알았다며 다시 아까의 은행으로 감.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는 AA은행 창구에 줄 서 있었다고 함.
: "역시 아는 것은 힘이요, 모르는 것은 죄인 모양입니다."
이 메모 끄트머리에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삶과 죽음이 이렇게 한 순간이라니....
천당과 지옥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서로 존재한다니....."라고 적어놓았더군요.
많은 것들을 정리하며 버리기도 했지만 어디 한 편에 내가 글을 써놓거나 한 것은 차마 버릴 수가 없어 보관하는데 간혹 들여다보면 10년 혹은 20년 전의 내가 나이 든 나를 붙잡아줄 때, 기특합니다.
어제는 초행길에 아침 일찍 가서 일을 하고 밥때를 놓쳐 빈 속으로 집에 와서는 거의 드러눕다시피, 지쳐버린 나에게 갑자기 눈에 띈 저 "황당 사건"은 피식 웃게 하며 생동감이 살짝 살아났습니다.
멍청함을 동반한 비극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글을 옮겨 적을 때의 심정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요즘 말로 "웃픈" 일이니, 그저 좀 우울할 때 들여다보려고 쓴 별스럽지 않은 습관이었을리라 짐작합니다.
지친 일과를 마친 나를 웃게 한 것은 과거 어느 때 쓸데없어 보이는 짓을 한 나였듯이, 오늘의 아무렇지 않지만 나를 조금은 행복하게 하려 노력하는 일상을 이어나가 봅니다. 대부분 실패하고 효과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 보면 미래의 나를 오늘의 내가 위로할지도 모를 테니까요.
그러하니 당신!
오늘은 불행의 기준은 가혹하게, 행복의 기준은 관대하시길.
사소하고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상이 미래의 어느 날, 당신을 위로할 것인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