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끌림의 서 14화

끌림의 서 Chapter 2 선택 앞에서의 나약함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

by 지영Robin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JPG 1988년도 1년간 촬영, 1989년 3월 KBS1에서 방영된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 Intro

장마가 끝나고 날이 무척 뜨겁습니다. 모두 이 시기를 잘 보내고 계시나요?


Case 1.

스스로의 의지는 하나도 없이 끌려오다시피 한 청년이 내 앞에 앉았습니다. 외출은 한참만인 듯했고,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는 나를 경계의 대상으로 보고 온몸으로 거부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으니, 그도 나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그 순간의 모든 것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고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무수한 좌절을 엿봅니다.


그의 어머니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부처 책임자와 캐나다 패키지여행에서 안면을 트게 되었는데 마침 그녀의 아들이 그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아들은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로 학교에 나가지 않고 모든 것을 멈춘 상태로 이제 30살을 앞두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의 교감으로 재직 중이었고 남편은 공기업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나름 사회적 지위를 갖춘 그녀는 음료 한 박스를 들고 자존심을 굽히며 도움을 청하니, 책임자는 저를 불러 부탁했습니다. 청년이 직접 오기만 한다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렵사리, 첫 난감함을 뚫고 청년과 나눈 여러 이야기 속에서 일관된 요점은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었고 자기 결정권은 부모님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자신은 누구보다 말 잘 듣는 아들이었는데 그것은 선택을 하려 할 때마다 부모가 직접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전공을 선택할 때, 철학이나 사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던 그 선택을 부모님이 담임과 상의하여 대학원서에 지원학과(부모님이 생각하는 유망 전공)를 무참히 고쳐 냈던 일은 이 청년이 '은둔형 외톨이'가 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전공수업과 학교가 마음에 들리 없었고 어릴 때부터의 켜켜이 쌓아왔을 좌절감이 한순간에 터져 나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대체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셔츠의 소매를 걷어 보여준 팔에는 스스로 긁고 할퀴어 상처 나고 흉이 가득한 자해의 흔적이었습니다.



Case 2.

우아한 50대 후반의 여성. 행동을 하기 전, 저에게 질문을 꼭 3~4번을 반복합니다.

가령,

나 : "빈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여성 : "이 빈칸에 이름을 적으면 되는 것인가요?"

나 : "네."

여성 : "선생님, 여기다 이름을 적으면 되나요?"

나 : "네, 본인의 이름을 적으시면 됩니다."

여성 : "죄송한데, 여기다 이름을 적는 것 맞지요?"

나 : "네."


이런 상황이 수시로 반복이 됩니다. 그녀가 자신의 히스토리를 말하게 되기 전까지 그저 강박증이 심하구나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난 지역에서도 알아주는 엄마였다고 했습니다. 두 딸 중 첫째 딸에 대한 높은 기대와 열정과 첫째의 순응은 생활, 취미, 교육뿐 아니라 친구마저도 그녀가 정해주고 만들어주었다 했습니다.

첫째와 달리, 둘째는 울고불고 반항하기에 잘 받아들이는 첫째에게만 그 애정이 쏟아지게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대학교를 가는 과정에서 받게 될 과외와, 가야 할 학교와 학원, 만나야 될 친구, 입어야 될 옷, 해야 할 헤어스타일, 밥 먹는 것, 먹으면 안 될 간식 등등 일거수일투족을 그녀가 결정하고 플랜을 짜서 그 안에서만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째 딸이 무난히 목표한 대학으로, 그녀가 짠 딸의 인생플랜에 맞는 전공을 공부하며, 들어야 하는 교양과목, 교류해야 할 연합동아리, 학원, 어학연수, 만나야 할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를 다시 정해주었습니다.


그 딸은 다시, 그 플랜에 맞게 대학 졸업 후, 그녀가 정해준 기업으로 취업까지 한 번에 되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고, 그 지역에서 학부모들을 위한 멘토링까지 해주며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훌륭한지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자랑스럽던 딸이 밤마다 잠을 못 이루고 불 꺼진 거실이나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있을 때가 많아지고 회사를 결근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때에도 그녀는 딸의 좋은 혼처를 찾으며 인생플랜을 완성하려고 했습니다.


딸을 볼 때마다 언제 결혼해서 언제 자녀를 낳아야 하고 몇 명을 낳는 것이 딸에게 좋을지를 일러주던 어느 날, 딸이 그녀에게 묻습니다.


딸 : "엄마는 행복하세요?"

그녀 : "너 보면 행복한데, 둘째 생각하면 걱정이다."

딸 : "난 동생이 너무 부러운데. 걘 하고 싶은 걸 하잖아요."

그녀 : "너 보면 나중에 걔가 후회할걸? 엄마 말 들을걸 하고."

딸 : "엄마라도 행복해서 다행이네요. 난 엄마 말만 듣고 산 거 너무 후회하고 불행해요.

회사에서도 너무 힘든데, 같이 나눌 친구가 없어요. 외롭고 힘들고 죽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딸은 Case 1의 청년처럼,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심한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힘들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딸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만만하던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고 행동하기 전에 3~4번을 확인하는 강박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민학교"였던 때, 6학년이었던 나는 KBS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학교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1년간 경험했습니다.

3월 어느 날부터 가끔 교실 한편에 방송국 카메라와 조명기기가 설치되고 PD아저씨와 작가 아저씨 등 스태프들이 앉아있기도 하고 우리끼리 재미있는 행동을 하거나 깔깔 웃고 있으면 PD 아저씨나 카메라맨 아저씨가 아까 한 것 다시 해보라고 하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정확히 모르니 어색한 그야말로 발연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타고 가는 것도 다시 돌아와서 타고 가보라 하면 가기도 하고요. 일기를 쓴 것 보더니, 녹음하자고 해서 토요일 오후에 녹음을 따로 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할 것이 없다 생각하는 것 천지였는데, 나중에 크고 나서 내가 받았던 그 교육과 환경, 경험이 얼마나 특별한 것이었는지 매번 깨닫습니다.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는 문장은 당시 6학년 1반 담임선생님의 교육신념이기도 하고 급훈이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행동할 줄 아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몫을 담담하게 감당하는 것을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선택을 어려워하는 청년들을 만날 때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좋아할 수 있는 선택은 부모님이 미리 해주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싫어하고 실패할 기회를 부모님이 친히 없애주셨으므로 좋아하는 것이 실제로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것인지 반복적으로 하는 것인지, 헷갈려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리하여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라고 일깨우고 무던히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해 준 교육을 받았던 때를 떠올리며 어른의 노릇을 생각합니다.


들꽃이 스스로 자라듯이, 아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는 것. 그것이 쉽지 않은 과정임에도 어른은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 그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상담을 하거나 컨설팅을 하면서 미리 정답을 이야기해주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내 딴에는 훤히 보이는 답일지라도 그들이 직접 어렵게 찾아낼 수 있도록 방향만 알려주는 선을 지키는 것이 꽤 어렵습니다. 부모님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우시겠지요. 너무나 사랑하니까요.


그러나 그 사랑이 지나치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그러하니, 당신!!

사랑으로 더 답을 알려주고 싶을 때 한 발자국 물러나시길.

사이좋은 먼 사이가 그를 성장하게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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