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입지 않은 것처럼
22년 3월 친구에게 선물 받은 커피잔 세트에 담긴 에티오피아 커피 한 잔
창 밖에 비가 내리니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월요일 오후입니다. 커피 한 잔 하셨나요?
주말은 예상치 못한 컨디션의 난조로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고 집 안에서만 맴돌았습니다. 책도 펼쳐봤지만 글이 눈에 맺히지 않고 낱말들이 서로 부딪쳐서 책도 덮었습니다. TV는 혼자 신나게 떠들어대는 소리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책장에 꽂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때,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고 회자되던 글이고 그 글을 읽었을 때, 내게도 울림이 있던 것을 꺼내어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저 문장들을 처음 보았을 때, 어지간히도 뜨거운 마음을 갖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일기장에, 스케줄러에 여기저기 많이도 써 다녔던 기억이 나서 웃음이 살포시 났습니다. 청춘이었으니, 춤추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일하고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땐 오히려 시간이 느려 늙은 노인의 오후 같다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저 글은 그런 마음을 깨우는 채찍 같아서 내내 마음에 깊이 남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다 지금 저 글을 보니, 뜨겁게 삶을 사랑하는 로맨티시스트가 아니고서는 저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 지치지 않고 샘솟게 하려는 "열정"이 남의 일 같기만 합니다.
사람마다 선망하는 몇 가지쯤은 갖기 마련입니다. 그것 중에는 그저 선망하는 것으로 두는 것이 있고, 기어코 노력해서 갖게 되는 것도 있으며, 또는 선망하는 것이 실제로 내가 바라던 것보다 못해 실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가져보려는 선택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위해 용기를 내셨을까요?
나에게는 "발레"가 그것이었습니다. 지난번에도 썼듯이, 어린 시절 꼭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했던 연필깎이를 한참 어른이 되어서 사고야 말았던 것과 같이 "발레"는 서른이 넘어 용기를 낸 사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지극히 내성적이었고 수줍음도 많고 말수도 적은 데다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사회성을 길러야 하지 않겠나 하면서 보내진 것이 무용학원과 미술학원이었습니다. 엄마의 말씀으로는 '자기 표현력'을 기르려면 무용과 미술이 좋겠다는 생각하신 결과였다 합니다.
무용학원에서 하는 발표회에서 하기로 했던 "호두까기 인형' 발레는 한국무용을 하기 싫어하는 친구에게 양보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되는 바람에 내 선망 바구니에 발레가 오랫동안 담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서른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성인 발레 클래스"라고 적힌 무용학원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춤춰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의 순간이 있다면 "지금이다!" 싶어 용기를 내어 학원을 등록하고 타이즈를 사고 슈즈를 샀습니다. 처음 레슨을 가기 전까지 그 기분 좋은 설렘은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첫 레슨을 가는 날은 설렘은 공기 중에 흩어지고 용기는 사그라들어, 무용학원 문 앞까지 나를 데려다 놓는데 정말 힘겨웠습니다. 탈의실에서 오랜만에 갈아입은 타이즈가 주는 어색함과 쭈뼛쭈뼛 벽 면 거울에 비친 구부정한 내 모습까지 한마디로 가관이었습니다.
첫날의 어정쩡함과 우스꽝스러움이 넘어가고 몇 번쯤 가는데 못난 내 모습을 또 볼 생각에 스트레스가 쌓였습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꾸역꾸역 괴로워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결심한 날, 내 모습을 거울 속에서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발레리나가 되려고 시작한 것인가?'
'꼭 잘해야만 하는가?'
'평가를 받을 일 있는가?'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전부 "NO!"였습니다. 모든 것을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가요? 나는 발레 배우러 왔고, 발레를 하다가 혼자 한국무용 손짓을 하는 엉뚱한 팔다리를 가졌다 한들, 누가 야단칠 사람도(발레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혹시 한국 무용하셨냐 물어보셔서 둘이 엄청 웃음) 없는데 혼자 나를 왜 옭죄이며 스트레스를 받고 이 난리인가 싶었습니다.
그때 선택한 것은 스스로 "바보 되기"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야말로 아무도 보지 않으니, 즐겁게 춤추자 마음먹은 후, 발레학원 가는 길이 너무나 즐거워 한 3년간 신나게 다녔습니다.
우리는 한번 하는 것, 제대로 해야 하고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팔방미인 증후군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고 선택은 더더구나 어렵고 멈칫하며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물론 목표로 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같은 인생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정말 잘 해내야 하는 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선순위 외에는 다 잘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두 군데 힘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힘을 살짝 빼고 약간의 내 못난 모습을 인정하면 위태로운 줄타기와 같은 인생에서 균형 잡기가 좀 수월하더라고요. 내가 잘 못하는 부분에는 다른 전문가들이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그러하니 당신!
불어오는 바람결과 흘러가는 물길에 몸을 맡겨보시길.
꼭 1등일 필요는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