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끌림의 서 13화

끌림의 서 Chapter 2 선택 앞에서의 나약함

A 혹은 B 또는 C

by 지영Robin
초코렛.png One of Chocolates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Forrest.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yet."

("인생은 초콜릿 박스와 같아, 포레스트.

넌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지.")

- 영화 "포레스트 검프" 중에서



숨소리마저 방해가 될 것 같은 불편한 적막이 흐르는 공간. 대답이 필요 없는 노크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육중한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5명의 지원자가 들어옵니다. 뽑히려는 자와 뽑으려는 자 사이의 극명한 이해 차이가 날카롭게 부딪히는 첫 순간입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지원서에 쓰인 내용과 AI면접 결과 해석지 따위입니다. 이름도 나이도 학교도 전공도 모릅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마저도 마스크로 가려져 있습니다. 1차 서류평가, 2차 필기시험을 통과한 후, 3차 실무면접까지 통과한 그들은 마지막 관문 앞에서 여유를 갖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반대로 꼭 뽑아야 하는 인재를 놓치면 안 되는 명제와 뽑으면 안 되는 지원자를 골라내야 하는 역할의 책임감에 짓눌립니다.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분. 째깍째깍! 시간의 화살이 무심히 쏘아집니다.



이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준에 대해 서로 합의를 하는 것입니다. 블라인드 채용이니, 은연중에 이름을 말하거나 학교를 나타내는 직접 표현과 은유를 쓰거나 부모의 직업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원자나 평가자 모두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읽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번 더 공지하고 평가자와 안면이 있는지 서로 확인을 잠시 합니다. (안면이 있는 경우, 그 평가자는 평가에서 제외됩니다.) 그다음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되도록이면 간략하게 하도록 안내하고 답변이 길어질 경우, 다른 지원자의 답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평가자가 개입할 수도 있음에 대해 양해를 구하며 합의를 합니다.


최근 몇 년간 "블라인드 채용"은 그야말로 기회의 공정성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협의와 반론을 통한 합의, 그리고 점차 세분화된 기준의 수립과 적용 같은 여타의 노력을 많이 해왔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아무리 대표이사, 임원이라 하더라도 면접에 들어올 때 인상만 봐도, 혹은 걸음걸이만 봐도 될 사람은 딱 골라낼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미안한 세상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내부 평가자와 외부 전문 평가자를 구성해 결과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추세입니다.)

좋은 인재가 기업과 조직의 꾸준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하니, 이제 많은 기업과 조직은 좋은 인재를 뽑고 기회의 공정함을 위해 평가자 교육을 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기준을 만들며 수정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절대적으로 완전하거나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 채용의 결과를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들이는 노력은 상당합니다.


이에 지원자들 또한 변화하는 채용 트렌드에 맞게 눈물겨운 노력과 시간을 쏟고 간절함과 좌절감 사이를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한 걸음씩 내딛겠습니까?



그러하므로 적절하고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은 평가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며 덕목일 것입니다. 이에 평가자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짧은 시간에 자기소개서나 지원서, AI면접 해석지를 종합적으로 보면서 날카롭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순간적으로 허를 찔린 듯한 지원자의 눈빛을 읽습니다. 때로는 질문과 상관없이 외워온 것을 그대로 말하는 지원자의 흔들리는 눈빛도 읽어냅니다. 중언부언 말을 이어가는 지원자는 답변도 길어져 결국 평가자의 개입이 들어갑니다.


또한 평가결과는 평가자 모두의 점수에 대한 평균으로 이루어집니다. 평가점수를 가지고 논의를 할 수 없으니, 평가자도 누가 확정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꼭 되길 바라는 지원자를 위해 기원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희한하게 그 짧은 순간에도 꼭 되기를 바라게 되는 지원자가 한 둘쯤 생깁니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저런 장면이 일어나고 있겠지요. 나에게는 자주 겪는 장면이며 압박감입니다. 불려 가는 곳의 연혁, 기능, 역할, 비전을 공부하고 그곳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돕고 다른 여타의 영향으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지원자가 없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 책임입니다.

누군가의 노력에 대한 결과를 선택하는 자는 오만해서도 안 되지만 비겁해서도 안 됩니다.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입니다.


최근 이 모든 노력을 우습게 만드는 "사적 채용" 뉴스를 보고 있노라니, 화가 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기준을 보니, 어이가 없을 정도인데(적어도 외국어 능력이 필요한 직무의 면접평가에 참여한 청년들이 더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가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당당해서 또 놀랐습니다.




10년 전쯤, 노력과 성의, 열의, 실력만큼 눈에 띄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금융권을 목표로 대학 입학 이후부터 일관되게 준비하며 칠전팔기의 의지를 보여주던 그녀가 죽도록 노력한 금융권을 결국 포기하게 만든 것은 모 은행의 최종면접이었습니다.

당시는 현재와 같은 블라인드 채용이 있었던 것도 외부 전문 채용가가 있는 때도 아니었을 때라, 최종면접에는 모두 그 은행의 임원들만 있었습니다. 두 어달 간 3차까지 평가과정을 우수하게 통과했던 그녀가 최종면접에서 받은 질문은 고작,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냐?', '아버지는 연금을 받으시는 분이냐?', '집은 자가이냐?'가 전부였다며 능력과 노력을 표현할 만한 그 어떤 질문도 받지 못했다며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를 슬프게 했던 그 채용은 몇 년 뒤, 불법 채용과 청탁으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러한 불합리한 과정을 거쳐 어렵게 만든 기회의 공정함을 위해 기울이는 기업과 조직의 노력, 그 노력에 맞춰 열심히 눈물겹게 준비해온 지원자의 과정을 부정하고 쓸모없는 것이 된 것은 그래서 가장 화가 나는 부분입니다.



평가에 들어갈 때마다 포레스트 검프의 저 대사를 생각합니다. 다만 "인생" 대신 "인재"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할까요?

더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더 적합한 사람을 뽑을 것을 스스로에게 언제나 다짐을 합니다. 더 적합한 사람을 기준에 맞게 뽑기 위해 선택 앞에서는 언제나 겸허하고 결과에 대해 나약해지지 않으려 합니다. 세상은 매우 느리지만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말을 믿습니다.

최근의 "사적 채용" 논란도 더 올바른 채용의 시스템이 되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10년 전 불법 채용과 청탁 사건들이 겹쳐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제도를 만들게 된 것처럼.


그러하니, 당신!!

초콜릿 상자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선보일지 모르니, 세상을 부정하지 마십시다.

당신을 알아보고 찾아낼 눈 맑은 사람 또한 분명 있을 테니.

keyword
이전 12화끌림의 서 Chapter 2 선택 앞에서의 나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