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나는 기억
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밤새 일어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현재의 일은 뒤돌아서면 깡그리 잊어버렸다. 병원에 왜 입원했는지, 지 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시공간이 뒤섞인 듯 같은 질문을 몇 번 씩 물어봤다. 아버지는 달아나는 기억을 붙들 듯 손목시계에 대해 유달리 애착이 강했다. 손목시계를 보며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고 식사 시간과 식후 30분 약 복용 시간만큼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맨 처음 의사에게 2주 뒤 퇴원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능하면 병원에서 최대한 버텨 볼 요량이었다. 그래서 퇴원 이야기를 듣고도 그냥 잠자코 있었다. 아버지가 병원을 옮길 때마다 낯선 환경 탓인지 후유증이 커서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형편을 살펴보니 마냥 있을 수는 없어 일단 요양병원을 알아봤다. 요양병원에서 결원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으면 곧바로 입소할 수 있도록 대기환자로 등록까지 해둔 상황 이었다. 다만 의료진에게 알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보호자가 퇴원 날짜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자 아침 회진 때 주치의가 은근히 압박을 했다. 더 이상 퇴원 날짜를 미뤄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 말이 신호탄이 되어 수간호사와 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면 서 병실을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들락거리며 전원할 병원을 알아보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마치 퇴원을 늦추려는 의도를 간파한 듯 계속 돌아가면서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간호사에게 전원할 요양원에 대기환자로 등록한 상태이고 결원이 생길 때까지 적어도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까지 전했다. 솔직하게 털어놓았으니 당분간은 시달리지 않 겠지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병세는 처음 입원 당시보다 별반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도뇨관을 하고 있으니 요로 감염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 체하고 방광 세척을 할 때마다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가래 기침 으로 항생제 주사를 맞고 감염 수치가 낮아지면 중단했다가 다시 맞는 상태가 반복되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 인 것은 예전처럼 갑자기 돌변하는 이상행동이 사라졌다는 것 이다. 하지만 밤에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잠꼬대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나이 든 아버지의 몸은 병마에 시달려 점점 쇠약해졌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의 몸은 나뭇잎을 모두 떨군 겨울나무처럼 뼈만 남았다. 아버지가 지구에서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자연의 품안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아버지가 이번에도 고통의 시간을 꿋꿋이 이겨내고 봄나무 처럼 꽃을 피워 낼 수 있을까. 아버지와 함께 앞으로 몇 번의 봄 을 맞이할 수 있을까. 평소에 아버지는 인명재천이라며 입버릇 처럼 되뇌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와의 작별을 생각하니 슬픔 만 차올랐다.
매일 아버지의 병세에 따라 감정이 요동쳤다. 아버지의 아픔과 고통이 가슴에 콕 박혔다. 가슴 한구석에는 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버지가 온갖 힘을 다해 움켜 쥐고 있는 생명의 끈을 언제 놓아 버릴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요양원에서 병원으로 다시 요양병원에서 응급실을 쳇바퀴 돌 듯 반복하다가 그 어디 언저리쯤에서 숨이 멈추면 삶이 끝난다. 한 번뿐인 생이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삶이란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 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