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사회 1편
'아름다움'의 영어 단어 beauty는 프랑스어의 'beau' (좋은, 착한)을 어원으로 하고, 이것은 라틴어의 bellus, bonus (아름다운, 좋은)에서 파생되었다. 아름다운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것, 진리에서의 참에 가까운 것에서 파생되었다는 의미이다. '옳은(right)'것은 '오른쪽(right)'과 같이 익숙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그것의 기준이 되는 정점을 지향한다. 아름다운 것은 드물지만 동시에 익숙한 것들의 기준이라는 의미이다. 도덕의 측면에서 '좋은 행위'는 다수에게 인정받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행하기에 쉽지 않은 것이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당위는 누구에게나 동의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스어에서 도덕적 미덕을 뜻하는 arete (lt. virtus)는 '탁월함, 우수성'을 의미한다. 영어의 'good'가 의미하는 '좋은'은 도덕적 선과 수행을 '잘'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어떤 일을 '잘'하는 우수한 사람이 '선'하게 비칠 수 있기에 '실력주의'로 빠질 위험성을 가진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선'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그리 드문 오류가 아니다.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착한 역할을 주로 맡아 오던 것은 관람객들의 고정관념을 이용한 캐스팅 기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 한병철은 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아름답다고 말한다.
미는 필연적으로 베일과 가림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노출시킬 수 없는 것이다. 가려진 것은 오직 가려져 있을 때만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한다. 폭로는 가려진 것을 없애버린다. 따라서 벌거벗은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투명사회>, 한병철, 49쪽 -
아름다움은 외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주 드물게 관찰된다.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귀한 것에 대한 동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흔한 것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금방 싫증이 나게 되고, 그것은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기 힘들다. 전통적인 관념에서 진리, 선, 아름다움은 불변의 영역에 있다고 여겨졌다. 칸트가 진, 선, 미(das Wahre, das Gute, das Schöne)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가 그의 3대 비판서에서 이들을 각각 따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칸트 이후 진, 선, 미는 개별적 독립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칸트의 미학에서조차 비도덕적, 비진리적인 것을 아름다움에 포함하는 것은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이 숭고함(das Erhabene)이다.
영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1757)에서 '숭고(sublime)'를 근대 이후 최초로 다루었고, 그는 철학사에서 숭고함을 아름다움과 구분지은 최초의 미학자였다.
어떤 종류의 공포나 고통은 항상 숭고함의 원인이 된다.... 가장 높은 단계는 경외심이라고 부르고, 그 하위 단계는 존경, 숭배, 존중이다. -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中, 에드먼드 버크 -
버크에 따르면 아름다움과 달리 숭고함은 공포나 고통의 형태를 불러일으키며, 이것은 필멸자로서의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넘어서게 만든다. 칸트는 버크가 이루어낸 숭고와 아름다움의 분리를 받아들인다. 칸트에 따르면 어떤 대상이 지각의 주체에게 숭고한 관념을 불러일으킬 때 그 대상은 숭고하다. 그러한 대상은 주로 자연에서 발견되는데, 자연에서 관찰자의 정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칸트는 인간에 무한의 자연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에도 도덕적 존재로서 그에 맞서는 것을 숭고함이라고 말하며, 이러한 인간의 숭고함이 '절대적으로 위대한 것', '모든 비교를 초월하여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풍노도(Sturm und Drang) 문학으로 알려진 독일의 대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지성이 아닌 감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분 (공작)은 그뿐 아니라, 내 마음보다는 내 지성과 재능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 마음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오직 그것만이 모든 것의 원천, 즉 모든 힘과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다. 아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中,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오직 어떤 형식이나 형상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 반면 숭고한 것은 형식이나 형상이 없는 벌거벗음이며, 여기에는 미를 구성하는 비밀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숭고함은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하지만 피조물로서의 벌거벗음은 전혀 포르노적이지 않다. 그것은 참으로 숭고하며 창조주의 업적을 환기시킨다. - <투명사회>, 한병철, 49쪽 -
형식이나 형상은 그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감싼 외형일 뿐이다. 따라서 작가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형식과 형상이 아름다움이라는 탄성을 자아낼 때 드러난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은 아름다움이라는 형식의 정점을 보여준다. <밀로의 비너스>와 <라오콘 군상>은 신체의 비례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작품들로 재현기법을 통해 형상을 본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아름다움을 숨겨놓았다.
말레비치(Kasimir Sewerinowitsch Malewitsch, 1879-1935)와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은 대상에 형태와 형상에 대한 재현을 포기했다.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에서 '없음'을 통해 무한한 사유를 가능케 하여 숭고를 경험하게 만든다. 한병철의 말을 빌자면 '무'의 순간에 "창조주의 업적"이 행해지기 직전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몬드리안은 구성 시리즈에서 형태와 색의 근원이 되는 창조의 기본요소인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빨강, 노랑, 파랑을 통해 질서와 보편성 그 자체를 그려냈다. 이러한 추상(abstract)은 우리에게 재현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적 정보의 한계를 뛰어넘는 본질적 경험을 직접적으로 제공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는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을 즐겨 제작했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예술의 의무라고 여겼으며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저는 예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지만, 예술이기를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콘텐츠는 현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치적입니다. - 안젤름 키퍼 -
키퍼의 <멜랑콜리아>는 뒤러의 동일한 제목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면체를 전투기 위에 올린 것이 특징이다. 예술가의 창조적 우울함을 나타내는 멜랑콜리아에서 다면체의 의미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수정이라는 가설,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라는 가설 등 해결되지 않은 다면체를 참혹한 전쟁을 상징하는 전투기 위에 둔 것은 역사적 사건이 키퍼 예술의 창조적 영감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키퍼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파괴적인 이미지를 통해 역사적 사건과 오늘의 현재에서 파괴와 상실이라는 극한의 경험을 전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반성은 일종의 '벌거벗은 아름다움', 숭고한 인간 정신이다. 키퍼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을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저에게 폐허는 시작입니다. 그 잔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죠. 시작의 상징입니다. - 안젤름 키퍼 -
정치적,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벌거벗은 육체가 아닌 벌거벗은 진실을 숨김없이 드러내어 후세의 혹독한 평가 앞에 당당히 선 고독한 예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