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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읽기 #32

통제사회 2편

by Homo ludens

[절대적 안정의 공간]

작가는 두 가지 파놉티콘의 비교를 통해 <통제사회>의 투명화된 비인간성을 지적한다. 벤담식 파놉티콘과는 달리 디지털 파놉티콘은 “주민들 스스로가 자기를 전시하고 노출함으로써 파놉티콘의 건설과 유지에 능동적으로 기여한다”. 벤담의 파놉티콘이 공적 권력의 탑 속에서 이루어지는 감시의 투명성을 말한다면 디지털 파놉티콘은 비권력집단인 주민들이 서로를 감시해 권력자의 권력행사 없이 통제가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포르노적 과시와 파놉티콘적 통제가 서로를 넘나 든다. 노출증과 관음증이 디지털 파놉티콘인 인터넷을 살찌운다. 주체가 외적인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가발전적인 욕구에 의해서 스스로를 노출할 때, 그러니까 자신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을 잃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그것을 버젓이 드러내놓고자 하는 욕망에 밀려날 때, 통제사회는 완성된다. - <투명사회>, 한병철, 96쪽 -
Panopticon.jpg <파놉티콘>, 제레미 벤담, 1791

벤담의 파놉티콘은 중앙 감시탑을 어둡게 하여 죄수들에게 간수의 시선에 대한 정보를 차단한다. 이러한 감시와 통제의 방식은 물리적 위계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시각적 정보의 비대칭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부분의 시대에 권력자들의 위치가 언제나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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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 <아네테의 아크로폴리스>, 기원전 460-430; 오른편: 바빌론의 지구라트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는 이름 그대로 높은(akro) 곳에 위치한 도시(polis)였다. 이곳의 신전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은 사회 고위층에게만 주어졌고 다른 폴리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높은 지역은 신전들이 세워지기 이전에 주변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여 방어의 요충지였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4000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지구라트 역시 바빌로니아어로 '높이 쌓은/ 신들의 산'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렇게 고대의 마천루는 지배자들의 감시의 용이성과 신성함의 부여라는 통제의 효율성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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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디지털 파놉티콘은 지배자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가 아니었던 조선시대의 '오가작통법'은 각 5가구씩 묶어 서로를 감시하는 제도였다. 만약 5 가구 가운데 한 가구가 세금을 내지 않거나 도주할 경우 나머지 4 가구가 부족한 세금을 채워 넣어야 했다. 따라서 다섯 가구 모두가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서로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여기서 나태한 가구는 나머지 가구의 비난과 질타를 피할 수 없다. 만약 한 가구가 많은 수확량을 가지게 된다면 나머지 가구들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내면화된 이 도덕률은 그들이 아닌 지배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이제 디지털 시대가 되었다. 지배자의 정체는 모호하다. 때로는 자본이 때로는 투명성 자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낸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거주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두에게 자신에 대한 감시를 맡긴다. 무결점을 향한 편집증은 조금의 부정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절대적 안전을 위한 공간은 자신의 사적 공간을 공적 감시의 영역에 두는 것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nggsk6nggsk6nggs.png AI로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유튜브에서 공개되는 수많은 셀럽들의 사생활의 공개는 단순히 수익을 위한 행위로만 볼 수는 없다.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의 공개는 그것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물건의 안전성을 가능하게 한다. 이제 그들은 물건이 아닌 자신의 가족, 재산, 나아가 사고방식까지 공적 영역에 열어둔다. 이들의 노출증은 시청자의 관음증과 정확히 맞물린다. 시청자의 검증은 이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다시 시청자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여기서 옳고 그름 사이의 다채로운 삶의 방식은 '참'과 '거짓', '적절'과 '부적절'의 두 판결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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