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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읽기 #34

통제사회 4편

by Homo ludens

[자기 착취와 호모 사케르]

통제사회의 도덕적 자기 검열은 자신의 내외부의 평가의 동일성을 통해 신뢰의 필요성을 무산시켰다. 내외부의 구분의 상실은 노동에서도 작동하는데, 작가 한병철은 '성과사회'라는 투명사회의 속성이 사용자와 노동자의 역할 모두를 내면화하여 자기 착취로 이끈다고 비판한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에 타자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성과주체는 스스로 만들어낸 자유로운 강제에 예속된다. - <투명사회>, 한병철, 99쪽 -

<멋진 신세계>에서 올더스 헉슬리가 보여주듯 자발적 예속상태는 정상적 사고의 기준을 뒤틀어버린다. 가장 효율적인 통제는 부조리의 인지를 방해하는 것보다 부조리의 인지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통제의 효율성은 스스로 납득가능한 자기희생이다. 공동체의 와해와 함께 타인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설득력은 떨어졌지만 개인의 희생이 개인의 수익으로 돌아갈 때 자신에 대한 강제와 희생은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느끼는 개인의 자유는 수익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의 자유로써 시스템은 개인의 자유의 폭을 무제한으로 허용한다. 여기서 시스템은 시스템의 무한한 확장을 위한 도구로써 개인의 자유를 이용한다. 그리고 개인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재화를 자신의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인식하고 기꺼이 스스로를 착취하는데 참여한다.


왼편: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페테 파울 루벤스, 1636; 오른편: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프란시스코 데 고야, 1820-1823

고대 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다는 신탁을 두려워하여 위협이 되는 자신의 자식들을 모조리 삼켜버린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로 불리는 이 신은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난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소멸시킨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미래를 죽여 없앤 것과 같다. 결국 현재 속에 갇혀버린 미치광이 신은 막을 수 없는 미래의 반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크로노스는 발음에 의한 혼동으로 두 신을 통칭하게 되었다. 그리스어로 크로노스는 농경신을 뜻하는 Κρόνος 와 시간의 신을 뜻하는 Χρόνος 로 나뉜다. 하지만 현재뿐 아니라 과거에도 발음 상의 이유로 이 두신은 혼용되어 같은 신으로 취급받게 된다. 시간의 신이 낫을 들고 있는 이유는 농경의 신의 상징물 때문이다. 농경의 신이 시간의 신과 함께 할 때, 시간은 휴식과 노동의 두 시간으로 나뉘게 된다. 하지만 노동이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휴식의 시간은 나태와 게으름이라는 오명을 쓰고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된다.


고야는 사투르누스가 불안으로 인해 겪는 감정에서 자신이 앓고 있던 질병과 청각 장애로 인한 우울감을 발견했다. 고야가 겪었던 지독한 우울감은 자기 착취로 인한 '번아웃(burn-out)'을 느끼는 현대인과 유사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배경은 자기 착취로 인해 공허한 소진된 자아를 비춰준다.


완전 조명 Ausleuchtung은 곧 착취 Ausbeutung다. 한 개인에 대한 과다 조명은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투명한 고객은 오늘날의 새로운 수감자, 디지털 파놉티콘의 호모 사케르 Homo sacer이다. - <투명사회>, 한병철, 100쪽 -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은 고대 로마법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저주받은 신성한 자'를 말한다. 신성한 존재라는 영적 보호막을 띠고 있어서 죽일 수 없지만, 실제로 죽였을 때에는 살해자를 벌하지 않는 독특한 존재이다. 철저한 사회의 타자로서 공동체 바깥에 위치한 자가 '호모 사케르'이다. 플랫폼 기업에게 접속하는 모든 사용자의 정보는 데이터화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정보의 독점권은 기업에게 제공되기도 동의했기 때문에 정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감시하고 통제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검색창에 입력한 키워드가 광고로 등장하는 등의 기적과 같은 일들의 정확한 코드는 공개되지 않는다. 정보 산업사회에서 모든 투명한 사용자들은 디지털 파놉티콘의 호모 사케르로 완전한 조명의 대상이자 착취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돌려받는 것은 효율성과 편의성이다. 그것을 통해 그들이 치러할 대가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그 복잡한 불투명성으로 인해 무관심의 영역으로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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