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할 권리
투명사회가 개인의 개별성을 억압하는 현상은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이 근대의 대도시에서 포착한 개별성과 집단성(보편성)의 충돌이라는 본질적 딜레마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짐멜은 대도시에서 개인은 보편적인 기준과 익명성의 메커니즘에 맞춰 기능적으로 평가되며 개인의 개별성은 간과된다고 보았다. 즉, 마치 그림자와 같이 '보편적 나'의 뒤에 숨어있는 개별성은 투명한 유리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것과 같이 자신의 영역을 상실한다. 사회 속에서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개인의 내면에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내면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숨어있으나 투명사회의 엑스레이는 그 은밀한 모호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르조 데 키리고의 <거리의 우울과 신비>에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아케이드의 건물이 보인다. 이것은 합리적인 사회의 시스템과 보편적 규범이 지배하는 집단성의 공간을 상징한다.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가는 소녀의 보이지 않는 실체와 늘어진 소녀의 그림자는 보편성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 숨겨진 개인의 개별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광장의 반대편에서 소녀를 향해 다가오는 듯한 왜곡된 그림자는 보편성의 공간에서 짐작할 수 없는 불확정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모호함은 근대가 구축한 명확성, 합리성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자유로운 모호함의 공간으로 던져놓는다. 키리고의 거리에서 느껴지는 우울과 신비는 투명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호함이 불러오는 불확실성이 동반하는 우울과 신비는 명확성의 공간에서는 그 그림자를 상실한 까닭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미지의 위협이 불안의 형태로 우리에게 신호를 주며, 우리의 드러나지 않은 혹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실체를 그림자를 내세워 감추기도 한다. 하지만 투명성의 폭력은 그림자 뒤의 실체를 공개적으로 까발리고 광장에 전시한다. 그림자, 즉 개별성은 자리를 잃었다.
짐멜은 개인이 집단 속에서 개별성을 방어하기 위해 '고독'과 '위장'이라는 두 가지 역설적인 전략을 취한다고 본다. 고독은 대도시의 엄청난 양의 인상, 즉 소음, 사람, 시각적 자극에 대한 방어적 반응으로 피상적인 무관심으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개인은 자신의 개별적인 그림자를 시스템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외부와의 연결을 끊거나 거리를 두어 내면으로 물러서는 고독을 택한다. 대다수의 힘, 즉 보편성에 의해 개별성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독한 삶'을 선택하지만, 동시에 보편성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개별성의 공간도 존재한다. 그것은 대도시에서의 '익명성(Anonymität)'이다. 이 '위장' 전략은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는 대도시의 장점을 이용하여 여러 개의 각기 다른 그림자를 갖는 방식이다. 여러 개의 페르소나(persona)를 갖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가면에 맞는 그룹을 찾는 것으로 개별성의 여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가령 SNS에서 여러 계정을 만들거나 각기 다른 SNS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 예를 들어 운동을 좋아하는 자신과 사교적인 자신,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자신 등의 페르소나를 분리하여 드러낼 수 있다. 파편화된 페르소나를 이용해 '데이터 속의 나'라는 시스템의 규정에 혼란을 주는 방식은 실제 삶에서도 작동한다. 내향적인 모습으로만 비치는 한 개인의 SNS에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모습들이 공개될 때, 사람들은 그에 대해 새로운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는 새로운 그림자를 통해 보편성의 완고한 성에 균열을 가할 수 있다.
앤디 워홀은 대량 인쇄 기술인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50개의 반복되는 얼굴을 통해 마릴린 먼로라는 개인을 표현했다. 반복되는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먼로의 감정, 내면, 고뇌 등의 고유한 개별성은 사라지고, 오직 소비와 환상을 위한 '상품 이미지'만이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에게 노출되고 알려진 마릴린 먼로라는 이미지는 너무나도 보편적이어서 개인의 진정한 실체는 찾을 수 없는 혹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과 같은 상태, 즉 '익명성'을 획득한다. 어차피 진정한 자신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미디어 환경에 처해진 개인은 너무 흔해서 특별할 것이 없는 이미지 속에 자신을 숨기는 위장 작전을 펼칠 수 있다. 드러난 이미지는 그림에서처럼 오른편으로 갈수록 흐려져 사라진다. 상대에게 노출된 이미지는 반복되고 노출될수록 소비에 대한 자극이 줄어들어 사라지고, 다시 생성된 이미지가 그것을 대체하고, 또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먼로의 이미지가 소멸의 과정을 겪고 다시 새로운 이미지로 컴백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유행하는 제품이 일시적 품귀현상을 겪다가 잊혀가는 것과 같다. 복귀하지 못하는 유명인은 미디어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변화하는 이미지의 등장에 따라 마치 진실은 소멸하고, 개인의 내면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워홀은 먼로의 내면이 어쩌면 끝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져 가는 이미지의 뒤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품 이미지의 한눈에 들어오는 선명함과는 달리 그 뒤에 숨어있는 개별성은 고독 속에서 모호함을 유지한다. 그것은 외부환경과 자신의 기호에 따라 끊임없는 변덕을 부리며, 언제든 자신의 마음대로 인식과 대응을 바꾸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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