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혼인에 대하여 2>
혼인에 대해 차라투스트라는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보통 결혼을 영혼의 단짝을 찾는 과정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구형 인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원래 인간은 태양에서 온 순수 남성, 지구에서 온 순수 여성 그리고 달에서 온 양성체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양성체는 하나의 머리와 몸통에 4개의 팔과 4개의 다리가 있으며 두 개의 얼굴에 각각 두 개의 귀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양성체는 엄청난 힘과 대범함을 지녔고, 오만함으로 신에 대항했습니다. 제우스는 고민 끝에 양성체를 둘로 가르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결합을 통해 번식하게 하여 제물의 숫자를 늘리는 게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성'을 의미하는 'sex'는 '가르다' 혹은 '나누다'의 의미에서 시작되었고, 다른 이성에게 끌리는 사랑의 감정은 분리된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는 본능이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아, 두 영혼의 이 구차함이여! 아, 두 영혼의 이 더러움이여! 아, 두 영혼의 이 가엾은 자기만족이여! 이런 것 모두를 저들은 혼인이라고 부른다. 그러고는 말한다. 저들의 혼인은 하늘에서 맺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혼인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려 합니다. 그는 혼인이 영혼의 구차함과 더러움이라고 비판합니다. 그 이유는 두 영혼이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불쌍한 행위가 혼인의 정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혼인이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하늘에서 맺어진 것, 즉 이미 결정된 운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흔한 한때의 어리석음. 그것을 너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너희는 혼인이라는 하나의 긴 어리석음으로 그 흔한 한때의 어리석음에 종지부를 찍는다. 여인을 향한 너희의 사랑, 그리고 사내를 향한 여인의 사랑. 아, 이것이 고뇌하는, 감추어진 신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라면! 그러나 대개의 경우 두 마리의 짐승이 서로를 알아볼 뿐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내리는 비판의 요점은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과 혼인의 동기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잠시 현혹되는 열정의 아지랑이이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고집이 혼인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과 혼인의 이유가 결핍에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자신들에 대한 인정과 그것을 다른 사람으로 채우고자 하는 마음은 불완전한 인간의 나약함을 신의 사랑으로 채워보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원초적 죄와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자발적, 비자발적 죄를 가엾게 여기는 신의 연민은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겸허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가르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채워주는 상대를 바랍니다. 사랑의 초기에는 자신이 갖지 못한 상대의 장점에만 눈이 멀어 그가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수동적 기대를 하게 됩니다. 신에게 바라는 그것을 눈앞의 대상에게서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간의 콩깍지가 옅어지는 순간, 눈앞에는 먹이를 기다리는 두 마리 짐승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보게 될 뿐입니다.
언젠가는 너희 자신을 넘어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먼저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도록 하라! 그러기 위해 너희는 사랑의 쓴잔을 마셔야 했던 것이다.
최상의 사랑의 잔 속에도 쓴맛은 있다. 그리하여 그런 사랑은 위버멘쉬를 동경하도록 하며, 그리하여 너 창조하는 자를 목 타게 하는 것이다.
창조하는 자의 목마름, 위버멘쉬를 향한 화살과 동경. 말하라. 형제여. 이것이 바로 너로 하여금 혼인하도록 만드는 의지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진정한 사랑의 대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자신입니다. 타인을 사랑할 때의 순간의 달콤함에 빠져, 도박과 같이 상대를 고르고, 좋은 패를 지녔음에도 상대와 자신을 잘못된 동료로 여기게 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의 과정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사랑의 쓴잔"으로 가득합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채워줄 달콤한 첫 잔은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스스로에게 온전히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하기를 요구합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말한 것과 같이 대부분의 로맨스는 자신을 속이는 것에서 시작하여, 타인을 속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러한 로맨스를 경계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기기만(Selbsttäuschung)'은 쓰디쓴 사랑의 부분을 회피하고, 달콤한 것에만 중독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위버멘쉬는 쓰디쓴 고통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마주해야 할 쓴 맛이라면 지금 그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잠정적 진통제로서 혼인을 하는 것, 차라투스트라는 그것을 구차함이라고 말합니다.
마그리트의 <연인들>에서는 천을 덮어쓴 두 연인의 키스 장면이 그려집니다. 두 연인의 질식할 것 같은 키스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이들의 사랑은 서로의 모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어집니다. 한 번도 자신의 모습을 공개한 적도, 상대의 모습을 본 적도 없습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기만은 서로의 암묵적 동의에 의해 유지됩니다. 서로는 서로의 욕망을 투명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그 모습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해 준다고 착각합니다. 천 뒤에 숨어 자신들이 하나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 구차함이 길게 지속되는 혼인에 돌입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는 질식의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과 혼인은 자신을 가리고 있는 천을 과감히 걷어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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