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노래 1]
차라투스트라는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상실에 대해 긍정의 태도로 나섭니다. 그에게 무덤은 단순히 죽음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삶의 한 단계가 종결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철학적 통과 의례의 공간입니다.
"저기 무덤의 섬이, 적막한 섬이 있다. 거기 내 젊은 시절의 무덤도 있다. 나, 그곳으로 늘 푸른 생명의 화환을 가져가리라."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을 하면서 나는 바다를 건넜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젊은 시절을 동경하지만, 다시 올 수 없음에 슬퍼하기도 합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자명함과 돌이킬 용기가 없음은 과거 젊은 시절을 무덤으로 인도합니다. 많은 이들이 젊은 시절과 지금은 전혀 다른 이상과 가치를 쫓아야 하는 것이라며, '어른스럽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과거를 죽은 상태도 두지 않고, 현재의 생명력으로 다시 되살리려는 긍정의 의지를 전합니다. 정작 과거가 무덤에 묻힌 이유는 그날의 싱그러운 의지를 띄울 용기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 섬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더없이 풍족한 자이며 더없는 부러움을 사고 있는 자다. 더없이 고독한 자인 내가! 일찍이 나 너희를 소유했었고 너희가 아직 나를 잡아두고 있으니 말이다. 말하라. 나 말고 그 누구 앞에 이 같은 장미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졌다던가?
차라투스트라의 고독함은 지금의 자신을 더없이 풍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고독은 소유물의 풍족함이 아니라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젊음의 경험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여전히 자신을 지탱하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열정적인 의지와 노력은 현재의 소유물이 증명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고독한 차라투스트라를 외로운 실패자라고 바라볼 수도 있으나, 그 누구도 그 앞에 떨어진 장미사과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단지 그 자신만이 자신의 삶이 주는 최고의 환희와 영감에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장미사과는 그 누구에게 보여주고, 증명받기 위한 상패가 아니라, 스스로의 고결한 정신적 체험의 상징입니다.
내 희망을 노래하던 새들이여, 나를 죽일 생각에서 사람들이 너희를 목 졸라 눅였던 것이다! 그렇다. 더없이 사랑하는 자들이여, 악의가 허구한 날 너희를 향하여 화살을 날렸던 것이다. 나의 심장을 명중시킬 생각에서!
나의 장미사과를 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은 나 자신의 시도와 물음을 어리석음이라고 치부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조차 의심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조언과 충고는 끝없이 나를 좌초의 위기로 내몰게 됩니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선한 의도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나의 희망을 죽이는 악의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의 악의는 다른 곳이 아닌 나의 의지의 심장을 겨냥합니다.
너희는 내 젊은 시절의 곡두들을, 그리고 더없이 사랑스러운 경이들을 죽여버렸다! 나의 놀이동무, 저 복된 정령들을 앗아가고 만 것이다! 저들에 대한 추억 앞에 나 이 화환과 함께 이 저주를 내려놓노라.
우리는 성장과정에서 수많은 경이로운 꿈을 꿉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순수함은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허물고 창조적 유희의 정신을 일깨웁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억압은 어린아이를 사자로, 낙타로 길들입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에게 원한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에 대한 저주를 내려놓고, 사랑과 긍정으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자 합니다. 그에게 시련과 고통은 모두 자신을 풍족하게 만들어줄 뿐입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中, 프리드리히 니체
벨라루스 출신의 화가 마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비테프스크에서 가난한 유대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예술가로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대인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았던 거주 허가를 받고 1906년에서 1910년까지 머무른 후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예술활동을 이어갑니다. 이 시기 샤갈은 파리의 야수파와 입체파 화가들의 작품들로부터 큰 자극을 받습니다. 샤갈은 <나와 마을>에서 입체파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화면을 지배하는 원은 우주, 태양 혹은 생명의 순환을 상징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 마을의 동유럽적 민속과 문화의 요소가 입체파적으로 배열되고, 예술가 자신을 의미하는 녹색 인간과 동물이 중심의 원에서 생명의 나무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샤갈의 예술 안에서 거꾸로 선 집과 같은 불가능한 것들은 가능해지고, 기억과 향수는 찬란한 색채로 되살아납니다. 파편화되고 조각난 과거의 아련함은 현재의 새로운 조형언어인 입체파를 통해 생동감을 되찾고 무덤에서 깨어납니다. 샤갈에게 예술은 과거와 현재를 모두 긍정하는 장미사과, 즉 풍요로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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