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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Mar 13. 2024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2장

영원을 위한 미술 -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레타

고대 이집트의 미술은 서양미술사의 아버지 격인 그리스 미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그리스의 거장들은 이집트 인들에게서 배웠고 우리는 모두
그리스 인의 제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의 미술이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곰브리치는 미술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역사성은 이전의 것을 다음으로 이어주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 미술, 건축 등이 서구 사회, 나아가 현재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들의 문화가 대단히 훌륭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이 새로운 현재적 가치를 끊임없이 발견한 우리 이전 세대의 노력과 "참신한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미술에서 우리의 앞선 세대는 어떠한 현재성을 발견했을까?


변치않는 모습

고대이집트의 미술은 3천년 가까운 시간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양식을 가진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처한 정치적, 종교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역사는 기원전 3100년 경부터 시작한다. 그 이전의 이집트는 하나의 통일된 왕조로 존재하지 않았고 상,하 이집트로 나뉘어있었다. 하나의 왕조로 통일된 이후 정치적 안정은 파라오의 절대적 입지를 보장해주었고, 파라오의 입지가 공고할수록 사회적 안정 또한 이루어낼 수 있었다. 내외적 수난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절대군주의 제정일치 사회에서의 덕목은 아래에서의 반동을 누르고 위로부터의 안정된 지배, 즉 그들이 만든 건축물과 같은 피라미드 구조의 사회적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네바문의 정원>, 기원전 1400-1350년경

<네바문의 정원>에서 표현된 대상들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익숙하지 않다. 대상들은 표본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하다. 이집트인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들이 그리는 것은 대상이 우리의 눈앞에 드러난 "현재성"이 아니다. 그들은 이것이 그 사물임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형상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 그림은 각 대상의 이름들은 그림의 형태로 전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치 그들의 글인 신성문자 (Hieroglyph)가 사물의 형태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표현은 "정면성의 원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이것은 하나의 약속으로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오해를 줄이는 방식이다. 하나의 군주와 하나의 법체계, 하나의 종교, 하나의 예술. 그들의 세계관에 있는 두 신 마아트 (조화, 질서의 신)과 이스페트 (혼란, 붕괴의 신)는 그들의 변화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반영한다. 이러한 "정면성의 원리"는 이후 근대의 입구에서 "평면성"으로 재발견된다.

<이집트 커튼>, 앙리 마티스, 1948

마티스는 당시 회화가 형태 자체에 너무 매몰되어 있음에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눈을 가지고자 했다. 그는 오리엔트와 북아프리카 미술에 대해 연구했고 그 속에서 색채의 짜임새에 주목했다.

이들은 나중에 레 포브(Les Fauvres), 즉 '야수' 또는 '야만'을 뜻하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불리게 된 까닭은 그들이 자연 형태를 정면으로 부시하고 격렬한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객관적 미

고대이집트인이 전한 또 다른 미술사적 자원은 객관적 미에 대한 규범의 확립이다.

그들은 사람 하나하나를 다르게 그리지 않는다. 누가 그리더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개개인의 사람을 다르게 그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결국 인간의 보편적 비례를 그릴 뿐이다.

왼편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인간의 보편성을 기하학적 질서로 이해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인간은 대우주와의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오른편의 르꼬르뷔지에의 <모둘라>는 평균적 인간의 스케일을 기준으로 모든 건축적 스케일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둘 모두 개별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보다 객관적, 보편적 인간에 대한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물론 개별적 인간에 맞는 개별적 미술을 하는 것은 막대한 자원과 시간을 요구한다. 효율성, 가성비의 근대성은 이집트의 객관적 미와 그리스인이 발견한 이성적 능력의 결과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위대한 건축물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왜 위대한 건축물일까? 피라미드가 위대한 이유는 수없이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객에게는 좋은 사진을 얻어갈 배경일 수 있수도 있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잘 짜여진 행정체계와 경제 시스템에 있다. 안정된 식량 수급과 잉여생산물은 무역과 상업으로 이어지고, 다른 지역의 자원을 수급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남아도는 식량에 더 이상 식량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은 자리를 잃게 된다. 어찌보면 대공황 이후 댐 건설과 같은 SOC 사업으로 피라미드의 건설은 대규모 사업을 유치하고 엄청난 고용효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기자의 대피라미드 (쿠푸왕의 피라미드)의 건설에는 1만명 가량의 노동자가 8일 근무과 이틀의 '유급휴가'의 주기로 고용을 보장받았다.

또 다른 위대함은 엄밀한 수학, 측량 기술이라 할 수 있다. 평방 230미터의 바닥면을 정교하게 측량하고 건설하기란 쉽지 않다. 조금만 어긋나도 정사각형이라는 기하학적, 구조적 안정성은 사라지고 만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미 알고 있었고, 밧줄의 매듭을 3,4,5 단위로 만들어 직각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삶과 죽음

피라미드와 같은 분묘 건축은 그들이 '삶'과 '죽음'의 문제에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파라오는 막대한 자본을 자신이 죽고난 후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투자한다. 순진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그들이 이러한 사후세계의 구조를 만들어낸 실용적 이유를 생각해보자. 세계의 많은 종교는 이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는 배경으로 저변에 저 세계의 질서를 설명한다. 다시말해 우리가 이 세계에서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저 세계에 있다. 내세를 강조하는 종교는 현세의 철저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영원성은 이러한 내세와 현재에서 내세의 승리는 말하는 교묘한 속임수일 수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집트의 사자의 서는 우리가 죽고 난 후 지하세계로 이동하고, 우리의 죄의 무게를 평가받고 이후 영혼의 경로를 결정받는 모든 과정을 설명한다. 이 그림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두려움과 희망이 들어 있으며 동시에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지배자의 술책을 목적으로 한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림의 좌측에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는 저울의 왼편에 심장을 올려두고 오른편에 깃털을 둔다. 심장에 쌓은 죄의 무게가 깃털보다 무겁다면 즉결처분한다. 그들에게 죄를 짓는 것은 심장이지 뇌가 아니다. 플라톤의 신체 능력의 구분으로 보자면 이성적 능력보다 의지의 능력을 더 크게 평가한 것이라 볼 수 있고 꽤나 타당해 보인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손익을 계산하는 이성적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이익을 향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여튼 판단은 가혹하다. 죄의 기준은 깃털의 무게이다. 얼마나 깨끗하게 살아야 깃털만큼의 죄도 짓지 않을 수 있는가? 니체는 "선악의 저편"과 "도덕의 계보학"에서 외면화된 규율인 법보다 내면화된 "도덕"이 지배자의 목적인 자신의 권력유지에 더 용이하다는 것을 밝혔다.

결국 사자의 서는 피지배층 모두가 지배자에 대한 적극적 굴복을 삶과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구조 속에서 정당화하는 잘 짜여진 작품처럼 보인다. 인간은 한정된 삶을 살고 육체는 그것을 증명하는 요소이며 이 죽음에 대한 공포는 보이지 않는 영원성에 대한 바람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영혼'이라는 형태로 가정한다. 평가는 '영혼' 이 받게 되는데 이집트인이 생각하는 두 가지 영혼 '카 (ka)' 와 '바 (Ba)' 는 생명의 영혼 (카) 과 인격의 영혼 (바)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생명의 나무'와 '선악과'와 비교될 수 있을터이다.

우리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영혼'의 '영원'을 바라게 만들었고, '영혼의 영원성'은 현세의 철저한 선함을 전제로 한다. 현세의 선한 삶은 지상 세계의 신은 파라오에 복종하는 것이고, 현세의 삶에 대한 평가는 내세의 영혼의 길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진 내세관과 파라오에 대한 완전한 '믿음'은 기원전 30년에 깨어진다. '믿음'의 반댓말은 무엇일까? '믿음'은 '의심'으로 깨어진다. 자신이 숭배하던 파라오가 패배하는 순간 그들이 쌓아올린 '믿음'의 세계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로마의 이집트 지배는 그들의 예술의지를 뒤바꿔 버린다. 결국 종교도 예술도 그들의 현재 삶의 상황으로부터 동떨어져 고고하게 나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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