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졌어
봄이다.
나나와 산책을 시작한 후 매일 변하는 길가의 풍경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억에 엄마와 꽃구경을 가면 꽃밭에서 쉬지 않고 탄성을 지르셨다.
어쩜 그렇게 많은 종류의 의성어와 감탄사를 알고 계시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난 그 모습이 참 어색했다. 어쩌면 작위적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메말랐던 사람이었던가.
늘 시간에 쫓기고 바쁘게 살아온 탓에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다는 게 내 변명이다.
사람 많은 게 싫어서 꽃구경, 단풍 구경도 그다지 즐기지 않았었다.
참 재미없게 살았었네.
작년 둘째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 등원 길을 걸으면 동네 야트막한 산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지가 앙상해 흙빛만 보이다가 여린 연둣빛으로 시작해 진한 초록색이 되는 모습이 마법 같았고 초록은 나에게 안정을 주는 듯했다.
멀리 있는 산은 보았지만, 한시바삐 유치원에 가야 하는 당면한 과제로 더 이상의 기쁨은 누리지 못했던 작년과는 다르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자유시간이 빨라진 올해는 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사뭇 달라졌다.
제일 먼저 봄눈이 날 사로잡았다.
이른 봄 더위와 시베리아 한파의 기상이변 속에 꽃이 될 꽃눈과 잎이 될 잎눈들이 너무 일찍 나타났다가 꽁꽁 얼어버려서 제대로 생장을 못 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다.
자연은 인간보다 강하다 했던가 내 걱정이 무색하게 그 앙증맞은 것들은 하나둘 팔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걸음을 멈추게 한 매화 향기. 어쩜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것 같지.
두세 걸음 앞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나는데 바람이 불면 멀리서도 알아챌 만큼이어서 후각으로 매화를 인지하고 눈으로 나무를 찾는 형세였다. 그리고 꽃을 코에 대면 달콤하면서 약간은 새콤한 듯한 향기가 인공적인 향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옛 문헌에서 닳도록 매화 향기를 찬미한 이유가 이거구나 생각했다.
그 향기에 너무 반한 나머지 매화나무를 집에 들이겠다고 한동안 묘목판매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더란다.
매화나무 종류가 너무 많아서 결국 구매를 포기하고 말았지만, 매일 산책로에서 만나는 매화나무들로 올해는 만족하기로 했다.
걷다가 매화나무를 만나면 멈춰서 향기를 맡고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남편이 나보고 꼭 어르신 같다고 낯설다고 했다.
예년까진 우리 동네엔 벚꽃이 참 많은 줄 알았는데 그게 다 벚꽃이 아니었더라.
매화, 앵두, 살구, 복숭아, 자두, 벚꽃 등 비슷하지만 다른 꽃들이 늘 지나는 길목에 있었다.
각 꽃나무의 특징을 찾아보았지만, 구분이 쉽지는 않다.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알고 싶어. 너희를. 더.
꽃은 가까이에서 보면 더 예쁘다. 보드라운 꽃잎 한 장 한 장을 지나 안을 들여다보면 암술, 수술이 정말 신이 아니면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다시 겉을 보면 꽃받침, 꽃자루가 사랑스럽게 꽃을 잡고 있다.
여기 김포는 서울보다 평년기온이 낮아서 꽃이 늦게 핀다.
이제야 매화가 져가고 개나리, 벚꽃, 목련이 개화했다. 옆 동네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란다.
경기 북부는 겨울이 더 춥고 길어서 연중 꽃과 푸른 잎을 볼 시간이 적다. 따뜻한 남쪽보다는 볼 수 있는 꽃의 가짓수도 볼 수 있는 기간도 짧기에 더 자주 봐야 한다.
휴대전화 사진첩에 꽃 사진이 늘어만 간다.
꽃을 보며 가족을 생각한다.
늘 옆에 있었지만 내가 메말라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가까이서 보지 않아 그들을 명확하고 세밀하게 그려내지 못했었다.
특히 꽃보다 더 예쁜 두 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스미는 봄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