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었다. 임진왜란에서 시작된 약 7년간의 전쟁에서 초약체인 조선 수군을 이끌며 질 것이 뻔했던 전쟁의 흐름까지 바꿔버린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이었던 그, 이순신. 그러나 그의 일기를 통해 엿본 일상들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나는 마블의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 같은 슈퍼 히어로를 기대했던 걸까. (웃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정신없는 전쟁통 속에서도 ‘평범했다’ 말할 수 있는 그의 단조롭고도 일관된 생활이 어쩌면 슈퍼 히어로급 ‘비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의 일기를 통해 엿본 이순신의 리더십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자면 팩트체크와 상벌이 확실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물을 낼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런 그의 리더십 이면에는 기본에 충실한 그의 일상이 있었다.
그의 하루는 제법 단순했다. 주로 공무를 보았고 틈틈이 활을 쏘았으며 장수들을 다독이고 많은 시간을 전쟁 준비를 위한 전략회의에 할애했다. 또한 군량미와 병장기를 꼼꼼히 챙기곤 했는데, 지속된 전쟁으로 상황이 어려워 지자 청어 등을 내다 팔며 부족한 군량미를 확보하는 지략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그의 유연한 사고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엿볼 수 좋은 사례이기도 했다. 물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그가 전쟁을 치르는 중임에도, 몸이 매우 좋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기저에는 나라와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탄탄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등 이미 세계는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며 전쟁을 진행 중에 있다. 또한 수많은 전문가들이 중국과 대만,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를 예의 주시하며 전쟁 촉발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천만하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작게는 나의 가족, 크게는 우리나라라는 나의 이 소중한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물론 아직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이순신처럼 조선의 초약체 수군을 이끌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방어해야 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가정하더라도, 그의 활약(특히 명량해전)을 떠올려 보노라면 자꾸만 작아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허나 나는 그가 아니므로 조금 더 ‘현재’에 기반해 나의 리더십을 고민해 보기로 한다. 부끄럽지만 지난 생을 돌이켜 과거 데이터에 기반해 나의 장점을 짜내어 보자면, 1) 나는 책임강이 강하다. 2)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한다. 3) 사람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요 정도 되겠다. 과거 박사과정 시절 연구실 후배들을 이끌었을 때, 주변 교수님과 후배들에게 ‘엄마의 리더십’ 혹은 ‘부드러운 리더십'이라는 평을 받은 적이 있었음을 떠올려 보면 그래도 발전의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하겠다. 게다가 다른 것은 몰라도 ‘기본에 충실한’ 부분만큼은 충분히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니까.
물론 그 '기본에 충실하다'란 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과를 내는 이순신과 같은 위대한 리더십을 가져올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 그 자체는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니던가. 더불어 팩트체크와 상벌이 확실한 부분 역시 어느 정도 노력이 가능한 영역이란 사실은 매우 희망적이다.
나의 가지고 있는 장점은 좀 더 발전시키고, 이순신의 리더십을 통해 엿본 개발 가능한 점들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나는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쩌면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바빠 그런 걱정을 하지못하고 지내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중일기>를 읽으며 한 가지는 뚜렷하게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내 울타리 안 사람들에게 어떤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재에 그대로 머무르기만 하는 내가 되어서는 안 됨을 말이다. 물론 이순신처럼 슈퍼 히어로급의 성과를 내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그저 꾸준히 노력해 나가겠다는 것, 그래서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나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뭐 그런 다짐 정도랄까.
오랜만에 다시 보아도 참 멋진 분, 이순신. <난중일기>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분의 삶과 활약을 엿볼 수 있어서 너무도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