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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15. 2024

버라이어티 한 토요일

2024년 10월 7일 아침 10시경, 전화벨이 울린다. 발신자는 병원. 수화기 너머로 수간호사는 오전 7시경 엄마에게 짧은 경련이 있었다 말하며 다른 병원으로 옮겨 mri를 찍어보겠냐 물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그대로 머물며 엄마를 지켜보겠다 답했다.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으므로 이런저런 검사로 마음만 더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였다. 이미 엄마는 고용량의 항경련제를 복용 중이기에 원인을 안다 한들 그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듯해서이기도 했다.

전화를 끊고 스스로 착잡한 마음을 물리치려 딴생각을 하려다 문득 오늘이 엄마가 쓰러진 지 딱 2년째 되는 날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의 인지는 오늘이 어떤 날이란 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 텐데도 엄마의 몸은 오늘을 기억이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우연이라기엔 날짜도 시간도 겹치기에 참 신기한 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긴 한 주가 지나고 엄마를 만날 토요일. 어젯밤 늦게 대구에 도착한 탓에 여전히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며 부스스 일어나 새벽부터 기저귀와 물티슈, 욕창에 좋다는 연고 등을 한 아름 챙겨 택시를 부른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 마주한 엄마. 한 주 동안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무색할 만큼 엄마의 컨디션은 좋아 보인다. 가래도 많이 줄고 휠체어 트랜스퍼 때 보니 다리에 힘도 제법 생긴 듯하다. 무엇보다 욕창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긴 하지만 엉덩이가 깨끗해졌다! 올레~~ 정말 생각했던 이상으로 욕창이 나무 빨리 나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정말 엄마의 컨디션은 예측 불가구나.

그렇게 기분 좋게 토요 간병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단 생각이 들면서도 좋아진 엄마 컨디션에 유쾌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잠이 부족해도 몸이 피곤해도 기분이 좋은 걸 어쩌나. 집에서 기다리던 아빠와 남편, 아이들과 함께 돼지갈비로 거하게 외식을 하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엄마가 좋아졌다며 남편에게 조잘대다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까무룩 잠이 든 지도 한참.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발신자는 이번에도 병원.

지금 어디냐는 간호사의 질문에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중이고 거의 다 와간다고 말했으나,  간호사는 엄마의 목과 입에서 출혈이 계속되고 있다며 당장 병원으로 와 달라고 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큰 병원 응급실로 바로 옮기는 게 좋겠다는 것.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지금 그들 역시 굉장히 당황스러워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일단 5분 안으로 다시 병원으로 전화를 주기로 하고 나는 바로 대구에 사는 사촌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나와 엄마의 사정을 뻔히 아는 언니는 당장 형부와 함께 병원으로 이동해 주었다. 고작 5분 남짓한 시간.

언니가 대학생활을 할 때 우리 집에서 지냈던 데다 그 당시 내가 갓난쟁이였기에 그때 그 아기가 벌써 이렇게나 자라 아픈 엄마를 감당하고 있다며 언니는 늘 나를 가엾어했고 언제든 도와주고 싶어 했다.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병원은 상황을 지켜보았다. 여려 명의 의료진이 엄마에게 달라부터 거즈로 출혈을 닦아내고 각종 수치를 체크하고 있었다. 급박함과 당혹스러움, 긴장감이 느껴졌다. 엄마는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고 계속해서 도리질을 하고 있는데 엄마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느껴져 생각할 틈도 없이 눈물이 후드득 흘러내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엄마의 표현은 그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명하다 나중에는 화를 내시는 듯했다. 당직의사도 엄마를 봤다 전화를 했다 하며 분주해 보였다. 의료파업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인 여파겠지. 연명치료 계획서를 작성해 둔 탓도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20분쯤 흘렀을까. 서서히 엄마의 출혈은 잦아들었고 기운이 빠진 엄마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또다시 엄마의 상태를 지켜보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집을 찍고 곧장 다시 대구로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마주한 엄마는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아빠와 나를 맞아주었다. 괜찮으냐는 나의 질문에 천천히 눈을 깜빡여주는 엄마. 하지만 산소포화도가 안 나오는 모양인지 3L가량의 산소가 엄마에게 공급되는 중이었음에도 엄마의 산소포화도를 출력해 주는 모니터는 88-92 가량의 수치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2024년 9월 4일, 간수치 이상
2024년 10월 7일, 뇌경련
2024년 10월 12일, 객혈

2년 전만큼은 아니라지만 올해도 엄마는 힘겨운 가을을 보내는 중이다. 엄마가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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